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기 자원활동가 인터뷰] “여성의 결정을 믿어라.”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 3인과의 대담

2019-05-17 146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해당 조항들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낙태죄가 형법으로 존치된 이래 66년,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이 이루어진지 7년 만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전의 중심에서 낙태죄의 위헌성을 입증하고 판결을 이끌어낸 대리인단(단장: 김수정, 류민희, 박수진, 유원정, 이소아, 차혜령, 천지선, 최현정 이상 8인) 중 천지선, 류민희, 박수진 변호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

자원활동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리인단 변호사님들께서 찍은 사진을 보고 역사의 한 가운데 서 계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원활동가 모두 낙태죄 대리인단 변호사님들을 꼭 인터뷰하고 싶다고 마음이 모아져서 이렇게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천지선 변호사님부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천지선 안녕하세요. 저는 천지선 변호사고, 민변 활동한지 8년차입니다. 민변에서는 여성위랑 노동위, 소수자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여성위에서 총무간사(총괄간사), 노동위에서 산업재해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성운동, 노동운동하는 사람이고 특히 건강권에 관심이 많습니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일하고 있는 류민희 변호사입니다. 천 변호사님처럼 저도 8년차 변호사이고 민변에서는 소수자 인권위와 여성 인권위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수진 박수진이라고 하구요,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민변 여성위원회 내의 이주여성법률지원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장분위기 및 당시 소감

 

자원활동가  낙태죄 위헌 선고 당시 분위기를 알고 싶어요. 단장을 맡으셨던 김수정 변호사님께서는 위헌이 선고되면 만세를 부를 것 같다고 하셨는데 실제 목격하셨는지(하하), 그리고 변호사님들은 또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천지선 저희가 방청석 제일 앞줄과 두 번째 줄로 배정을 받았어요. 저는 앞줄에 앉았고 제 옆으로 김수정 변호사님, 차혜령 변호사님, 유원정 변호사님께서 앉아 계셨는데 다들 휴지를 돌려가며 눈물을 닦았죠.(웃음)

박수진 뒷줄은 선고 요지를 열심히 받아 적었어요. 나가서 바로 단장님 인터뷰도 하시고, 선고 결과를 바로 알려야 하기 때문에 결정문 초안은 나오지만 벅찬 마음으로 받아 적었던 것 같습니다.

류민희 어느 포인트에서 우셨어요?

천지선 맨 처음 헌법재판소장님이 선고 후 단순위헌 의견, 합헌의견을 말하겠다고 순서를 설명하실 때 헌법불합치 결정에 안심하면서 울컥했고요. ‘실질적인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라는 부분이 나올 때에 특히나… 이후 이은애 재판관님께서 단순위헌 의견을 선언적으로 읽어주셔서 더 벅찼던 것 같아요. 다들 그랬어요. 너무나도 원했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얘기들이잖아요.

 

선고 전, 비장한 표정의 7인. 카메라 앞이지만 아직은 웃을 수 없다.

 


대리인단 구성 및 참여 계기

 

자원활동가 이 사건을 맡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류민희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에 이미 올라가있던 사건이었어요. 신문 기사 끝부분에 현재 심리중이라고 쓰여 있는 걸 정말 우연히, 운 좋게 발견해서 민변 여성위를 중심으로 여러 변호사 분들을 모셔서 두 번째 대리인단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박수진 헌재 결정에 따라 한동안 그 결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이 사건이 다시 헌재에 올라간 이상, 현행 낙태죄 관련 조항의 위헌성이 여성인권의 측면에서 그 위헌성이 심리되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청구인분의 기존 변호인단 분들의 경우 청구인분이 의사이다 보니 269조(자기낙태죄 조항) 보다는 270조(의사낙태죄 조항)에 집중하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천지선 (연이어) 그래서 당사자 분께 ‘269조 자기낙태죄’가 위헌이 되면 당연히 ‘270조 의사낙태죄’ 또한 위헌이 되니 269조 중심으로 변론할 수 있도록 동의를 구하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원활동가 변호사님들께서는 어떻게 대리인단으로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천지선 저랑 차혜령 변호사님은 2013년도에 낙태죄로 기소된 여성 변호인단을 같이 했었고 당시 패소했어요. 그 사건은 남자친구가 임신종결 사실을 알려서 여자 분이 기소된 전형적인 케이스였죠. 남자 분은 방조죄로 기소가 되었음에도 무죄가 나왔고, 여자 분만 유죄로 벌금 200만원이 나왔던 가슴 아픈 사건이었어요. 최현정 변호사님과는 헌법 소원이 제기될 즈음에 의원실에서 재생산건강기본법(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초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최현정 변호사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합류하게 되었죠.

