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노동위의 일본 기행을 추억하며

2014-11-10 480

민변 노동위의 일본 기행을 추억하며

– 민변 노동위원 김수영

 

 일본은 난생 처음이었다. 일본의 최신 노동판례와 입법동향에 관해 알아본다는 매우 학구적인 이유로도 들떴지만, 처음으로 일본에 가본다는 설렘도 상당했다. 새벽시간 공항에 모여 출발을 앞둔 소감을 나누던 중 단연 인상적인 것은 ‘이 여행을 허락받기 위해 명품 신발을 바쳐야 했다’며 쇼핑백을 들어보이던 어느 선배 유부남 위원의 장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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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뜨고 눈을 붙일까 했더니 이미 도착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인 줄 몰랐다. 왠지 아쉬웠지만 곧 말로만 듣던 신칸센을 탈 예정이어서 여전히 설렌다. 이번 교류회의 초특급 가이드를 자임하신 김진국위원님의 안내에 따라 “에키벤”을 하나씩 챙겨 열차에 올랐다. 신칸센 초특급 열차 노조미에 올라 도시락과 캔맥주를… 몹시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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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역 플랫폼에 왁자지껄 내렸는데, 아뿔싸 오사카노변단에 드릴 선물이 아직 객실에 있다. 이현아간사님의 지령을 받은 이용우위원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신칸센으로 뛰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히고 열차가 떠난다. 비극적인 이별이다. 과연 이용우위원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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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부산 같기도 한 역 광장을 나서니 오옷~! 노면전차다. 낭만적인 전차에 몸을 싣고 나니 이용우위원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알아서 잘 돌아 오겠지 뭐. 전차는 우리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내려주었다. 원폭을 맞고 앙상한 뼈대만 남겨진 돔 건물을 시작으로 꽤 넒은 공원이 펼쳐진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원을 거닐며 평화롭기 그지없는 햇살을 즐겼다. 공원 내 평화 기념관에는 원폭 당시의 비극적인 모습이 전시되어있다. 탈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위원장님과 함께 온 아들 유겸군이 진지한 자세로 원자물리학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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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보고나니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분께서 열정적으로 공원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신다. 몇 시간째 공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원폭의 참혹한 피해에 관해 듣고 있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활동가분의 바로 앞에서 눈빛 반짝이며 듣고 있던 고윤덕 변호사님의 고개가 크게 끄덕인다. 새벽 비행기로 일본에 와 저녁까지 탈핵의 결의를 다지고 있자니 적잖이 피곤한 게 사실이다. 다행히 기념관으로 잘 찾아온 이용우위원도 오는 길이 힘겨웠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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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의 열정 가득했던 세미나와 훈훈하던 교류회는 김진위원의 후기가 있으니 넘어가자. 단언컨대 놀다온 것만은 아님을 세미나 후기를 통해 확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짧은 지면이니 지금은 셋째 날 방문했던 미야지마섬(宮島)에 관해 말해야 한다. 환상의 섬과 같던 그곳. 일본인다운 장인정신의 발현으로, 일정량이 팔리면 문을 닫아버리고 모두가 저녁이 있는 삶을 살던 그곳. 덕분에 굴카레빵을 먹어본 자와 못 먹어본 자로 운명이 갈리던 잔혹한 섬. 뿐만 아니다. 바다 위에 떠있는 신사의 아름다움과 작은 상가 골목에 어스름이 질 때의 풍경, 섬 중앙에 자리한 웅장한 원시림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아기자기한 케이블카와 오래되었으나 단아한 멋을 풍기던 여관까지. 섬 전체가 큰 목소리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물론 민변을 사랑한다. 그러나 연인과 함께 왔어야 했다는 한탄을 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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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기행은 팀이 나뉘었다. 후쿠오카 시내와 맥주공장을 찾아 나선 도시팀과 일본의 3대정원이라는 오카야마현 소재 고라쿠엔(後樂園)을 찾아 나선 전원팀. 도시팀도 나름 즐거웠겠으나 고라쿠엔 한 가운데 자리한 연못 위 전통가옥에 앉아 진한 녹차와 모찌를 음미하던 시간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고라쿠엔 정원은 봉건영주의 악취미가 만들어낸 공간이었겠으나 이제는 800엔으로 그 때 그 악취미를 희화화 할 수 있다. 특급 가이드를 해주신 김진국위원님을 이 자리에 모셔야 하지 않겠냐는 김준우위원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호방한 웃음으로 함께해주시니 그 모습이 어딘가 계몽군주 같은 느낌이다. 최근 연달아 시를 발표 중이신 위원장님의 시 한수가 곁들여졌다면 더욱 멋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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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공기는 차가웠다. 찬 공기만큼 황당한 현실도 기다리고 있었다. 민변 내에, 부당한 정치권력의 하수를 자임하는 공권력의 도발에 맞선 결기가 날카로운 시점이다. 큰 싸움을 앞두고 짧게나마 아름다웠던 시간을 함께 되새기며 잠시 호흡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기행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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