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왕 변호사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장애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가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 이 거침없고 유쾌한 남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불운이 찾아 왔을 때, 사랑을 쟁취할 때, 하고자 하는 일을 찾을 때,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통 크게 맞장을 뜨는 볼수록 매력남 김재왕 변호사를 소개합니다.
김지미 김재왕 변호사님, 우리 회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재왕 자기소개하려니 되게 민망하네요. 일단 저희 희망법 홈페이지에는 제 소개가 이렇게 나가 있어요.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참 그런데..
김지미 ‘귀를 쫑긋 세우던 미소남, 장애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맞죠?
김재왕 어, 네~(웃음). 그리고 제 트위터에는 ‘아내랑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겼고..’ 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어요.
김지미 여태까지 중에 제일 독창적인 자기소개이긴 한데 변호사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주세요.
김재왕 저는 김재왕이라고 하고, 원래 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차저차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원으로 한 4년 정도 일을 하다가 로스쿨에 들어가게 됐고 2012년에 변호사시험에 다행이 붙어서 그때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민변은 2010년에 가입을 해서 지금은 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공익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원래 생물학 전공이시죠?. 생물학을 전공하다가 여차저차해서 변호사가 됐다고 하셨는데 그 여차저차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김재왕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눈이 안 좋아져서 방황과 고민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복지관에서 기초재활교육이라고 했었어요. 중도실명자를 위해서 컴퓨터활용법이라든가 점자 교육, 보행교육 같은 걸 하는 건데 이걸 받고 나서 앞으로 뭐할까 하고 있을 때 여연심 변호사의 소개로 국가인권위에서 상담 업무를 하게 됐어요.
김지미 아, 인권위 상담을 소개해준 지인이 여연심 변호사예요?
김재왕 예, 여연심 변호사하고 제가 친구거든요. 그 때 연심이가 사시 보고 발표나기까지 인권위에서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가 연수원 들어갈 때가 돼서 그걸 저에게 소개해준 건데, 가면 뭔가 다른 길도 생길 것 같고 상담에 대한 관심이 있기도 해서 거기서 일을 하게 된 거죠. 사실 그 전에는 인권위가 뭐하는 곳인지도 잘 몰랐어요.
김지미 생물학을 전공했으면 원래 꿈이 그쪽 분야였나요?
김재왕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을 봤는데 이 책이 사람을 현혹시키는 그런 책이예요(웃음). 그 책의 머리말에는 식물은 정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식물도 정신세계가 있다 뭐 그런 내용이 있고 부제가 ‘식물도 생각한다.’ 였어요. 식물은 주변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우주에서 나오는 방사선하고도 교감하고 등등. 식물이 단순히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삶을 개척하려고 하는 존재다 라는 주제의 책이었어요. 제가 그때 혹 한거죠. 그래서 대학 갈 때 자연대로 가서 전공을 생물학과로 정했었죠.
김지미 오른쪽 눈은 태어날 때부터 안 좋았고 왼쪽 눈만으로 20년 넘게 살다가 대학원에 들어간 해에 왼쪽 눈까지 나빠진 거죠?
김재왕 저 같은 경우는 시신경이 죽는 거였는데 그게 어느 정도 많이 진행이 되어야지 그때부터 자각이 있대요. 계속 나빠졌던 것 같은데 알게 된 게 2003년이죠.
김지미 태어날 때부터 전맹인 사람과 중도 실명자를 굳이 비교하자면 중도실명자가 충격의 강도나 적응이 훨씬 어렵다고 하던데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 그 분야를 위해서 대학원까지 진학을 한 첫 해에 눈이 안 좋아져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와중에 진로를 아예 바꾼다는 게 저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것 같아요.
김재왕 이게 사실은 제가 열심히 생각해서 발상을 전환한 건 아니고 처음엔 공부를 계속 할까 말까를 생각 했어요.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안하는 쪽으로 정리를 하고 약대 편입을 할까 해서 잠깐 공부하다가 접고, 공무원 시험을 한 번 봐볼까 했는데 책만 사놓고 공부 안하고. 그러다가 배운 게 그거라고 또 학원 선생님 조금 했었어요. 생물하고 화학 가르치는. 그걸로 부업하다가 인권위 간 거는 특별한 이유 없이 연심이가 그냥 한 번 해 보라고 해서 한 거예요.
김지미 우연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나의 진로를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는 그런 건가요?