류민희 김수정 단장님께서는 헌법 소송의 대가셔서(웃음) 자연스럽게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천지선 단장님께서 평소에도 여성위에서 “낙태죄는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아직도 왜 해결이 안 되고 있나.“라고 말씀하시던 분이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합류하셨어요.

 

박수진 제가 아마 제일 마지막에 대리인단에 합류했을 텐데요. 변호사 되기 전에 일반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 공부를 할 당시 임신종결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 논문을 쓰려고 했었어요. 그 때가 2010~2011년이었는데 당사자분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부터가 굉장히 어려워 쓰지 못했죠. 그래서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기회가 된다면 관련 소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소식을 듣게 되어 합류하게 되었어요.

 

 

 


대리인단 내부 팀워크 및 역할 분담

 

자원활동가 헌법재판소에 올라가 있던 사건을 우연히 발견하고, 여성위 안에서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분들이 결합하셨던 거군요. 다들 열의가 넘치셨을 것 같아요.

천지선 다들 주심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고 각자 자기 역할을 열심히 했죠. 저희가 팀워크가 정말 좋았어요.

박수진 네 정말 저희 대리인단은 팀워크가 좋았어요. 대리인단이 꾸려져서 의견서 초안 작업을 할 때, 전체적인 톤을 맞추기 위해 주심 변호사가 다 쓰는 경우도 있어요. 반면 저희는 의견서 초안을 각자 나누어 썼는데, 뒤에 톤 조절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굉장히 잘 나왔어요.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하여 취합된 초안을 같이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최종 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류민희 저희가 준비 기간 동안 세미나처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던 덕분인 것 같아요. 커리큘럼도 매 회의마다 있고, 발제자가 있고, 다 같이 공부하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 내내 ‘아 오늘도 배우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시기에 함께 이해도를 높인 게 나중에 따로 서면을 썼어도 톤이 비슷하게 나올 수 있던 비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박수진 의견서 초안작업 단계에서는 각자 담당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각자의 역할들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서 굴러 갔고, 나누어 썼지만 모두의 의견이 전체의 결과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류민희 최현정 변호사님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난 결정을 반박하기 위해 이 부분을 정말 치밀하게 준비하시면서도 회계, 서면제출, 당사자분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아 해주셨죠.

천지선 단장님은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공개 변론에서 최후 발언을 하고, 선고 직후 언론대응을 하시는 등 단장님의 역할을 하셨고, 주심의 역할은 차혜령 변호사님이 하셨죠. 차혜령 변호사님께서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의 주체로서 여성이 처해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최대한 설명하자고 얘기를 하셨고, 실제로 공개 변론을 시작할 때에도 아주 자세하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하셨어요.

박수진 의견서의 전체 구조를 보면, 구체적인 권리 논증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성에게 임신, 출산, 성관계, 양육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연대기적으로 여성이 처한 상황을 풀어내고 그 위에서 권리논증이 이루어지도록 했죠.

 

 


공동 대리인단으로서의 노하우

 

자원활동가 팀워크가 너무 좋았다고 하셔서 드리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앞으로 또 다른 소송에서 대리인단을 꾸리게 될 변호사님들이 계실 텐데 그분들께 대리인단 관련하여 전수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을까요?

