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차 국제노동기구 총회 참석기
글_정소연 변호사
지난 6월 5일부터 2주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02차 국제노동기구 총회(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에 다녀왔습니다. 국제노동기구는 국제기구 중 유일하게 노-사-정 3자 대표로 구성된 매커니즘입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 대표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매년 번갈아, 사용자 대표로는 경총이, 정부 대표로는 고용노동부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위원회에서 올해 신설한 국제노동팀의 일원으로, 민주노총 파견단에 동행하였습니다.
<사진1 : 국제노동기구가 설립된 1919년부터의 역사를 상징하는 로비 카페트>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시 베르사유 조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파리 강화 회의의 노동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 헌장(Consitution)을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1919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노-사-정 3자 대표가 참가한 최초의 국제노동기구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때 최초로 6개의 국제노동기구 협약이 만들어졌습니다. 1926년 국제노동기구 협약의 이행을 감독하기 위하여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가 구성되었습니다. 이후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에 따라, 국제연합(UN) 산하 최초의 전문기구가 되었습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지금까지 총 189개 협약, 202개의 권고를 채택하며 국제노동기준을 제시하고, 회원국들이 비준한 협약을 잘 이행하는지를 감독해 왔습니다. 이 감독은 주로 국제노동기구 총회 기간 동안 개최되는 기준적용위원회(Commitee on the Application of Standards)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유일한 상설 위원회인 기준적용위원회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전문가위원회가 제출한 일반조사(General Survey) 보고서를 검토하고 이에 대해 노-사-정 3자 일반토론(General Discussion)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비준한 협약을 잘 이행하지 않은 회원국의 개별 사례를 심의(Examination of Individual Cases)하는 것입니다.
<사진2 : 국제노동기구 총회 개막식>
6월 5일, 제102차 국제노동기구 총회가 개막하였습니다. 각국의 노사정 대표들 천여 명이 모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각국 정부대표 2인, 노동자 대표 1인, 사용자 대표 1인이 참석하지만, 그 외에도 총회 참석자들은 참관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제102차 국제노동기구 총회 전문가 보고서의 주제는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이었습니다. 각 회원국이 이 주제에 관하여 미리 보고서를 제출하면, 전문가위원회는 이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한 보고를 제출하고, 기준적용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참가한 일반토론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논의합니다. 이러한 일반토론은 통상 하루 정도 진행됩니다. 올해의 경우, 6월 6일에 시작된 토론이 시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아, 6월 7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이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다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실제 기준적용위원회에서 각국 노사정의 발언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백수십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모두가 무조건 발언을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발언 신청을 하고 의장의 지명에 따라 순서대로 발언권을 얻습니다. 이 발언들을 들으면서, 국제기준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인권기준, 국제노동기준이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의 관계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노동권의 실체, 그 실체를 지탱하기 위하여 사수해야 하는 형식이 존재합니다. 기준적용위원회는 그런 보편적인 마지노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선을 “마지노선”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인 “기준”의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협의의 과정이었습니다.
각국 노동자 대표들의 경우 자국의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탄압 현황을 적극적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를 들으며 우리나라는 어디쯤에 있는지, 세계 각국 노동권의 상황은 어떠한지를 서서히 이해할 스수 있었습니다.예를 들어, 덴마크 교사노조는 단체협약 갱신 협상에 실패하여 학교가 28일간이나 폐쇄되는 사태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5,000여명의 교사들이 출근을 하지 못했고, 수십 만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 같은 다른 지역권에서는 연대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메리카 대륙 공굥교직원과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이 연대체를 구성하고 있었고, 아프리카 역시 “같은 지역”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 남미 국가들의 경우, 자국의 노동 상황을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 다른 국가들의 상황에 대한 연대 발언을 일상적으로 하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한국의 노동자 측과 정부 측도 한국의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에 관하여 발언을 하였습니다. 한국 노동자 대표가 한국에서는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가 해고자가 노조원에 포함되어 있다는 부당한 이유로 4번이나 반려되었다는 점, 전교조가 법외노조화의 압력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하여 국제노동기구에서 긴급개입(Urgent Intervention)이 있었던 점을 알렸습니다. 한국 정부는 공공부문 노동기본권에 관한 주요 협약인 제151호 협약, 제154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노동자 대표가 비준을 촉구하였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후에 발언을 하였는데, 그 내용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국제기준을 말하는 자리에서, 각국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상이하다는 원론적이고 설득력 없는 말로 발언을 시작하더니, 한국의 공무원들은 외부의 정치적 압력을 막기 위하여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시민적, 정치적 자유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이고, 비록 한국이 비준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ILO의 제151호 협약(1978년)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국의 공무원은 정치활동에 참가하거나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인을 후원할 수 없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잘 보호되고 있다고 발언할 줄 알았지, 해고자들이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여 법을 위반했다는 식으로 발언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의 발언과 함께 듣고 있자니 더욱 설득력 없고 뜬금없게 느껴졌습니다.