김재왕 그렇죠. 사실 인권위에서 일하다가 로스쿨 간 것도 제가 열심히 생각해서 로스쿨 간 건 아니고요. 제가 인권위에 있을 때 문경란 위원이 2008년에 부임을 하셨어요. 제가 2008년에 결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해 유난히 인권위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 번 위원님께서 밥을 사주신다고 결혼한 사람들을 쭉 불렀거든요. 그때 문위원을 처음 뵀는데, 문위원께서 제가 인상에 남았었나봐요. 한 번 따로 불러서 로스쿨 같은 게 생기니까 한 번 가보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또 듣고 보니 혹 하잖아요. 내 인생은 왜 그런 게 연속이지?(웃음) 아무튼 그래서 로스쿨은 가게 됐어요.
김지미 인권위원회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했는데 생물학도였을 때는 인권이라든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라든지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었나요?
김재왕 제가 대학교 때는 사회과학학회 활동을 했어요. 다 이 수순이죠. 학회 하다가 잘 키워서 선거하면 와서 율동 좀 해라, 그러면 쫄래쫄래 가서 율동하다 보면 또 이제 2학년 되면 후배도 좀 데리고 와봐라 이러고. 3학년 때면 너희들 중에 누가 나와야 하지 않겠냐하는 이런(웃음). 저 같은 경우는 정에 이끌려서 총학생회 집행부도 하고 그랬어요. 의식이 있었다기 보다는 정에 이끌려서..(웃음)
김지미 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내가 소수자라고 불리는 그 집단의 일원이 되고 난 이후에 훨씬 더 생겼을 것 같은데.
김재왕 그렇죠. 사실은 장애를 가지기 전에는 이쪽 일은 잘 몰랐는데 조금씩 확대되어 가는 것 같아요. 다른 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는 것 같고.
김지미 김변호사는 인터뷰나 강연들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바로 다음 주에 법관들을 상대로 ‘장애인과 사법지원’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계획이지요? 그 강연에서 얘기할 내용을 잠깐만 이야기해준다면?
김재왕 제가 작년에 남부지법에서 비슷한 강연을 했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남부지법 원장님이 이번에 행정법원으로 가신 거에요. 그래서 행정법원에 한 번 더 오면 어떻겠느냐 그래서 하게 된 거구요. 어떤 내용이 좀 듣고 싶으시냐? 그랬더니 법관들이 대체적으로 궁금해 하는 것이 장애인이 당사자로 왔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의해야 할 점은 없느냐. 그리고 실제로 제가 이런 활동하면서 경험들이 있으니까 그런 사례들을 좀 소개해 달라 뭐 이런 취지였어요. 그래서 강의 내용도 제가 활동하면서 만났던 여러 장애 유형에 대한 것과 법원에서 2013년에 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어요. 그 내용을 좀 소개하는 그런 강의를 할 거고. 작년에 UN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권고한 것 중에 사법부에 관한 내용도 좀 있거든요. 그 내용도 좀 추가해서 할 예정입니다.
김지미 ‘장애인과 사법지원’ 이라고 했을 때 지금 가장 안 되고 있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재왕 질문을 바꿔서 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사실은 장애인 관련해서는 거의 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법원에서 해왔던 것은 수화통역하고 성폭력 피해자인 경우에, 특히 지적장애인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서 진술조력제도 이 정도만 들어와 있고, 나머지 부분은 사실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아직은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인 것 같고, 어쨌든 가장 시급한 부분은 형사단계에서의 어떤 지원?
김지미 경찰조사 받을 때부터 동석을 한다든지, 그런 부분 말씀하시는 거죠? 법적으로는 신뢰관계인 동석 하도록 되어 있기는 한데.
김재왕 그렇긴 한데, 그게 의무로 다 되고 있지는 않아요. 법문 자체가 ‘할 수 있다’ 재량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냥 옆에 앉혀놓는 수준이에요. 그러다보니까 실제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문제가 많이 되는데 이 사람이 어떤 표현을 하는지, 그 사람의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런 것을 전문가가 붙어서 그것을 전달해주는 과정이 필요해요. 경찰의 말을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줄 필요도 있고. 일종의 통역이라고 보면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가족 불러다 앉히기도 하고 그런 실정이죠.
김지미 장애 인권이라는 분야는 사법지원 포함해서 제대로 보장되는 분야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활동의 폭이 굉장히 넓다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애인들의 고속버스 타기 운동은 이동권과 관련한 것이고 문서들을 음성파일로 변환을 시켜줄 수 있는 그런 제도와 관련해서는 지적재산권과도 관련이 되고. 또 선거 때는 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이 논의되고. 그 중에서 내가 이 부분을 좀 더 중점적으로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을까요?
