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의 잔혹한 6월
국제연대위원회 박지수 인턴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0년 키르기스스탄의 봄과 여름은 잔혹했다. 두 차례의 폭동 및 폭력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특히 6월 중 일어난 민족 분쟁으로 많은 수의 난민이 발생하는 등 이들 사태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국가운영이 불가하였다.
시기 적으로 이 두 사태는 작년에 일어났지만, 국제 앰네스티는 이에 대한 최종 보고를 1월에야 선 보였다. 대략적으로 앰네스티는 키르기스스탄의 민족 분쟁에 대한 비판과 함께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소요 사태에서 발생된 범죄에 대하여 충분하게 기소하지 않고 있으며 분쟁에 대한 처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하였다.
<2010 Riots>
1) 4월 항쟁
2010년 4월 6일, 탈라스(Talas)에서 야당 지도층에 의해 정부의 부패와 물가 폭등을 이유로 반정부 집회가 열렸으며 이 집회는 곧 전국적으로 퍼지며 폭력적 양상을 띄게 되었다. 언론에 따르면 내무장관인 몰두무사 콩가티예브(Moldumusa Kongatiyev)가 이 사태 중 사망하였으며 2010년 4월 7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쿠르만베크 바크예브(Kurmanbek Bakyev)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당시 경찰과 정보부는 다수의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였고 집회 참가자들은 이에 항의하여 전 KGB 본부였던 국내 보안 본부(internal security headquarter)와 국영TV 채널을 점거 및 조종하였다.
또한 키르기스스탄 정부 기관처에 따르면 수도에서의 경찰과의 충돌로 인해 최소 75명이 사망하였고 458명이 입원하였다.
수상인 Daniar Usenov는 러시아가 이들 소요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러시아 총리인 푸틴은 이를 부인하였다. 또한 야당은 미국이 주둔하고 있는 마나스 공군기지의 폐쇄를 요구하였다.
2010년 4월 15일, Bakiyev 대통령은 이웃 나라인 카자흐스탄으로 가족과 함께 망명했으며 키르기스스탄의 과도정부 지도자들은 그가 출국 전 사임의사를 밝혔다고 공표하였다.
2) 6월 민족 분쟁
2010년 6월 10일
키르기스스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Osh에서 우즈벡(Uzbeks) 민족과 키르기스(Kyrgyz) 민족 간 분쟁이 일어났다.
이 사태를 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과도 정부 대표 Roza Outunbayeva는 러시아 대통령인 Medvedev에게 이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러시아 군대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작성하였으나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인 Natalya Timakova는 “이 분쟁은 내부분쟁으로 러시아가 분쟁 해결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답하였다. 이 충돌로 인해 식량과 필수 소모품 부족해졌으며 6월 12일까지 약 200명이 사망하고 1685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이 분쟁은 지역 내 폭력조직 간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되어 순식간에 시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군인들이 키르기스 쪽 갱단을 지원하였다고 하나 키르기스 정부는 이를 부인하였다.
민족간 분쟁은 3번째 날까지 지속되었고, 키르기스 족의 지역내 우즈벡 족에 대한 일방적인 위협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 6월 13일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소요사태가 이웃 지역까지 퍼졌으며 결국 정부는 남부 Jalal-Abad 지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이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과도 정부는 보안 당국의 발포를 허가하였고 러시아 정부 또한 러시아의 시설 보호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과도 정부 대통령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전 대통령인 바키예브가 이 소요사태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바키예브의 지지 기반이 우즈벡 족이었다) 이웃 국가 우즈베키스탄의 정부관계자들은 최소 3만명 이상의 우즈벡 민족이 소요를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난하였다고 전했다.
