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재정위][논평] 무의미한 정부의 연금계획운영방안을 비판한다
[논평]
무의미한 정부의 연금계획운영방안을 비판한다
정부는 오늘 국민연금법에 따른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안은 그동안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연금개혁을 제시했던 정부의 말과 달리 개혁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 69시간초과근무 논란과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한 논란 등 부실한 내용으로 다른 개혁과제에서 호된 비판을 받다 보니 마지막 개혁과제인 연금에서는 아예 개혁의지 자체를 상실한 듯하다. 이래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 국민의 노후도 아무것도 담보할 수 없다.
정부의 발표에는 다음과 같이 3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무책임한 떠넘기기다. 정부는 연금과 관련해 가장 첨예한 쟁점인 보험료율 인상과 명목소득대체율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정하지 않고 국회에 공을 떠넘겼다. 한 국가의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한 처사다. 연금개혁을 무려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제시해놓고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는 모르겠으니 국회가 정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정부 스스로에 대한 배신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연금개혁을 외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노후대비와 직결되는 기초연금과 수급개시연령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기초연금에 대해 40만원으로 인상을 하겠지만 그 시기와 방법은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하겠다면서 또 발을 뺐다. 주요국정과제인 국민연금개혁의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구체적 내용은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한다는 순환논법적인 표현도 이해하기 어렵다. 수급개시연령의 경우 우려했던 연령상한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여지를 뒀다. 수급개시연령을 높이면 가뜩이나 열악한 노년층의 생활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인 현재 노년층의 생활 수준을 더욱 악화시키는 수급개시연령 상한은 실행해서는 안 되는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조건을 붙여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발표는 매우 우려스럽다.
셋째, 국민연금의 불신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없다.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온 지급보장 법제화를 발표했지만 과거에도 보건복지부는 지급보장법제화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즉,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말뿐인 ‘지급보장법제화 추진’이 외에 아무런 대책을 밝히지 못했다. 지급보장 법제화는 연금신뢰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의 하나일 뿐이며 단순한 법제화 이상의 고강도 조치가 필요한 것이 국민연금의 현실이다. 신뢰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투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태도를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국민의 불신에 비해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이번 방안에는 노령연금을 받는 국민에게 근로소득이 발생할 경우 연금액을 감액하는 제도를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내용, 자녀를 낳으면 추가 가입 기간을 인정하는 출산 크레딧을 둘째 자녀 이상에서 첫째 자녀로 확대 적용하고, 군 복무 기간 전체에 크레딧을 인정하는 방안 등 긍정적인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긍정 요소들은 앞서 언급한 3가지의 중요한 문제점 때문에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진정한 연금개혁은 국민 모두에게 국민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작은 국민연금기금 소진에 대한 우려를 없애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잠재우고,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금이 항구적으로 존속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재정투입을 포함한 기금안정화 방안을 정부의 명확한 입장으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적 불안감이 해소되고, 정부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형성될 때 비로소 연금개혁의 실질적인 첫 발을 뗄 수 있다.
민변 복지재정위원회는 이러한 우려를 바탕으로 정부의 이번 발표를 강력히 비판하며 다시금 책임감 있는 연금개혁방안을 행정부의 이름으로 분명하게 국민에게 발표할 것을 촉구한다.
2023년 10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복지재정위원회
위원장 이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