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23일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25조 제1항,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고시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 각하하였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전문 취업 인력으로 불리우는 단순기능 인력의 도입과 관리를 규정하는 제도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자가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해 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사건 청구인들은 연장근로수당 없이 연장근로를 강요받거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기숙사비를 공제하는 바람에 근로계약서상 통상임금보다 적은 월급을 받거나, 무면허 건설기계 조종을 강요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중에는 사업장에서 10명이 사상을 입는 사건을 목격하고 불안에 떠는 청구인도 있었다.
일반적인 노동자라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직, 사직을 선택하거나 사직을 조건으로 사업장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이동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사업주의 고용허가가 국내 체류의 필수 요건인 이주노동자가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주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관련 입증자료를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청구인들은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기는 커녕 또 다른 불이익을 겪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정 과정에서 청구인들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였다. 헌재는 청구인들이 3회 이상 사업장 변경을 시도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헌재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외국인근로자에게도 모두 적용되고, 사용자가 의무를 위반한 경우 외국인근로자가 그에 따른 법정 구체절차를 이용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며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해당 법령이 청구인들의 근로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몇몇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을 악용하여 저임금, 차별, 폭언, 폭행, 성폭력을 일삼는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음에도 헌재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충분히 보호되고 있다고 설시하였다.
게다가 헌재는 임금체불, 근로시간 감축변경이 일정 비율이상 지속되는 경우만을 사업장 변경 사유로 규정할 뿐 위험한 작업환경, 부당한 업무지시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현행 고시가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가운데 어느 범위까지를 외국인근로자가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볼 것인지는, 외국인근로자의 주관적 사정뿐 아니라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이동 규모를 억제 허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라고 판시하였다.
여기에 헌재는 비전문취업의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업종은 국민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업종의 특성상 내국인근로자를 구하기 어렵고 대체로 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으로서 노동력의 안정적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 있다며 사업장 변경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법원이 상당수가 선주민으로 이루어진 내국인 노동자의 사건에서 사업장의 안정적인 인력 공급, 국내 경제부양 필요성 등을 기준으로 사업주의 처우가 부당한지 판단하겠다고 판결하였다면 상당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헌재는 이 사건 청구인들이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사업주 보호를 위해 이직, 사직이 제한되는 것이 타당할 뿐 아니라, 이직, 사직이 합당한지 판단하는 기준조차 정부의 경제정책에 달려 있다고 결론내린 셈이다.
법대가 높은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방청석과 법대의 먼 거리가 때로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듯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 앞에 평등하다. 국적, 인종, 민족은 불평등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모든 노동자는 인력, 인적자원으로 불리기에 앞서 ‘사람’이다. 이주노동자가 관리의 대상이 아닌 ‘노동자’, ‘사람’으로 법 앞에 서기까지 우리에게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2022.01. 27.
조은호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