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회 후기] 우리 안의 전태일 – <네 이름은 무엇이냐> 전태일 연극 관람 후기 –

2022-11-04 66

우리 안의 전태일

– <네 이름은 무엇이냐> 전태일 연극 관람 후기 –

김연정

 

2022. 10. 15. 파리바게트 공장에서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딱 일주일이 지난10. 22. 전태일 연극 <네 이름은 무엇이냐>를 보러 갔습니다. 전태일 평전도 읽었고,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보았기 때문에 전태일을 주제로 한 세 번째 작품을 보는 셈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문화생활이었지만 가는 걸음이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습니다. 내용이 너무 무겁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여러 명의 전태일이 등장했습니다. 전태일의 배고픈 어린 시절을 지나 평화시장이 배경이 되었고 끔찍한 노동 환경, 어린 여공들, 마음 여린 재단사 전태일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연극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볼 때마다 매번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에 놀랍니다. 똑같은 시청각 작품인데도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공장에 가서 또는 공장에 간 것처럼 공장을 찍으면 되지만 연극은 ‘공장이 배경이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정해져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연극을 만드는 사람은 한편 얼마나 신나고 한편 얼마나 막막할까요. 마치 개업변호사처럼..

여공들은 정말 어린 아이들이 배우로 나와 연기를 했습니다. 연기를 잘하는 아이들은 잘하는 대로 연기를 못하는 아이들은 못하는 대로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딱 내 딸 또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전태일 책을 보고 영화를 보았을 때는 허리도 펼 수 없는 좁은 다락에서, 창문도 휴일도 없이, 주사로 잠을 쫓아가며 일을 하는 그 모든 사정을 알고 끔찍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애 엄마가 된 지금은 ‘애들이 일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끔찍함이 느껴집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만났습니다. 한자 투성이의 읽을 수 없는 책. 전태일의 때늦은 대학생 친구 조영래 변호사는 이 장면의 연관검색어입니다. 사실 한자로 인쇄된 근로기준법은 나도 잘 읽지 못합니다. 지금은 변호사도 한글 법전을 읽는 세상이지요. 까막눈만 아니면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노동자는 죽어나갈까요. 커다란 소스배합기에 법전 종잇장이 앞치마처럼 빨려 들어가는 상상에 순간 몸을 떨었습니다.

바보회 전태일입니다. 한 손엔 근로기준법을 들고 다른 한 손엔 평화시장 설문조사지를 들고 한줄기 빛과 같은 근로감독관을 향해 달려갑니다. 전태일이 근로감독관 앞에서 가로막히는 장면은 연출과 연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마치 내가 차단되는 것처럼 무대 위 전태일과 같이 쫓아갔다 밀려났다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공무원을 했던 탓에 내가 저러지는 않았나 뜨끔했습니다. 옆에서 같이 관람하신 분은 지금도 공무원이라 아마 오래 뜨끔했을 겁니다.

신랑은 96학번인데 대학시절 동아리 이름이 ‘바보반’이었습니다. ‘바르게 보기’라는 뜻을 가진 언론동아리라고 들었는데 바보회에 따온 말이 분명합니다. 지금 대학생 중 바보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도 동아리나 학생회 하는 애들이나 알았을 테니까요. 대학생들의 사회적 책무로서 정치 참여 뭐 이런 거 주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저도 안 했는걸요), 그래도 전태일은 다들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순신처럼 세종대왕처럼 존경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은 모두 꺾였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과 라이타를 들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 여러 명의 전태일이 모두 올라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 모두가 전태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가슴이 뜨거워지며 내 안의 전태일을 느끼기에는 전태일은 너무도 큰 사람입니다. 전태일의 뜻을 잇기는커녕 노동위 수요모임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마음이 무거워지는 공연입니다.

전태일은 22살에 산화했습니다. 나는 어느새 전태일의 두 배를 살았습니다. 나이가 무색하게 전태일은 너무나 존경스러운 어른이지만, 또 이 나이를 먹고 나니 전태일이 22살짜리로도 보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개업하느라 바빴고, 내 사무실 만드느라 바빴다고 변명 좀 늘어놓고, 다음 주부터 노동위 수요모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반성문 같은 관람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연극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무대를 준비하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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