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묘비명 “웃기고 자빠졌네”
– 코미디언 김미화 인터뷰 –
인터뷰_이재정 변호사
정리, 사진_출판홍보팀 9기 인턴 이경빈, 박진선
그녀의 삶을 담은 책이 발간되었다. 피식 웃으면서도, 비속어 표현에 당황한 이가 많다. “웃기고 자빠졌네!!!” 바로! 그녀의 책 제목이다. KBS 공채로 코미디언을 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 최초 여성 코미디언 시사진행자로 명성을 떨치다 하차한 이야기. 방송출연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송사에 까지 휘말린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가 천상 코미디언인 그녀만의 화법으로 경쾌하게 풀어져 있었다. 눈발이 흩날리던 날, 부탁받은 저자싸인용 책들로 한 꾸러미 봇짐지고, 목동 방송국에서 방송직전에 어렵게 짬을 낸 그녀를 찾았다. 밥 먹었느냐는 정겨운 토종인사로 우리를 반기는 그녀는, 기어이 인터뷰 도중에 자리를 옮겨 밥을 먹인다. 그냥 우리 언니 같다.
민변 (이재정 변호사, 이하 민변) : 가벼운 질문부터 드리겠다. 포탈 사이트의 연관검색어를 보면 여러 가지가 뜬다. ‘김제동 김미화’, ‘공지영’, ‘웃기고 자빠졌네’, ‘김미화 간첩’, ‘김미화 학력’, ‘선대인’, ‘김미화의 여러분’, ‘MBC 김미화’ 등이 뜨는데, 나열 되는 단어들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특히 싫은 연관검색어는 없는지.
김미화(이하, 김) : 연관검색어들을 신뢰할 수 없다. 힘든 과거와 관련된 검색어, 부정적인 검색어도 시간이 한참을 지났음에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일부러 (연관검색어)단어를 안 지우게 하려고 계속 검색을 하는건지,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기 때문에 뜬다고 포탈측은 주장하는데 그게 맞는 건지, 특정한 의도로 연관검색어가 조작되는 것은 아닌지 싶은 의심도 때론 든다. 예를 들어 간첩이나 이혼 등은 10년 도 지난 이야기, 그리고 고향도 전라도가 아닌데 -프로필 상에 서울이라고 분명히 써있는 데도- 굳이 자꾸 연관짓는다. 연관짓길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연관 검색어가 생겨나는 것 같다.(웃음)
민변 : 가볍게 시작하려는 질문이었는데, 무겁고 시사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도 맘에 드는 검색어는 없는가?
김 : ‘웃기고 자빠졌네’가 연관 검색어로 뜨는 건 좋다. 무거운 가운데 나를 보여주는 최고의 표현이 웃기고 자빠졌네이다. (민변: 최근에 낸 책제목으로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 계속 하기로 하겠다)
민변 : 김미화 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순악질여사이다. 김미화에게 순악질여사란.
김 : 소중한 닉네임이다. 우선 순악질 여사 덕에 인지도를 얻어서 인생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처음 코미디언이 되고 인기를 얻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었는데, 순악질 여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후로는 조금 더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었다(웃음). 늘 감사하고. 대신 그런 받은 사랑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무겁게 했다. 그 때부터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민변 : ‘웃기고 자빠졌네’ 중 책 첫 글도 일자 눈썹의 순악질여사를 흉내 내서 찍은 동네 꼬마들의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 였다. 그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김 : 골목만 찍으시는 사진작가님이 계셨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사진전을 하실 때 사진전 팜플렛 맨 앞면에 그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주변 지인들이 보고 브로셔를 가져왔다. 너무 재미있었다. 집에다가 자기 사진을 걸어놓는 건 좀 재미없지 않나? 그 시대에 순악질여사를 흉내 냈던 사람들의 추억을 보면서 나 자신도 그 추억에 젖는 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소중한 사진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 브로셔를 잘라서 액자에 넣어 놓았다. 오며가며 보는 게 무척 재미있다.
민변: 책 이야기 첫머리를 그 사진 하나 속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끌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사진안에 4명의 아이들, 모두 일자눈썹을 하고 순악질 여사의 표정을 따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표정과 자세, 위치들로 아이들의 삶을 추적해내는 묘사가 훌륭했다. 다른이와 세상을 관찰하는 촉수가 남다르신 것이 거기서 느껴 졌다. (김: 과찬, 고맙습니다) 지난 총선 투표인증샷도 순악질 여사복장으로 하셨다. 순악질 여사를 보며 웃었던 어린날의 기억이 있어 반가왔다.
