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문법』, 『인권과 인권들』 독서 토론 후기
이하나(민변 13기 자원활동가)
7월 월례회는 『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 두 책에 대한 독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발제를 분담해 책을 정리하고 논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두 책 모두 인권 관련 담론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는 이론서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월례회 때까지 다 읽어 오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자들 모두가 성실히 발제를 해왔기 때문에 전반적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조효제 선생님의 『인권의 문법』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권 이론 전반을 개괄하고, 인권에 대한 비판이론을 분야별로 충실히 소개한 뒤, 인권 민주주의의 모색을 결론으로 제시하는 종합적인 인권이론서였다. 저자의 논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그 전까지는 다양한 인권담론들을 일별하고 있어서, 처음 인권을 접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정정훈 선생님이 쓴 『인권과 인권들』은 인권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책이었다. 『인권의 문법』이 포괄적인 인권 개설서에 가깝다면, 『인권과 인권들』은 저자의 논지를 중심으로 인권에 관한 철학적 논점을 재구성한 정치철학 저술이었다. 나는 두 책 중 『인권과 인권들』을 맡았는데,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가 다소 사변적이어서, 보다 생생한 토론을 이끌어내고자 최근에 있었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사례와 책 내용을 비교하는 발제문을 썼다.
『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인권이 ‘정치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주장은 인권이 흔히 정치와는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합의 가능한 도덕적 권리처럼 여겨지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한다. 인권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인권보장에 소홀한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 위해 ‘인권은 정치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권에 정치적 계산을 대입하지 말라’는 수사를 구사하는 마당에, 위 저자들은 어떤 근거로 저런 도발적인 테제를 제시하는 것인가? 내가 맡은 책 『인권과 인권들』에서는 근대 인권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 전개된 일련의 철학적 논쟁들로부터 인권의 근본적인 정치적 성격을 도출하고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인권은 애초에 그것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기에 현실의 공동체를 변혁하고 재조직하는 ‘정치’의 원리로 제시되었으며, 그 후 이어진 일련의 인권 비판 및 대안 담론들은 모두 정치와 분리된 인권 개념의 위험성을 줄곧 지적해왔다.
먼저 인권에 비판적인 이들은 주로 현실에서 인권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인권은 특정 국민국가에 의해 ‘시민’으로 인정된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장되어 왔기에, 시민에서 배제되거나(비시민) 열등한 시민으로 규정된(2등 시민) 이들은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에 따라 인권 비판론자들은 ‘시민 아닌’ 인간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권리로 부여되는 탈정치적 인권 개념이 무용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억압을 은폐하는 기만적 역할까지 한다고 공격한다. 이에 맞서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은 바로 그 ‘시민 아닌’ 인간이 인권을 주장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변혁하는 저항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권은 기존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로 하여금 그저 ‘살아있게만 하는’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그 이상에 비추어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주체화의 언어라는 것이다. 정정훈은 바로 후자의 관점을 채택하여, 인권이 근본적으로 정치적 권리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과제는 인권을 정치와 무관한 도덕적 규범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자유를 선언한 인권의 이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인권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인권의 문법』 또한 ‘인권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비슷한 결론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인권이 그 자체로 최고선을 보증할 수 없는 개념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정치적 과정을 거쳐 인권이 민주주의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인권의 문법』은 『인권과 인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발제를 나눈 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쟁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쟁점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 두 번째 쟁점은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였다. 우선 인권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각자의 생명 및 존엄을 존중하기로 다른 이들과 약속해야 하므로.’라는 입장과, ‘우리는 홀로 살 수 없고, 언제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므로’라는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사회계약론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계약론의 전제인 ‘자연상태’나 ‘전쟁상태’가 현실과 동떨어진 의제적 개념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실제로 무권리 상태에 처하는 경우, 예컨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 죽는다거나, 난민 혹은 이주노동자들이 어떠한 제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그러한 무권리 상태를 끔찍한 ‘전쟁상태’에 비유해 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도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쟁점인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법 팽팽한 의견 대립이 전개되었다. 특히 『인권과 인권들』의 저자가 지나치게 신자유주의를 인권의 ‘적’으로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가 그 특성상 인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고, 신자유주의를 인권 친화적인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지 않느냐는 재반론이 오고갔다. 그러나 토론 자리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기는 힘들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토론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상당한 양의 발제와 각자의 소견을 나눈 것만으로도 7월 월례회는 알찬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독서 토론을 통해 기존에 내가 인권에 대해 갖고 있었던 파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나아가 여전히 인권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자칫 전문적인 법적 담론에 갇힐 수 있는 인권 개념을, 피억압자들의 생생한 저항의 언어이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살려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도 현장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변호사들 및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바로 위 두 책이 힘주어 주장하는 ‘인권의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의 이상을 제약하고 후퇴시키려는 잔혹한 현실에 맞서서, 보편적인 존엄과 평등자유를 요구하며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