[인터뷰]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마음으로 – 이경환 변호사 인터뷰

2010-03-31 230


조두순 사건과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전자발찌 소급적용 법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인터넷으로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방침을 세웠습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처벌 강화법은 왜 이전에 사건을 방지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안타까움만을 더합니다. 최근 민변에서는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의견서>를 발표했는데요, 의견서 작성에 참여하신 민변 회원 이경환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1년차 회원인 이경환 변호사는 2003년부터 꾸준히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며 성범죄 피해자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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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환 변호사님은, 남성으로서는 드물게 여성위원회 소속 회원이십니다.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2차 사법시험을 마치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학교에서 성폭력상담소의 ‘시민감시단’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후배와 함께 한 번 해보자며 간 것이 지금까지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상담소에서는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피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판과정을 모니터링하며 피해 상황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담소에서 처음으로 맡은 사건은, 증인신문을 7시간이 넘게 했을 만큼 치열하게 다툰 케이스였어요. 형법이나 형소법을 이미 이론적으로 공부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인신문 과정을 겪는 피해자 분께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는데, 이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분들은 그저 옆에 있어드리는 단순한 도움만으로도 굉장히 고마워하시고 큰 힘을 얻으시더라고요. 그때 많은 것을 느꼈고, 실무 지식을 빨리 습득해서 피해자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성폭력방지관련법안 검토의견’을 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 최근의 성폭력 처벌 강화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사건들의 영향으로 2008년부터 계류되어 있던 법안들이 한꺼번에 검토되고 있는데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발찌의 경우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기대되는 측면이 있지만, 지금과 같이 여론을 의식해 성급하고 감정적인 추진을 한다면 전체 성폭력 대책의 관점에서 볼 때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성폭력과 관련된 모든 이슈들이 법제화로 모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분야에 있어서는 그동안 비교적 여러 입법적, 제도적 개선이 있어 온 편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근본적인 문제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는 한, 아무리 전자발찌를 채우고 절차를 법에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절차들을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법제화에만 치중하다 보면 형식적인 법의 변화만으로도 현실이 개선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가시적이고 홍보하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에 다른 성폭력 정책의 예산과 인력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법제에 대한 지나친 치중은 현장에서 직접 피해자를 대면하고, 그들을 돕는 현장의 노력을 잠식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성범죄 처벌과 관련한 현 법적체계의 문제점과 시정해야할 점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친고죄 폐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강간죄 개념의 재정립 또한 필요합니다. 피해자가 부녀로만 한정돼 있어서 동성 간 성폭력이 포섭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성 간 성폭력은 유사성행위로 인정되어 성폭력이 아닌 강제추행으로 처벌받는 문제점 또한 있습니다. 폭행협박을 ‘최협의’로 인정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큽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니, 특별법을 수정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형법개정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성폭력 관련 특별법이 워낙 여러 개가 제정이 되어있다 보니 법 사이에 체계가 많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개의 특별법을 형법으로 합치자는 측면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성단체도 제안을 했고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상태에서 제대로 된 형법 체계를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됩니다.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지만 하나로 합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많이 어그러져 있습니다. 형법으로의 개정 논의가 있을 때, 어렵긴 하지만 하나로 합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교육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 싶습니다. 성폭력특별법에 의해서 법원이나 검찰 모두 성폭력전담부와 검사를 두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교육도 실시하고 있고요. 그러나 아직 형식적인 측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교육의 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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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민변에서는 여당이 내놓은 전자발찌와 약물치료에 대한 법률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는데요.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여당의 법률안은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대상을 현행법 공포 이전의 성범죄자에 대해서도 소급적용하는 등 적용대상을 확장하고, 부착기간을 최장 50년까지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위 법안들은 여론에 편승하여 충분한 검토 없이 급속히 만들어졌기에 법률안 그 자체에 내재된 문제도 많고, 위헌의 소지가 큽니다. 전자장치 부착대상의 결정 기준이 자의적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화학적 거세라고 불리는 약물치료는 기본적으로 심리치료나 교육 등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금세 효과는 사라집니다. 현 정부 들어 성범죄 관련예산이 계속 삭감되어왔는데, 근본적인 대책을 위한 지원은 줄고 자극적인 법안에만 관심이 집중돼 문제입니다.


–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 틀렸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정말 ‘맨 정신으로 한 행위’와 ‘(범행을 의도하지 않고) 술에 취해서 한 행위’를 다르게 취급해야 할 경우도 있기에, 심신미약 감경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경우, 성범죄는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범행이 가능한 장소도 물색해야 하고, 자신이 접근해서 제압할 수 있는 대상도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계획적인 범죄자들이 술을 핑계로 심신미약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전문가 진단 등의 절차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 많은 경우 심신미약 감경은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에, 너무 과하게 내려졌다고 판단된 형을 감경하기 위한 이유로 사용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량감경으로도 부족할만큼 형이 지나치다면 제도를 통해 형기를 고쳐 해결할 일이지, 감경을 위해 ‘술을 먹이는’ 관행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의 남용 문제는 아동성폭력만의 문제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성인피해자에게 더욱 문제가 됨에도, 현재 개정안들이 13세 미만에 대한 성폭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권리에도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아는데, ‘피해생존자’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범죄의 ‘피해자’는 마치 자신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슬픔에 젖어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 분들 중에는, 용기를 가지고 아픔을 딛고 일어나 더 씩씩하게 생활하시려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런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는 인생의 한 단계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특수한 것이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피해자의 회복이나 가해자의 처벌, 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survivor)’는 영어를 그대로 풀어쓴 작위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저도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만나고 일반 사람들의 고착화된 인식을 접하면서 이러한 용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무조건 성폭력 피해사실을 잊으라고 하거나 피해자를 어딘가 손상을 입은 2등 시민으로 보는 시각이 아닌, 그분들의 극복의지와 노력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피해생존자’는 굉장히 의미 있고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인식변화는 수사나 재판 등 사법절차에서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 여성문제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매력이나 보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남성으로서 제가 일부러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잘 알기가 어려운 숨겨진 차별이나 인권침해의 문제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성문제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람이 있을 때는 법학과 여성학의 연결고리가 될 때입니다. 여성학이나 법여성학 쪽에는 깊이 있고 반영할 만한 좋은 연구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연구가 사회학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보니 법조인들이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법조계에는 법조계의 특수한 언어와 사건처리 구조가 존재하니까, 여성운동계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을 오해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중간에 연결만 잘 시켜줘도 양쪽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상담소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피해자들이나 상담소 입장을 반영해 법적 언어로 정리를 했을 때 변론이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면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 민변에 가입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가장 활발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해 온 곳이어서 당연히 가입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펌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더 많은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느낄때도 있습니다.


   


– 변호사로서 바쁜 업무에 시달리실 텐데요, 회사생활과 사회운동을 병행하실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양쪽 모두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 앞으로도 계속 잘 유지해나가실 자신은 있으신가요? ^^


자신까진 없고, 계속 노력해야죠. (웃음)


 


–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마음을 보듬는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 인터뷰/ 홍보출판팀 김란아, 박초롱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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