류민희 우선 저희 자체가 민변의 유구한 공동 대리인단 전통에서 나온 사람들이에요. 민변에서 다른 사건들을 통해 배우고 연구한 것들을 가지고 이 사건에 맞게 재구성했던 거죠. 그래서 일단 민변에 들어오셨으면 여러 대형 소송, 공동 대리인단에 들어오시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노하우라고 한다면, 권리주체의 삶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추상적인 법리나 헌법 이론에 얽매이기 보다는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자료들을 참고하시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희도 서면 안에 갇힐 때면 집회를 자주 갔어요. 실제 발언하시는 것을 듣고 ‘아 그렇지. 그래 저 얘기야.’ 깨달으면서 여러 공동의 당사자, 이해 관계자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변론을 하고자 했었죠. 서면에서 좋은 법적 논증을 하는 것이 저희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서면만 좋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천지선 그리고 감사하게도 변론센터에서 기금을 지원해주신 덕에 안정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꼭 인터뷰에 넣어주세요(웃음).

 


낙태죄의 위헌성

 

자원활동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밝히기 위해서 171페이지에 달하는 변론서를 작성하셨다고 들었는데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

류민희 임신종결을 형법으로 규율하던 시대는 너무나 옛날이야기이고, 한국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처벌할 것인가라는 맥락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천지선 일단 생명권, 건강권이 위협받는다는 내용이 있겠죠. 법으로 임신종결을 규제하였을 때 실제로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임신종결의 수가 아니라 모성사망률입니다. 임신종결이 범죄화 되어있기 때문에 의대에서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강간 피해자조차도 안전한 임신종결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죠. 물론 그에 대한 사전적인 정보도 받을 수 없고 이후로도 각종 부작용, 후유증도 전혀 관리되지 않고요. 합법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임신종결이 건강 보험으로 지원되기까지 하는데 말이에요. 류민희 변호사님 국제규정 얘기도 좀 해주세요. 제일 전문가시면서(웃음).

류민희 여성의 삶에 있어 임신종결은 모성 건강 측면에서 아주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이고, 이 얘기는 즉 임신종결이 죄가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거든요. 낙태죄는 그 자체로 위헌적임을 죄 자체가 스스로 웅변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합법적이면서 안전하고 접근성 있는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야 하는데, 그동안 한국에서는 낙태죄가 비정상적으로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죠.

박수진 저희가 위헌 논증했던 권리들은 자기결정권, 평등권, 건강권, 모성보호에 관한 권리, 신체 완전성에 관한 권리 정도이고요. 그리고 뒤에 가서는 류민희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재생산권 등 해외 사례나 국제기구들의 논의들을 충실히 실어서, 임신종결은 국가가 보장해야하는 권리라고 나아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위헌성 논증과 같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요. 구체적인 기본권 논증으로 들어가서 낙태규정의 보호 목적 중에 하나인 ‘태아의 생명’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 보다는 출산율을 통제하는 국가 정책수단으로 낙태죄를 활용해온 지난 역사를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원활동가 말씀을 듣다보니, 변론서에 쓰셨던 많은 부분이 실제 결정문 의견에 상당 부분 반영된 것 같습니다.

류민희 저는 세계보건기구(WHO) 자료가 언급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국제산부인과학회(FIGO) 자료까지 언급할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천지선 게다가 저희가 공개 변론을 작년에 했기 때문에 경력 단절 여성 통계 재작년 자료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결정문에 작년 통계를 직접 찾아서 넣어 주셨더라고요. 어떤 분께서 실제로 결정문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는 굉장히 감동했고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변론 준비 과정

 

자원활동가 결정주문에서 전인적 과정임을 명시한 점,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결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논증하셨는지, 구체적인 과정과 내용이 궁금합니다.

류민희 그 자체가 사실 핵심이었죠. 생명권이 절대적인 권리인데 이를 자기결정권이랑 도식적으로만 비교하면,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듯 차혜령 변호사님이 서면 초반에 여성의 삶이 먼저 드러나게 했고, 저희 공개변론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해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이길 수 있다는 걸 떠나서 여성의 삶을 모르고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요.