김재왕 사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바뀌는 것 같아요. 선거철엔 참정권, 시설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는 탈시설, 접근권 같은 경우는 제가 불편하니까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 밖에 없구요.
김지미 김변호사가 수행한 소송에서 성과가 있었던 경우 자랑 좀 해 주세요.
김재왕 되게 민망한데..(웃음) 제가 경험이 짧아서 소송에서 판결로 이긴 것은 별로 없어요. 그 중에 하나가 시각장애인이 스크린도어 없는 전철 승강장에서 떨어져서 상해를 입은 사건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을 맡은 적이 있어요. 1심에서는 전부패소 했었는데 항소심에서는 일부 승소를 했죠.
김지미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시각 장애인이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오는 띠리리리리 소리를 듣고 자기 쪽에서 들어온 줄 알고 발을 내딛었다가 추락한 사건이죠? 그런데 언뜻 보면 그게 왜 1심에서 전부패소지? 라는 의문이 들거든요. 1심에서는 왜 과실이 없다라고 판단을 한 거죠?
김재왕 상대가 철도공사였는데 법령상 해야 할 건 다 하긴 했어요. 민법 758조에 따라서 공작물책임을 물은 건데, 사실 공작물책임이 법적으로 하라는 건 다 했으니까 그게 사실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고. 2심에서 그나마 조금 받은 것은 공작물책임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그냥 신의칙에 따른 안전배려의무 위반 주장을 추가로 했거든요. 그래서 일부 승소 할 수 있었어요. 그 밖에 장애 쪽은 대부분 소송 들어가면 중간에 합의해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 제가 가장 밀고 있는 것은, 수능시험 문제가 있었는데, 이거 되게 황당하거든요. 특히 예전까지의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시험을 봤냐 하면, 평가원에서 점자 문제지를 주고, 그리고 점자를 잘 못 읽는 친구들에게 음성으로 문제를 알려준다고 문제가 녹음된 테이프를 줬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의 이야기가 점자로는 읽는 속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저히 문제를 풀 수가 없다. 테이프로 문제를 들어서 풀면 테이프는 자기가 원하는 데 가서 듣기가 어렵잖아요. 문제를 사실상 풀 수가 없다는 거예요. 특히 영어 같은 경우는 테이프를 주면 모든 문제가 듣기평가가 되는 거에요. 되게 어이없어요. 그리고 수학은 이 친구들이 중간 과정을 적어야 하는데, 적을 종이를 충분히 안 주는 거에요. 그래서 암산으로 풀고. 이런 식으로 2013년까지 시험을 봤어요. 그래서 저희가 재작년부터 열심히 문제제기를 했어요. 우리가 문제제기를 할 때쯤 평가원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책을 연구하고 있어서 시기가 잘 맞았죠. 그래서 작년부터는 컴퓨터로 시험을 봤고. 올해부터는 이 친구들이 공부할 때 쓰는 점자정보단말기라는 보조기가 있거든요. 그걸로 시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올해부터는 일부, 수학에서는 그걸로 시험을 볼 수 있게끔 되었어요.
