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부터의 초대장
일본군‘위안부’ 문제 대응 TF, 일본 시민단체와의 교류회 후기
-권태윤 회원
일본으로부터의 초대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 TF는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약 7년에 걸친 법정다툼 끝에 2023. 11. 23.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 직후 여러 언론에 대응하느라 정신없던 TF 대화방에, 일본의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대리인단에서 2~3명이 대표로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의 변호사들과 세미나를 열고, 일본 시민단체와 교류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대리인단을 대표해서 가게 될지 궁금해하던 때, 이상희 단장님은 의외의 제안을 하셨습니다. ‘일본의 시민단체에는 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들이 많으니, 한국에서 젊은 변호사들이 관심을 갖고 일해왔다는 걸 보여주면 그분들께도 큰 힘이 될 거야. 최대한 많은 분들이 함께 갑시다’ 그렇게 해서 총 12명의 교류단은 2024. 1. 25.부터 같은 달 27.까지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일차 – 일본 국회 발표행사와 저녁 축하행사
1일차 일정은 오후 3시 일본 국회 세미나실에서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일본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많은 시민들에게 이번 소송의 경과와 그 내용을 설명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발표는 일본의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님, 그리고 한국 대리인단의 이상희 변호사님, 김예지 변호사님 그리고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분들을 다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충분치 않지만, 그래도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님은 여러분께 꼭 소개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님은 1970년대 전후배상 소송부터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인권침해 사건을 대리하고 연구해 오신 분으로, 이번 일본국을 상대로 한 항소심에서는 직접 서울고등법원 법정에 출석해 일본에서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경과와 의미, 국가면제 법리의 세계적 흐름에 대한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야마모토 변호사님은 개인 홈페이지에 전후보상, 일제강점기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에서의 거의 모든 재판자료 자료를 취합해서 공유하고 계십니다. 한국어 버전도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http://justice.skr.jp/kindex.html).
국회 행사에는 일본에서 꾸준히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해오신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발표 이후에는 일본에서의 재판 진행과 차이점, 승소 판결의 집행 등 향후 계획, 이번 판결 법리와 다른 일제강점기 인권침해 사건과의 관계 등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의견도 이어졌습니다.
국회 행사를 마친 뒤에는 인근 빌딩 8층에 마련된 연회장에서 축하행사를 가졌습니다. 오랜 기간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해오신 일본의 시민활동가, 일본 변호사 분들께서 서울고등법원 ‘역전 승소’ 판결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저희 승소 판결을 축하해주시려고 장시간 기차를 타고 오신 시민활동가 분들도 계셨고, 다양한 영역에서 전후배상 문제, 재일조선인 문제 해결에 힘써오신 일본 변호사님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 활동가, 변호사들은 저희의 승소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저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반대로 저희는 그 동안의 일본에서 노력해오신 운동과 소송이 한국에서의 승소 판결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일본에서의 활동에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일차 – 일본 변호사님들과의 세미나
2일차 일정은 일본 변호사님들과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소송 경과를 공유하고, 소송에서 제기된 주장과 그에 관한 판결 법리를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미나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시기부터 민변에서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그리고 소송 과정에서는 국가면제 법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상세히 검토했습니다. 세미나는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하여, 세미나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아낄 정도로 열정적인 세미나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저희는 아침 출근 시간에 세미나실로 들어가서, 거의 퇴근 시간에 가까운 세미나실 종료 시간에 맞춰서 행사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친 뒤에는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일본의 시민 활동가 분들을 만나서 한국인 야스쿠니 합사 문제(야스쿠니 신사에는 유족의 동의없이 합사된 한국인들이 있어, 일본 법원에서 합사취소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항소심까지 패소하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 외 다른 강제동원 등 사안에 관한 일본에서의 활동 내용과 향후 한국에서의 활동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3일차 –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야스쿠니 신사 방문
대리인단이 일본에서 제안받은 일정은 2일차 세미나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상희 단장님의 제안으로,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과 야스쿠니 신사를 추가로 방문하였습니다.
WAM은 2005년에 개관한 곳으로, 2000년에 열렸던 ‘여성국제전범법정’의 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WAM은 오후 1시 개관이지만, 저희 대리인단을 위해서 오전에 개관하여 시설 소개 및 간담회를 진행해주셨습니다. WAM에는 세계 여러 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술, 2000년의 ‘여성국제전범법정’ 내용과 당시 지목된 가해자들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리인단의 장완익 변호사님은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 당시 남북공동검사단의 일원이셔서, 전시 자료를 현실감 있게 상세히 설명해주시기도 했습니다.
WAM에서 오전 일정을 마친 뒤, 오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의 설명은 즈시 미노루 선생님께서, 통역은 김영환 실장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즈시 미노루 선생님은 1970년대부터 야스쿠니 문제를 연구하며 야스쿠니 철폐 운동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저희는 조형물 하나하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야스쿠니 신사가 ‘모든 전쟁 피해자들을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침략전쟁, 전쟁범죄의 책임을 부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안에는 ‘유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이 있는데, 그 내부는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2차대전에 사용되었던 무기, 전쟁 당시의 기록, 전사자들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를 기록한 내용 중에는 명백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사복 군인과 구분할 수 없었다’며 정당화하거나, 침략전쟁이나 전쟁범죄 사실은 기록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치며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서, 대리인단의 변호사들은 일본에서의 활동이 거리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방문은 소송에서 한국과 일본의 활동가, 변호사들이 협력해서 승소를 이뤄냈음을 함께 축하할 수 있었던 너무나 기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참가자 모두가 열정적으로 촘촘한 일정을 즐겁게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집행 문제,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동원의 책임을 묻는 문제, 동의 없는 야스쿠니 합사 취소 문제 남아있는 과제들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남아있는 문제에 대응할지 고민을 안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교류를 계기로,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방향에서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 활동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협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