김 : 지금 트위터에서 언니, 누나하면서 쫓아오는 친구들 중에 그런 경험의 분들이 대분분이다.
민변 : 왜 개그우먼이 되셨나. 많은 재주있는 분이니, 다양한 진로를 고민했을 법도 한데.
김 :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한결같이 코미디언이었다. 어릴 때부터 정말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한번도 그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젠가 방송사에서 하차하면서 기자 회견할 때 ‘저 같은 코미디언 잃으시면 손해입니다’ 라고 했던 적이 있다. 어떤 분은 건방지게 봤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게 굉장히 절절한 말이었다. 내가 잘나서 나를 잃는 사회가 손해라는 뜻이 아니다. 6살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고 그 이후에 19살에 꿈 이루었다. 그 후 이 사회가 나를 쓰리랑 부부, 개그콘서트 등 개그우먼으로 있게 해주었고, 국민분들이 나의 코미디를 좋아해 주셨고 나는 그분들에 의하여 키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30년 가까이 국민들에 의해 키워진 코미디언이 권력에 의해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억울하고 안타까웠다. 이렇게 무너지면… 당시 시사프로그램한 것은 코미디를 더 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시사진행자로서만 행각을 해버리니 안타깝다. ‘나는 코미디를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민변 : 순악질 그 이후 코미디언으로서의 삶도 성공적이었다. 무대에서도 빛났지만, 개그 콘서트라는 이전에 없던 시스템, 새로운 방식도 발견해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코미디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와 고민이 있으실 듯한데 그 한 자락을 듣고 싶다.
김 : 개그콘서트가 전국민적인 사랑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그렇지만 이 방식만이 늘 정답일수만은 없다. ‘기존 꽁트 형식의 코미디가 이미 한물갔다’, ‘이제 사랑 받을 수 없다’는 방송가 안에서의 진단이 내려졌을 때 개그콘서트가 탄생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렇지만 이전 방식의 코미디가 그 당시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완전히 무너져서 없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다. 사실 코미디언 시절 내가 선배들한테 배운 코미디와 지금 개콘에서 하는 코미디가 다른 게 아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같다. 그릇만 바꿨을 뿐. 사람들이 새롭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배삼룡 선배가 했던 것이나 심형래 씨가 했던 것이나 다를 것 없는 것이다.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것처럼, 본질은 같지만 그것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개그콘서트가 한 13년 정도 흘러왔는데 아직은 개콘이 인기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그릇을 요구할 것이다. 코미디의 연기방식과 나레이터의 원칙은 지키되 다양한 시도를 통한 또 다른 대안도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또다시 다가올 것이다. 그때 나는 역할을 통해 기여하고 싶다. ‘나이 들었으니까 후배들한테 인정받고 개콘도 만들었고 했으니 나좀 어떻게 붙여서 같이 먹고 살 수 없냐’는 식의 그런 생각 보다는. 내가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 후배들이 ‘저랑 같이 코미디 같이 해요. 선배님’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같이 한번 만들어볼래요’ 이렇게 말할수 있으면 한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당장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이 아직 불끈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런 시기가 곧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그 때가 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해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민변 : 지금도 여러 가지 방식의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서있는 김미화씨가 정말 보고 싶다. 있었던 무대가 그립진 않나.
김 : 생각해보면 방송에서 하는 코미디가 다가 아닌 것 같다. 회사 세미나에서, 연극무대에서, 행사에 가서 등등.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웃어주신다. 그럴 때마다 아 바로 여기가 바로 무대구나 생각한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코미디언은 마이크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제일 편하게 먹고 사는 건 아닌지. (웃음) 말을 하면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좋아해 주시니까. 일면 그런 생각도 든다.
민변 : 쓰신 책도 무대일 수 있겠다.
김 : 그렇다.
민변 : 시사프로그램- MBC 라디오 방송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을 시작한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여자 코미디언이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낯설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의 청취자들은 보통 정제된, 전문 언어로 질문하는 것에 익숙했었기 때문이다. 고민이 많았을 듯 싶다.