<사진3 : 노동자 그룹 전체회의>
노동자 측의 각국 대표들이 자국의 공공부문 노동권 상황을 중심으로 개별 발언한 반면, 사용자 측은 대변인들이 전체 사용자 그룹을 대표하여 장시간 발언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사용자들은 전문가위원회에 대하여, 위원회가 ILO 헌장이나 협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판단을 내림으로써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사용자 측의 발언은 대단히 공격적이었고, 노동자 측이 실체적인 내용에 주목한 데 비해, 형식과 절차 부분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습니다. 이 역시 무척 놀랍고 긴장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막연히 사용자 측은 뭔가 고상하게 대응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거침없고 공격적이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국제기준이 정해지는 자리라, 이곳에서 물러서면 각국의 전선이 조금씩 더 물러설 것이고, 그러면 하나하나의 사건에 그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그 절박함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쟁에 비유하기가 껄끄럽습니다만, 일반토론을 보면서 저는 정말 바로 “이곳도 하나의 전장이다”라고 느꼈습니다.
치열한 토론이 간신히 봉합되어 결론문이 채택되고 기준적용위원회에서 다루어질 25개의 개별사례도 정해졌습니다. 노사정 3자 협의체이다 보니 개별사례를 결정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습니다. 매우 노동탄압이 심각한 나라의 사례가 그 나라 정부나 사용자 측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콜롬비아가 그런 경우였는데, 노조 지도자들이 십수 명이나 살해, 투옥, 실종되었는데도 이번에 결국 개별사례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사진4 : 기준적용위원회>
올해는 한국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기준적용위원회는 회원국이 비준한 협약의 위반 여부만 감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189개 협약 중 단 28개만을 비준하여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인데도, 2009년에 이어 또다시 개별사례로 채택되었습니다. 제111호 노동차별 금지 협약 위반입니다. 그리하여 6월 12일 수요일 밤과 6월 13일 목요일 오전에 한국의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여성, 정치적 견해에 대한 차별이 논의되었습니다.
심각한 협약 불이행 사례로 자국의 문제가 논의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한국의 노동차별 문제는 대단히 심각합니다. 개별 안건 심의에서도 거듭 지적된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을 3번으로 제한받고 있고, 비정규직 차별도 큰 문제입니다. 비정규직의 65%에 달하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임신과 육아 등을 이유로 한 불안정한 고용 문제도 다른 여러 나라들의 상황과 함께 보니 그 후진성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대학 교수 외의 교원은 어떤 정치적인 견해도 밝힐 수 없고 정당에도 가입할 수 없는 현실 또한, 그 상황 자체를 국제사회에 이해시키기가 어려울 만큼 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한편, 노동권 침해와 협약 불이행 상황을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 이전에 올라온 다른 개별안건들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처럼 제111호 협약 위반으로 심의된 이란에서는 기혼여성이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생활을 하려면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여성이 아예 진출할 수 없는 직업 분야도 14개나 있다고 합니다. 아동 최저노동연령에 관한 제138호 협약 위반으로 심의된 케냐는 아동노동 실태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제공하지 못하여, 심의 자체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탁심 광장 사태로 총회 당시 큰 이슈가 되었던 터키도 단결권과 단체협약권에 관한 제98호 협약 위반으로 상정이 되어 있었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사망까지 한 상황에서 터키 정부는 “그들이 사유재산에 돌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시위를 했다”고 국제사회에 당당히 말했습니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 위반으로 심의된 방글라데시에서는 작년 5월 공장 붕괴로 한 산업재해 현장에서 자그마치 1,1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많은 국가의 노동자 대표들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살인과 고문을 말했습니다. 자료 제출같은 기본적인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정부 대표들도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노동 현실은 아무래도 이보다는 조금 앞선 자리에 있습니다.
<사진5 : ILO 전경>
한국은 1991년에 국제노동기구에 가입, 국제노동기구 회원국 중 분담금을 11위로 많이 내는 국가입니다. 그러나 189개 협약 중 단 28개만을 비준한 비준 협약 수 최하위권 국가이기도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개별안건 심의에서 우즈베키스탄이 협약을 32개밖에 비준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았는데, 한국은 그보다도 적은 협약을 비준한 것입니다.
한국은 훨씬 열악한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의 상황에 개입하고 연대하며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규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국내 노동권을 국제기준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국내 문제에 치중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 어정쩡한 위치를 기준적용위원회의 심의를 줄곧 지켜보면서 무척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사법기관이 아니지만 그 절차와 형식은 그야말로 국제”법적”인 것이었습니다. 논쟁의 많은 부분이 절차법적이기도 하였고, 위원회 회의는 협약 문언 하나하나, 보고서 구절 하나하나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싸움터였습니다. 회의록조차 남지 않는 이 일반토론에서 국제노동기준의 컨센서스가 만들어집니다. 각국의 개별안건들이 서로 이어지며 국제노동기준의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 그림은 각국의 노동법에, 정책에, 개별 노동사건 하나하나에까지 분명히 영향을 미칩니다. 국내 문제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연대 또한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서 있는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다음에 나아갈 바를 생각하는 것은 국제인권과 노동을 말하는 법률가들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민변 노동위원회 국제노동팀 ILO 스터디 (노동위원회 회원이 아니라도 참가 가능) : 매월 1회
* 7월 스터디: 7. 19. 19:00 민변 대회의실, 문의 정소연 변호사 syjeongh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