김지미 수능에서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건 듣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던 일인데 아주 큰일을 해내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중에 ‘저희’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여기서 ‘저희’는 지금 일하고 계시는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 을 말하는 거죠? 이번에 시작장애인 최초 판사님도 나오셨는데 로스쿨 졸업 후에 법원이나 일반 펌으로 들어가지 않고 희망법 창립 때부터 같이 하셨잖아요. 없던 단체를 만들어서까지 내가 공익활동을 전담으로 하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김재왕 3가지 이유가 있어요. 이런 일을 하고 싶은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저의 경험을 살려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이쪽 일이었어요. 인권위에서 일하기도 했었고 인권위 다니면서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녔거든요. 그런 쪽 경험을 살리고 장애 당사자기도 하니까 그냥 로펌 들어가서 기업자문하는 것 보다는 이쪽이 좀 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게 두 번째 이유였고, 마지막 이유는 딱히 불러주는 데가 없었어요(웃음). 법원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김지미 통 크게 내가 만들어 보리라? (웃음)
김재왕 그건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웃음). 제가 2010년 민변 특별회원 가입을 하면서 13개 위원회 체크하잖아요. 입회 신청서에 보니까 제가 관심 있는 분야가 별로 없었어요. 그때 소수자위는 준비단계였죠. 소수자준비위원회. 거기에 체크를 했더니 연락이 와서 월례회의가 있는데 한 번 나오시라 그래서 한 번 나갔어요. 그 뒤로는 공부해야지 하고 안 나갔었죠. 그러다가 6월 달에 엠티를 간다는 거에요. 놀러는 또 가야지요(웃음). 그래서 엠티를 갔는데 이상한 무리들을 만났던 거죠. 서선영, 한가람, 조혜인.. 일단 서선영 변호사가 저랑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이런 거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할 생각 없느냐고 막 꼬드겼고. 엠티 가서 술 좀 들어가니까 한가람, 조혜인 이런 사람들이 또 막 붙어서 꼬드겨서.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들이 내가 엠티 온다니까 나를 꼬셔야겠다 해서 전략도 세웠다 이러더라고요. 그때 좀 비싸고 굴고 제가 좀 진지하게 고민을 했어야 하는데.(웃음)
김지미 희망법이 100% 일반 후원만 가지고 운영을 하잖아요. 그래서 재정이 상당히 열악하다고 알고 있어요. 저도 후원회원이어서 어제 희망법 뉴스레터를 받아 봤더니 3월 달에도 한 500만원 적자가 나있더라고요. 사무실을 유지 하고, 각자가 얼마 안 되지만 월급 받아가고. 이 정도 돈으로 그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달에 쓰는 돈 자체도 상당히 적고. 아까 결혼을 2008년도에 했다고 했잖아요. 가장으로서 무사하신가요?
김재왕 아시겠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돈쓸 시간이 없잖아요. 제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첫째가 사랑이고, 둘째가 건강이고, 셋째가 일이고, 넷째가 돈인 것 같아요. 다행이 돈이 일한테 밀리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괜찮은데 희망법으로서는 재정이 몹시 안 좋긴 하죠.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여러분의 후원이 절실하답니다.
김지미 우리나라가 워낙 후원문화가 정착이 안 된 것도 있지만 무언가를 후원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때 밥 못 먹은 아이들도 있고, 미혼모 가정도 있고, 상당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굳이 변호사들을 후원해야 해?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단 말이죠. 이런 질문을 누군가 했다면 김변호사는 어떤 대답을 하실 건가요?
김재왕 왜 절 또 시험에 들게 하세요(웃음). 그런 게 있죠. 밥 못 먹은 애들에게 밥을 먹게 해주는 것도 있지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저희가 하는 일은 밥을 못 먹는 아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에요.
제가 EBS를 많이 보는데, EBS에서 유니세프 광고가 자주 나와요. 불쌍한 하와의 얘기를 하면서. 한 달 3만원이면 하와 같은 아이 29명에게 영양실조 치료제를 전해줄 수 있다고. 하도 많이 봐서 다 외웠어요. 이 광고가 끝나면 이어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이런 광고를 또 해요. 배우다. 배고프지 않다. 배우다. 아프지 않다. 이러면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배고픔은 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렇게 나오거든요. 저희 쪽은 후자인 것 같아요. 소수자라든지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에게 뭔가 이 사람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려면 그 제도라는 게 어쨌든 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니까, 그러면 그 역할을 하는 데에는 이런 법률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거는 변호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지미 김변호사가 말한 가치의 1순위가 사랑이에요. 지금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살고 계시잖아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사랑하는 그녀와의 나이 차이가 좀 놀라워요. 아내가 12살 연상이죠?
김재왕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웃음). 내 인생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막 이러면서.
김지미 러브스토리 좀 들려주세요.
김재왕 아내와는 인권위 상담 할 때 만났어요. 아내가 인권위 직원이거든요. 같이 일하면서 만났으니까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알았었는데 얘기해보니까 말도 잘 통하고 저랑 비슷한 점도 많고 그래서 끌렸어요.
김지미 아무래도 나이 차이 때문에 서로 호감이 있어도 연인으로 발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김재왕 누가 먼저 꼬셨는지 이거는 정답이 있습니다. 그 질문은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느냐, 쇠붙이가 자석을 당기느냐와 같은 질문이에요(웃음). 여기에는 또 2가지 설이 대립하고 있어요. 하나의 설은 일방이 들이댔다 라는 주장이 있어요. 반대편의 주장은 타방이 들이댐을 자극했다(웃음).