박수진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기타 기본권의 충돌 구조로 계속 가져가면 헌재가 위헌 논증을 내리기 굉장히 어려워지거든요. 생명권은 일부라도 제한하면 그냥 박탈이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권리 충돌 구조에서 벗어나는 위헌 논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했죠. 그래서 저희 의견서는 ‘태아는 생명이지만 생명권의 헌법상 권리 주체인가에 있어서 그렇지 않다. 권리 발달 단계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할 수 있고 관련 판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그렇게 보는 게 맞다’는 주장에서 시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설령 권리 주체라고 하더라도 여성의 기본권과 비교했을 때 단순히 권리 충돌로 볼 수 없다. 여성이랑 태아는 특수한 관계이기에 여성의 전인적 결정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이를 충돌로만 보기 어렵다’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 혹시 변론서를 쓰면서 어려움을 겪으신 부분은 따로 없었나요?

천지선 사실 되게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낙태죄와 관련해서 건강권은 연구된 것이 거의 없어서 최대한 자료를 끌어 모았거든요. ‘건강권’이라는 말이 아직 법률용어로 확립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고.. 그래서 국제기구의 권고를 많이 담았어요.

박수진 또 2012년에 합헌결정에서 주로 언급되었던 것이 자기결정권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재생산권, 평등권, 건강권 등과 같은 여성의 다른 기본권도 최대한 많이 포함하려고 했어요. 이에 관하여는 논문이 많지 않고, 해외 사례를 찾아서 봐야 하니 그 과정이 어려웠죠.

류민희 최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던데, ‘어느 성별이 자신의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범죄로 취급당하겠느냐.’ 이게 바로 평등권 문제거든요. 저희도 이 부분을 논증하기 위해 애썼죠.

박수진 결정문에서 명시적으로는 다른 기본권은 나아가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논증 부분을 자세히 보면 건강권, 재생산권, 평등권 등도 포괄해서 고려한 것으로 보여요. 이런 헌재의 취지를 잘 살려서 다른 기본권 측면에서도 연구자분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고, 당연히 무엇보다 이후 입법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하겠죠.

 


결정에 대한 예측

 

자원활동가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이 있었고, 대리인단 분들의 노력 끝에 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의 판결을 받게 되셨는데,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고 계셨나요?

천지선 사실 제가 민변 논평 초안을 썼어요. 전날에 민변 논평 초안을 승소와 패소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를 해놓았어요. 그리고 대리인단 내에서 수정의견을 받았는데, 패소 논평이 아닌 승소 논평만 수정의견을 주시더라고요(웃음).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계속 불안함은 남아있지만 승리를 예측했던…

박수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서 신중해지는 측면이 있긴 했지만, 임신종결에 대해 2012년(합헌결정)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이야기 되는 등 여러모로 조금 더 우호적인 상황적 변화가 있어서 솔직히 결과에 대한 기대가 있었죠.

류민희 2012년 때 낙태죄의 존재가 많이 회자된 시기도 아니었는데도 4:4가 나왔는데 ‘잘만 준비하면 다음 사건은 이길 수 있는 사건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뭘 잘 몰랐던 거 같아요(웃음), 설마 안 좋은 결과가 나오겠어 하면서(웃음).

 


연대의 힘

 

자원활동가 2012년과는 다른 상황적 변화가 있었는데요, 헌법불합치 선고가 되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의 연대를 실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천지선 저희는 숟가락을 얹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미투 운동 후, 분위기가 정말 바뀌었죠. 검은 시위 등 낙태죄 폐지 집회에도 가능한 많이 나가려고 노력했는데, 나갈 때 마다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운동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버텨주신 선배님들,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지지해주신 모든 여성과 남성들, 전면에서 뛰어주신 활동가분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 여성들,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고 싸운 후배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류민희 한 세대의 젊은 여성 뿐 아니라 전세대 여성들이 차별과 침해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이 조항이 가진 위헌성을 인지하고 분노를 느낀 거죠.

박수진 지금은 정말 많은 목소리들을 내고 계세요. 임신종결 경험 있으신 분들께서 사례를 엮어 책을 내시고,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여 인터뷰를 해주시거나 영화에 출연하는 등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신 것들이 이번 선고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희 대리인단이나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및 ‘성과 재생산 포럼’ 등 여러 단체들이 법정 안팎에서 협업을 하고 각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것들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라 생각해요.

류민희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요. 모든 게 맞아 떨어졌어요.