김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라는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있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도망 다녔었다. 안하려고. 그런데 당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도 했고. “미화씨 목소리 듣고 용기내는 사람들을 생각해라” 는 담당 피디의 한마디에 넘어갔다. (웃음)
민변: 프로그램의 새로인 시도가 생각보다 빨리 안착했다. 어떤가.
김 : 그렇다. 제안을 받아들인 나도 나지만, 9년 전에 그렇게 창의적으로 발상했던 MBC의 높은 분들. 사장, 국장, 모두가 정통 시사프로그램을 코미디언한테 맡긴다고 했을 때 ‘그래 하자!’라고 한 것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분들의 창의적 생각을 높이 평가한다. 혹자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 누군가가 ‘말도 안된다.’ 라고 이야기 했으면 그냥 무산이 되는 아이디어였을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다 함께 ‘지금쯤이면 이런 아이디어 괜찮지 않나’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처음엔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없지 않았다. 아나운서나 전문 진행자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우리사회 기저에는 코미디언 하면 우리를 웃겨주는 광대로만 생각하는 편견들이 있었다. 나는 ‘그래 나는 사람들을 웃기는 광대니까 우습게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항상 생각한다. 그점이 약점이었지만, 그 시도가 사랑받게된 강점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민변: 여성 코미디언 대한 사회적 평가 등 여러 면에서 기여한 바도 큰 것 같다. 후배 코미디언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선배아닌가.
김 : 솔직히 후배들에게 폼나는 선배되고 싶었다.(웃음) 사람이 죽었을 때 누군가가 그 사람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지 않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했고 그 곳를 향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 김미화, 자신이 하던 말처럼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 또 한국 코미디 사에도 족적을 분명히 남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민변 : 지금 CBS에서 하고 게신 ‘김미화의 여러분’이라는 프로와 처음 시작하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은 매우 비슷한 포맷인 것 같다. 지금하고 계신 프로그램이야기 어떠신지.
김 : CBS, 섭외력이 엄청난 것 같다. 치열하게 일하는게 보인다. 그래서 사실은 늘 감동이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 겠다’하는. 피디들의 생각들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일단 공정하게 들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많이 보이고, 특히 약자를 보호하는 느낌들이 많이 있다. 오히려 이런 시국에 내가 다른 방송사에 있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야기라던지 다루기 힘들었을 법한 일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들과 관심이 꾸준하다. 감동이었던 것 중 하나는 철탑 위에 올라간 노동자들 세 군데를 연결해서. 세 군데의 노동자들 모두가 방송을 통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했었던 것! 현대 쌍용 등 철탑 위에 계신 분들이, 서로의 투쟁현장을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하여, 이야기를 듣고 서로 안부 묻고 마주 응원하고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셨다고 한다. 감동적이었다. 이 분들에 대하여 몇말씀 더 드리겠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분들에게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여러 방법 동원해보고 안되니까 올라간 것이다. 철탑 위에 올라갔을 때는 나는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결심을 하고 올라간 건데. 정말 불안하고 다급한 상황이지 않나? 오히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것을 가끔 보면 ‘우리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어떤 문제가 있으면 함께 풀어가려고 노력했었다. 지금은 뭐 정치권에서조차 아예 모르쇠로 나오고 있고. 안타깝고 속상하다.
민변 : 현정권들어 연대하기에 이슈들이 너무 많아진 감도 있다.
김 : 그러니까 더 모르쇠로 가는 것 같다. 사실 그런 것이 먹히면 안되는데 말이다.
민변: 결국은 시청자, 피디, 프로그램 여건, 방송국 여건 까지 서로 맞아 떨어져서 굉장히 빛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인 것 같다.
김 : 아마 다른 데였으면 짤렸을 것이다.(웃음) CBS 피디들의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따뜻하다.