김지미 김변호사는 일방이에요, 타방이에요?
김재왕 그거는 그냥 상상에 맡기고.(웃음)
김지미 처음에 연애한다고 했을 때, 또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 특히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김재왕 그건 의외로 되게 쉬어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버티면 이겨요.(웃음)
김지미 아내의 어떤 점이 이 사람이랑 평생을 같이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김재왕 결혼은 관계지속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나이차가 워낙 많이 나니까 이 상태로 계속 연애할 수는 없는 거고, 계속해서 이 관계를 유지하려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했어요.
김지미 아까 트위터 소개가 아내랑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고.. 라고 했잖아요. 그런 시간들이 김변호사에겐 가장 편한 시간인가요?
김재왕 그렇죠. 아주 소중한 시간이죠. 저는 사실 드라마 별로 안 좋아했었거든요. 결혼하고 깜짝 놀랐던 게, 이 사람은 어떤 드라마든 첫 회를 보는 거에요.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저는 처음에 그게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는 저도 많이 보다보니 드라마 보면서 드라마 작가도 맞추고(웃음).
김지미 지금 로스쿨 학생들이나 연수원생들 보면 소수자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민변 소수자위로 편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 소수자위 일원으로서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우리 소수자위원회는 이런 활동을 하니까 왔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들을 좀 해주세요.
김재왕 일단 소수자인권위원회는 현장 가까이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위원회에요. 주로 요즘 많이 하는 부분은 장애인하고 성소수자 부분인데, 직접적으로는 당사자들과 밀접하게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 그런 위원회고, 그리고 그밖에도 할 일이 많은 위원회거든요.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은 없고. 이 바닥에 와서 조금만 구르면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추앙받게 되는(웃음). 그리고 할 일이 정말 무궁무진한 곳인 것 같아요.
김지미 아까 사법지원 분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는데 민변이 이런 점에서 장애인권에 좀 소홀하다든지 배려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은 고쳐졌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있을까요?
김재왕 제가 처음에 민변 특별회원 됐을 때 장애 당사자를 처음 만난 분들이 꽤 많았었어요. 옛날에는 민변도 그냥 명함만 찍었지 거기다가 점자 찍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찍잖아요. 그 전까지는 민변이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이런 쪽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배려나 이런 것까지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엔 이런 접점들이 생기니까 관심이나 이런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민변 회원 중에도 휠체어 타신 회원 분이 계신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들이 생긴다면 앞으로 월례회 장소 같은 거 잡을 때도 그런 접근성을 고려해야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그렇고 염형국 변호사님도 그렇고 장애인단체들과 활동을 많이 하는데, 활동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사안은 희망법이든 공감이든 이런 개별 단체보다는 민변이 결합하는 게 좋겠다 싶은 일들이 있거든요. 요즘에 문제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신설 또는 변경의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 등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어요.
지자체에서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 받게 해 주려고 하면 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 반대를 해서 무산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어요. 장애인 단체에서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대 제안이 오는 거에요. 제가 볼 때는 이것이 꼭 장애 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복지 전반에 걸친 문제니까 민변이 연대 사업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장애 단체 쪽에서는 사실 민변과 일해 본 경험은 많지 않고 같이 일했던 몇몇 민변 변호사님이 너무 바쁘고 이러니까 조금 불편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김지미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됐는데 이걸 물어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던 게 있어요. 저는 김재왕 변호사가 지금 보는 것처럼 되게 젠틀하고 얌전하고 이런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게 욕을 잘 하신다고.(웃음) 희망법 워크샵 땐가 술을 안먹는다고 사람들한테 그렇게 욕을 하셨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김재왕 나쁜 사람들의 음해에요. 저에 대해서 사악하다느니 그런 거는..엠티 가서 그런 거는 다소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으나, 면허취소 이상 정도 수준의 알콜 농도가 되면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그때 정황과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술을 먹지 않은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죠(웃음).
김지미 오늘 인터뷰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어요. 재미와 유익함을 다 잡은 것 같아요. 맛있는 밥도 손수 지어 주신다고 하고. 정말 고맙습니다~
* 김재왕변호사가 일하는 ‘희망을 만드는 법’은 서선영, 김재왕, 한가람, 조혜인, 류민희, 김동현, 이종희변호사(모두 민변 회원이네요^^)와 1명의 상근자가 있는 공익변호사단체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은 희망법의 후원 사이트를 방문해 주세요. 아래의 주소를 꾹~눌러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