천지선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향후과제

 

자원활동가 천지선 변호사님께서 “싸움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셨던 인터뷰를 보았는데, 앞으로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류민희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사실 최종적으로 입법이랑 정책이 잘 들어서야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형법 뿐 아니라 임신종결이 모든 사람에게 접근성을 가지기 위하여 약물을 통한 임신종결 관련 문제, 건강보험, 의료인 수련문제, 포괄적 성교육을 통한 피임 실천 등 복합적으로 형법 이외에도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많아요.

전에는 헌법재판소 한 곳만 보는 단순한 논쟁이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이럴 때일수록 결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잘 지켜보아야 하는 시기에요.

박수진 ‘범죄’로서 일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드는 건 쉽지만, 각자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리’로서 보장하는 입법을 설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장애여성, 이주여성, HIV 감염인, 청소녀가 처한 임신의 상황이 다 같은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든 여성의 재생산권과 임신종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입법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인 거죠.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고요. 헌재 결정 이후 저희 대리인단도 결정문의 취지를 잘 설명하거나 입법방향에 관하여 논의할 수 있는 자리나 기회가 있음 최선을 다해서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입법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천지선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재판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언론 활동을 자제해왔는데, 지금은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도 입법운동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응하고 있어요. 이 민변 인터뷰는 로망이었고, 사심에서 하는 거지만요(웃음). 많은 분들께서 결정 나왔으니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박수진 임신종결 관련해서 민변 여성인권위 안에서 재생산TF가 꾸려졌어요. 관심 있는 더 많은 회원분들께서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천지선 그리고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저희가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게 임신종결을 적극 찬성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낙태죄 폐지가 일부 여성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고, 낙태죄로 인해 고통받은 많은 여성과 남성, 미성년자와 성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야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끝난 게 아니라고, 안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류민희 영광스러운 결정이긴 한데 늦었어요. 많이 늦었어요. 그러니까 입법부와 정부는 빨리 제 역할을 해야 하겠죠. 혼란스럽다 여겨지실 때는 하나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여성의 결정을 존중하라. 기본적으로 여성을 믿어라.”

아, 비교적 짧은 결정문이니 헌재 결정문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에도 헌재 결정문 링크를 연결해주세요. 정말 젠더스터디, 젠더법학 모든 학문에 좋은 텍스트에요!

결정문 (클릭 시 이동합니다.)

박수진 헌재 결정문을 단순히 얘기하면 ‘임신종결은 범죄가 아니다,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만 써놓은 게 아니라 ‘이것은 권리의 문제이다. 허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권리로서 보장해야 하고 여성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조금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여성을 믿지 않으면 여성에 대한 의심 속에서 그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제한조건들이 (계속) 따라붙을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선택은 전인적 결정이고 그 결정까지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거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게 우리가 가장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꿈꾸는 세상

 

자원활동가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지금까지 6년 그리고 8년차 변호사 생활을 해오셨는데, 그렇게 활동하시면서 꿈꾸는 세상이나 그리고 있는 사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류민희 저는 사무실 개인 소개란에. “삶이 모든 이에게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정말 여러 가지 삶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거든요. 가끔 지나가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 (그분께) 삶의 의미가 고통인가 축복인가를 떠올려 봐요. ‘고통이라면 어떤 것이 문제일까’ 말이죠.

천지선 저는 최근에 후배 변호사님께 꿈이 뭐냐는 질문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어요. 한참을 생각해봤더니 “선량함을 지키면서 살아남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미워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너무 미워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지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기 안에 선량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러한 선량함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수진 저는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적절히 소유하고 적당히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삶. 개인적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류민희 보통은 이러한 일이 몇몇의 사람들이 희생해서 하는 서사가 되기 쉬운데, 저희는 정말 하면서 즐겁고 스스로가 좋아서 한 일이거든요. 돌이켜보면 준비할 때는 역사적 무게를 잘 느끼지도 못했고 마냥 즐겁게 몰입해서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결과가 나오고서야 그 무게를 조금 더 느꼈죠.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재미있게 하면 잘된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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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이번 헌재 결정에 담긴 ‘여성을 믿어라’라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여성의 결정을 온전히 믿고 존중하는 사회가 오기까지 천지선, 류민희, 박수진 변호사님의 멈추지 않을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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