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말뚝과 인간말뚝
글_좌세준 변호사
창경궁에도 일제 쇠말뚝?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이 서울 창경궁에서도 발견됐다”
광복 50주년을 앞 둔 1995년 3월 26일 한겨레신문(19면) 기사다. 창경궁 안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히는 양화당과 영춘헌 사이의 계단 아래 쪽 바위에 가로·세로 5센티미터의 쇠말뚝 두 개가 박혀 있는데, 서울시가 이 쇠말뚝을 “일제가 박은 것인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문화재관리국에 고증작업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고증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후속기사를 찾으려다 ‘헛된’ 짓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사실 ‘일제의 쇠말뚝’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지 않았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수의 기를 꺾어 인물배출을 막으려고 산마루 등 요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고, “일제가 개항 이후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지도나 해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산이나 들에 쇠말뚝을 박아 표지로 사용했을 뿐”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의견(1999. 6. 5. 동아일보, B1면)이 있었던 반면, 일제의 쇠말뚝 박기는 “풍수와 명당이 최고의 종교였던 당시 사회에서 국민들에게 패배감을 주는데 가장 적절한 무기”였다는 지적도 있었다.(1995. 3. 14. 한겨레 10면)
내가 보기엔 그 말이 그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토지조사사업 등을 이유로 조선의 산과 들, 논과 밭 곳곳마다 ‘말뚝 박기’를 했다는 것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던가? 조상 대대로 농사짓고 묏자리 써온 땅에 신작로 내고 철도를 깐다는 이유로 쇠말뚝이 박히는 순간의 그 황망함을 생각해보라. 말뚝을 박는 자들의 흉중에 어떤 심보가 있었는지를 따지기 전에, 당시 식민지 조선의 땅에 발붙여 살던 백성들이 느껴야 했던 그 참담함,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긴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제국주의 일본의 ‘말뚝 박기’가 조선의 ‘근대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아! 그 유치찬란한 ‘론(論)’을 학문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일제의 쇠말뚝’을 둘러싼 논쟁이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리라.
아무데나 말뚝 박는 이들에게
‘말뚝’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땅에 두드려 박는 기둥이나 몽둥이’
모든 물건이란 그 용도에 맞게 쓰여야 하는 법. ‘말뚝’이 뭐하는데 쓰는 물건인가는 요즘 5-6세 정도의 아이들도 다 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소풍 가는 주말농장이나 텃밭에서 금을 그어 줄을 친 땅에 예쁘게 꽂아 놓는 것이 바로 말뚝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뚝의 용도를 착각한 사람이 있어 한 마디 해야겠다. 지난 6월 18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에다, 다음날에는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에다 바다 건너 고이 가져온 말뚝을 심으셨다는 그분에게.
실체 여부는 모르겠으되 그는 자칭 일본 극우정당 ‘신풍’(神風)의 대표라 한다. ‘신풍’이라 함은 아시다시피 ‘가미가제’ 아니던가? 그리고 나는 이 ‘신풍’이라는 말에서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니, 저 1970년 11월 25일 도쿄 이치가야 육상자위대 건물 옥상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호소하며 일본도로 할복자살한, 당대 일본 최고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바로 그다. 전후 25년 만에 가미가제의 부활을 궐기하며 자신의 목을 날려버렸다는 소식을 현해탄 너머에서 들은 당시 갓 서른의 시인 김지하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별것 아니여
조선놈 피 먹고 피는 국화꽃이여
빼앗아간 쇠그릇 녹여버린 일본도란 말이여
뭐가 대단해 너 몰랐더냐
비장 처절하고 아암 처절하고 말고 처절비장하고
처절한 신풍도 별것 아니여
조선놈 아주까리 미친듯이 퍼먹고 미쳐버린
바람이지, 미쳐버린
네 죽음은 식민지에
주리고 병들어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역사의 죽음 부르는
옛 군가여 별거 아니여
벌거벗은 여군이 벌거벗은 갈보들 틈에 우뚝 서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군가여
– 김지하 <아주까리 신풍>
‘인간 말뚝들’부터 뽑아내야
이번 말뚝 사건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우선 유치원생보다 못한 짓을 한 이 일본 남성에게는 ‘말뚝’이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이라는 정도만 가르쳐주어도 족하다. 그가 다시 말뚝을 들고 입국을 시도하거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께서는 그를 옆방으로 조용히 데리고 가서, ‘말뚝’이 그려진 그림책을 보여주고 이렇게 말씀해주시라. “쎈세이, 말뚝은 당신 집 마당에나 박으시구려”
허나 아직도 잊어버릴만하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망언을 밥 먹듯이 하는, 일본 총리니, 외무대신이니, 관방장관이니, 도쿄도지사니 하는 이런 ‘인간 말뚝’들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외교통상부장관께서 한 말씀 좀 제대로 하셨으면 싶다. 사실 이번 ‘말뚝 사건’은 이미 3개월 전쯤에 예고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지난 3월 말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그의 아버지는 자위대원이었다.)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에 쓰여 있는 ‘일본군 성적 노예’라는 표현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된 것이냐 하면 크게 괴리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 다음날 그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이번 ‘말뚝 사건’과 관련해서 대통령이나 우리 외교통상부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그냥 ‘내셔널리즘’이 아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초(超, ultra)라든가, 극단(극단, extreme)과 같은 형용사를 앞에 달고 있는” 내셔널리즘이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다. 전후 일본의 학계와 지성계를 주도한 ‘마루야마 덴노’, 마루야마 마사오의 경고다.(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47쪽) 우리 산과 들, 궁궐에 박힌 ‘쇠말뚝’을 뽑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인간말뚝’들을 뽑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