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학살피해자 유해발굴 참관후기
“국가가 진정한 국가무한책임완수(國家無限責任完遂)에 나아가도록 할 때입니다.”
– 민변 과거사위 배광열 변호사
1. 들어가며
“국가무한책임완수”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정부가 2000년부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벌이며 모토로 세운 말입니다. 아직 수습하지 못한 13만여 명의 한국전쟁 전사자들을 발굴하여 국가의 품으로 돌리겠다는 이 사업은 15년 만에 약 9,000명에 가까운 전사자(적군포함,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발표 기준)를 발굴해내어 늦었지만 유가족들의 한을 달래고 나아가 남북대립이 아닌 남북화해의 시대를 여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부의 그 노력은 전사한 군인들에만 국한되어 있으나, 한국전쟁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남ㆍ북한 모든 국민들이 겪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안에서 남한군ㆍ미군ㆍ북한군 등에게 부역을 하였고, 적에게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학살당했으며, 심지어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라 하여 학살당하기도 하였습니다(보도연맹).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가족공동체가 파괴되었으며, 셀 수 없는 억울한 죽음들을 낳았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겪은 고통과 희생은 전쟁 속에서 자기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를 지켜 가족과 자신을 지키려 한 군인들의 희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는 “국가무한책임완수”라는 모토 하에 전국의 산하에 묻혀 있는 전사자들뿐만 아니라 전쟁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 국민들 역시 찾아내어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주고, 적절한 보상을 하여 그 분들의 한을 풀어주고 나아가 화해의 시대를 열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민간인학살에 대하여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며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변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모여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구성되었고, 2월 23일부터 일주일간 이루어진 대전 산내면 골령골 일대에서 제2차 유해발굴을 진행하였으며, 민변에서는 2월 25일 조영선 사무총장님, 박갑주 과거사위 위원장님을 비롯한 6명의 변호사와 과거사위 자원 활동가가 현장을 방문하여 유해발굴을 도왔습니다.
2. 유해발굴에 참여하며
사실 필자는 유해발굴사업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습니다. 역사학과를 졸업하였고,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2년간 복무하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직접 참여하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변 신입회원 엠티에서 술기운에 이런 제 경험을 과거사위 이동준 변호사님께 토로(소위 ‘군대얘기’입니다)하였던 것을 계기로 하여 7년 만에 다시 유해발굴현장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유해발굴지로 도착하자 낯익은 광경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깊게 파여져 있는 구덩이와 그 안에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어 개개인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인 유해들, 그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과 7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이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비록 정장차림이었지만 곧바로 유해발굴작업에 참여했습니다. 호미와 각종 발굴도구들을 다시 잡자 7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익숙하게 땅을 긁고, 노출된 유해들 주위의 흙을 조심스럽게 거둬내며 유해들을 발굴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유해발굴작업에 참여한지 30여분이 지난 후 필자가 받은 느낌은 ‘절대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고, 도대체 몇 명이 묻혀 있는지, 어디까지가 매장지인지 가늠조차 힘든 정도이다.’였습니다. 흙을 조금만 파도 유해들이 노출되었고, 흙벽에도 유해들이 박혀있는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매장지는 크고 작은 돌투성이였고, 흙 자체에도 습기가 매우 많아 붓으로 유해에 붙어 있는 흙을 털어내기만 해도 유해조각들이 함께 떨어져나가는 상태(이를 두고 “뼈가 녹아있다”라고 합니다)였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모두 유해발굴 기간 내에 한 구라도 더 발굴해 내겠다는 신념 아래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3. 유해발굴 참관을 마치며
일주일의 발굴기간 동안 발굴해내지 못한 유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차가운 흙 속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날의 유해발굴 작업을 마치는 것 자체가 그 곳에 있는 피해자분들에게 죄송스럽기만 했고, 그런 죄송함과 부담감을 가진 채 남은 기간 동안 계속 고생할 참가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민변에서 저녁을 대접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60년째 묻혀 있는 피해자분들과 유해발굴 참가자분들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이번 유해발굴 사업에 참여하면서 민간에서 하는 유해발굴 작업의 한계를 절감했고, 민간인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의무가 있는 국가의 무관심한 태도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들었습니다. 정부가 진정한 ‘국가무한책임완수’를 위하여 나서기만 한다면 민간인 학살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는 그 분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변 과거사위가 추진하고 있는 ‘(가칭)한국전쟁 민간인학살피해자 유해발굴 등에 관한 법률’입법 사업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절감하였고, 부족하지지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민변 변호사님들의 많은 관심과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