민변 : CBS가 시사 역사는 굉장히 깊지 않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 빛나는 느낌도 있는데, 그 가운데 김미화씨도 있어서 더 아귀가 맞는 느낌도 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균형감각 있는 피디들이 만드는 ‘여러분’이 왜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 인가.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 : 그게 우띨이(우석훈), 선띨이(선대인) 박사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웃음) 둘이 미움을 받는 상황 인 것 같다. ‘나는 꼽살이다’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함께한 이들이 방송에 출연한 분에서, 정부의 농촌정책을 비판했다. 그것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성’을 위반하였다고 ‘주의’조치를 취하게 되었고, 이에 CBS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공정성이라는 것을 누가 심의를 해야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공정성 면에서 보면 우리 프로그램이 심하게 무너져있는 상태이기는 했었다. 왜냐하면 같은 이슈로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출연해서 여과없이 30분 넘게 정부쪽 정책만을 홍보했었기 때문이다. (다들 웃음)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문제제기한 것은 이유없다고 덮어버렸고. 우 박사, 선 소장이 ‘우리 정부가 펼치는 농촌정책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는 식의 비판으로 때문에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이게 도대체 말이 안된다.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우스울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있어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방송사는 또 다른 제재를 당할까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게 20년인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 참 웃기는 일이다. CBS에서 용기내서 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 근데.. 다른 프로그램이면 좋았을 걸 하필이면 또 제 프로그램이라..(웃음) 항상 늘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민변: 김미화가 타겟은 아닐까. CBS에 미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지도… 늘 고맙고 미안해 하고 있다.(웃음)
민변 : 어찌보면 우리나라 언론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결국 소송의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먼저 시비를 걸고 다툼의 과정에 있다는 자체가 방송제작을 하는 현장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자기검열이 있게 되지 않은가.
김 : kbs로부터 ‘블랙리스트’ 관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때 ‘결국 저사람들은 이기는게 목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변: 당시이야기를 더해달라) 연예인들이 돈 번다고 해서 그 돈을 쉽게 버는 것도 아니고, 라디오 프로그램 또한 출연료가 크질 않아서 정말 변호사 비용 감당하기 힘들었다. 자신들은 자사 뉴스를 통해 범죄자 취급을 하는 식의 명예훼손을 남발하고, 나는 계속 경찰서에 들락날락했었던 일들. 이런 저런 속상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것은 방송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기자에 대해서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이 사람은 정말 우리 프로그램을 빛내주는 한 점이다’ 같은 생각들은 전혀 가지지 않고 우리들을 갑과 을 관계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넌 우리들에 의해 쓰임을 받을 때만 꽃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관행들이 깨지지 않으면 후배들이 똑같은 일을 계속해서 당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kbs에서 내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사람 굉장히 독하네 ’하는 생각으로라도, 권력남용을 자제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으면 했다.
민변 : 그 당시 ‘KBS가 친정같다’ 고 이야기 했다. 결국 KBS라는 공영방송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 소수의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겠나. KBS에 대한 애착은 여전한 것 같다.
김 : 그렇다. 애착이 있다. KBS 코미디언으로 출발했고, 많은 애정을 쏟았던 곳이다. 지금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왜 그 방송사에서 쓰임을 받지 못해야 하는 이런 상황인지. 블랙 리스트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블랙리스트도 없으면서 왜 사람에 대해서 편향적으로 생각하느냐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다른 방송출연을 못하고 있다. MBC의 김재철 사장만하더라도 자신이 정말로 정치적이지 않다면 저를 출연시켜도 되는 것 아닌가. 지금 그런 연예인들이 다 일을 못하고 있다. (민변: 빨리 예전의 따뜻한 친정으로 방송이 정상화되어서 마음 편안하게 금의환향 했으면 한다)
민변 : 정말 많은 단체들에 관여하고 계시다. 유명인들 중에선 허울 좋게 이름만 걸어놓는 이들도 많지 않나. 그런데, ‘김’은 하나하나 다 애정을 가지고 구체적인 활동(일례로 나눔의 집 할머니들 눈썹 문신 해주신 것까지^^)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인다. 이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열정이 나오나 궁금하다.
김 : 나는 이렇게 쓰임을 받는게 좋다. 코미디언으로서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들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기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무 많이 소문이 나서 도와달라는 단체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힘에 부칠 때도 있는다. 그렇지만, 얼마나 힘들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할까 싶어서 최대한 시간이 되면 돕고 있다.
민변 : 정치권에서 제의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김 : 솔직히 제의 많이 받았었다. 웃스운 것이, 한군데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여야 다 넘나드는 제의들을 받았다. 다 내가 필요한가봐. (웃음)
민변 : 그럴때 마다 다 받아 했으면 3선의원이었을 거라고.
김 : (도리도리. 웃으며 손가락으로 넷)
민변 : 정말 생각이 없나.
