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변론][시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6. 7. 선고 2015가합13718 판결에 대한 소고

2021-06-11 42

“법관의 양심이란 무엇인가?”

[시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6. 7. 선고 2015가합13718 판결에 대한 소고

이형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월간변론 편집위원)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판결이 나올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문구다. 그렇다면, 법관의 양심이란 무엇인가?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문언상 양심은 헌법과 법률에 구속된다. 즉, 법관이 심판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고, 양심 역시 헌법과 법률과 결합하는 차원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법관의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수의 학설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판사 개인의 가치관 또는 역사관이 헌법 제103조에서 말하는 양심이 될 수 없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대법원 2018년 10월 30일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정리되었다. 물론 위 판결의 내용은 그로부터 6년 5개월 전인 대법원 2012년 5월 24일 선고 2009다68620 판결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대법원이 ‘동일한’ 판단을 확인하기까지 무려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그 중심에 대법관, 정부 고위직 공무원,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있었다. 그렇다. 위 사건이 이른바 사법농단 관련 수사를 통해 확인된 강제동원 재판거래 사건이다. 재판거래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서 핀 꽃처럼 기어코 세상에 나온 것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그런데 이런 전원합의체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는 2021년 6월 7일 선고 2015가합13718 판결(이하 ‘이 사건 판결’)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하며, 청구권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취지로 소각하 판결했다.

 

동일한 쟁점에 관해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할 만큼의 사정변경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을 그대로 차용하였을 뿐, 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어떠한 사정이 변경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오히려 이 사건 판결은 법관의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 또는 역사관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이 사건 판결의 일부 내용을 보자.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기에는 청구권협정으로 타결된 3억 달러가 과소하고 당시 대한민국이 요구한 금액과도 현저한 차이가 나므로 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 대한민국이 일본국에 접근한 현재의 잣대로, 당시 낙후한 후진국 지위에 있던 대한민국과 이미 경제대국에 진입한 일본국 사이에 이루어진 과거의 청구권협정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다. 일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바가 있다는 자료가 없다. 그 당시 즉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국제법을 제국주의 침략법이라고 비난한 소련마저도 동유럽 약소국을 강점한 사례 등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정보장’을 훼손하고 사법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법관은 국가의 사법권을 담당하고 그 권한을 행사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이다. 이 사건 판결이 과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부담하는 지위에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묻고 싶다.

 

 

  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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