김 : 책에 쓰지 않았나.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근데 이말을 했더니, 한 기자는 ‘대통령이라면 몰라도’라고 머릿글을 써 올렸더라고. 그때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니가 무슨 대통령감이냐 이러면서 (웃음)
민변 : 시사 풍자 를 하는 개그에 대해 보통 높은 점수를 주지 않나. 코미디라는 것도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과 분노하는 것도 따라주고 정치도 같이 고민하는 것이 당연히 코미디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시사 코미디가 공중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어설프게 국회의원 다 없앤다 한두마디 하면 박수받지 않나. 시사코미디에 대한 생각은.
김 : 코미디가 사회적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의미가 있다 라고 친다면 그런 측면의 시사는 약하긴 하다. 왜 그러느냐. 어쩌면 나의 문제하고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 문제인데, 방송사 간부들은 정치 쪽에 줄을 대는 사람이 많다.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가 ‘여’인가 ‘야’인가에 따라서 간부들은 싹 바뀌어 버리니까. 나는 그런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에 관련된 일, 예를 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런 곳조차도 권력을 잡은 쪽이 6, 잡지 못한 쪽이 3.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도 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청자위원회도 마찬가지.
민변 : 개그맨들, 코미디언들, 피디들이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된다는 말인가.
김 : 위에서 그런 아이디어 자체를 싫어한다. 실무자들은 자기가 밑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뭐 그런 수준인 것 같다. 정치 풍자 한다면 더 신랄하게, 사건의 당사자인 정치인들도 나오고, 잘못한 일은 나와서 신랄하게 까이기도 하고, 이 일은 고치겠습니다 말하기도 하고, 그 사람 조차도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왜 그런 분위기가 우리는 되지 않을까 아쉽다.
민변 : 그런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지 않겠나.
김 : 언젠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변: 본인이 나서달라) 나는 내가 나이드는 것이 너무 좋다. 왜냐면 너무 어렸을때 풍자를 하면 치기어리다고 치부할 수 있는데 나이든 할머니가 막 쓴 소리하고 그러는 것은 사람들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아 너무 좋은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민변 : 사생활 질문. 색소폰 멋들어지게 연주하시는, 같이 사시는 분-윤승호 교수-에 대해서.
김 : 나의 남편은 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소싯적 꿈이 연주인으로 남는 것이었다. 지금도 밴드 한 팀과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프로페셔널 음악 연주인이다. 남편이 뒤에서 밴드와 함께 나의 노래에 맞춰서 뿜빠뿜빠 해주는 것이 너무 좋다. 딴따라 부부라는 그 느낌을 우리는 즐긴다. 어디 갈 때에도 남편이 뒤에서 나팔 불어주고 이러면 더 신나는것 같이. 마음도 맞고, 생각하는바, 사회가 이렇게 가야한다는 지향점 또한 잘 맞는다. (민변: 부창부수. 웃음)
민변 : 최근에 나온 책 ‘웃기고 자빠졌네’ , 제목은 어떻게 만들어 졌나.
김 : ‘웃기고 자빠졌네’는 나의 묘비명이다.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을 능가하는 코미디언의 묘비명. 무대에서 웃기고 마지막 순간에 자빠지고 싶다. 홍신자 선생이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아이를 낳는 거를 보여주고 싶어하셨다 들었다. 그야말로 춤을 너무 사랑하신 것이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코미디언의 꿈은 늘 변함이 없었고 어떻게 보면 여한 없이 꿈을 이룬 것인데, 나도 내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코미디 하고 웃음을 주다가 죽고 싶다고 말이다. 그것을 책 제목으로 쓰자고 했다. 어떤 독자들은 초창기에 ‘지하철에 이 책 들고 어떻게 타요’ 라고 인터넷에 (트윗으로) 올렸었다. 그래서 내가 ‘달력으로 좀 싸서 읽으세요’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재밌어 하면서 떳떳하게 읽으신다. 그리고 책방가서 ‘김미화 책 웃기고 자빠졌네’ 주세요! 이러면 막 책방 주인이 웃으시더라 이러시고. 또 제목을 잘못 말해서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하기도 하고, 또 상사들한테 웃으면서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인 것 같다고 하시기도 하고. 제목으로도 여러 가지 에피소트가 만들어졌다. 만족한다. 제목만 듣고도 웃음을 줄 수 있으니.(웃음)
민변 :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은 대선과 대선이후의 김미화의 삶.
김 : 우선 꼭~ 투표하세요. 그리고 대선이후 김미화는 웃기고 자빠지는 그날을 위해 달린다. 여러분 모두 웃으시게 되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