2010년 6월 14일
6월 14일이 되자 Osh 시는 상대적으로 고요해졌으나 산발적으로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지역 전체가 계속적으로 비상사태구역으로 선포되었고 우즈벡 족은 미래에 닥칠 위협에 대비하여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 결국 UN이 사태 해결을 위해 사절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과도 정부의 부차관인 Temir Sariyev는 키르기스스탄의 한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였고 정부가 이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었으며, 이는 자국 내 안보세력이 약해 효율적으로 분쟁 집단들을 해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발표하였다. 언론은 또한 러시아 정부가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요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으며 같은 날, 집단 안보 조약 기구(CSTO)의 긴급 회의가 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긴급서비스(Emergency Services) 부차관인 Riza Ibragimov는 안디잔 지방에 키르기스스탄 출신 우즈벡 족 난민 6만명 이상의 난민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2010년 6월 15일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선포하였으며 170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했으나 적십자사의 Wagner에 따르면 정부 발표가 과소 평가되었으며 실제로는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0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나, 해지기 전에 주검을 묻어야 하는 이슬람 관습에 따르지 않은 주검은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았다고 보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제네바 주재 UN고등판무관은 폭력사태가 더 심화 되고 있음을 언론에 밝히면서 해당지역에 폭력의 영향 아래 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적 회랑(Humanitarian Corridor)의 설치를 요구하였다.
소요의 결과
약 30만명의 우즈벡 족이 자국 내 다른 지역으로 피난하였고, 우즈벡의 지도자들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불신을 이유로 UN평화유지군의 중재를 요구하였다. 사망자 또한 우즈벡 쪽에서 많이 발생하였으며 피난민 중10만 명 정도가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고, 몇몇의 우즈벡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보호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Osh 시내의 석유 창고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 UN은 또한 그들이 이번 공격이 계획된 공격이라 믿고 있음을 밝혔다.
<사태의 해결과 문제제기>
2010년 6월 11일부터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사태에 대한 형사적 조사를 착수하였으며 살인, 상해, 방화, 재산피해, 강도 등을 포함한 약 3500건의 사건들에 대하여 기소하였다.
또한 과도 정보는 국가의 회복을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했으며 그 방안 중 하나로 30명으로 이루어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6월의 폭력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HRW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정의 실현을 위해 6월 10일에서 14일 동안 이루어진 폭력에 대하여 조사할 의무와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및 국제법을 어겨가면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태가 진정되고 얼마 안 되어서 키르기스스탄 보안국은 우즈벡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불법적 무기를 압류하고 폭력사태 주범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이 작전 도중, 법 집행자들은 불법적이고 사나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였으며 주민들을 때리거나 모욕하고, 집을 약탈하거나 신원증명서를 불태웠다. Nariman 마을에서는 경찰들이 39명의 주민들에게 상해를 입혔으며 그 중 2명은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또한 커다란 스케일의 작전에서는 법 집행 기관들이 매일, 계획적으로 오쉬 시의 우즈벡 마을을 불시 검문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자의적이고 영장 없이 수색을 강행하였으며 불시검문에 대한 이유나 그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검문하는 가족들을 모욕하고 구속된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으며 몇몇 사건의 경우 수감된 자를 폭행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는 등의 위법 행위를 하였다.
변호사 5명은 HRW에 정부당국이 체계적으로 피고인의 정당한 법의 절차를 따를 권리를 부인하고 있음을 제보하였다. 여기에는 그들이 변호사를 선택하여 변호를 받을 권리, 변호사와 개인적으로 접견을 할 권리 등을 포함하며 이는 피고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강요를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변호인들은 정부당국이 구속 수감된 자들에 대한 의료 검진을 거부하는 등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이 소요사태가 두 개의 인종 집단에 의한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보안국의 작전은 대부분 우즈벡 민족을 향하고 있다. 당국은 구속자들의 인종적 분포에 대하여 정확하게 얘기하지는 않았으나 우즈벡 및 키르기즈족 피의자 모두를 구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우즈벡 민족이라고 한다.
또한 HRW는 최근 풀려난 60인의 수감자들의 고문과 부당 대우에 대한 증언과 폭행 사진, 변호사 증언, 가족과 다른 구속 수감자들로부터의 증언 등 정부당국이 수감자들을 고문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수감자들을 자백하게 하기 위해 고무 곤봉 등의 무기로 맞거나 걷어차였으며 비닐봉지나 가스 마스크로 질식시키려 하는 등의 고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Osh 지방에 소요사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민족 감정을 동반한 공격들이 이루어졌으나 정부 당국은 이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한 예로 키르기스 인종 사람들이 Osh시 경찰청 앞에서 열 댓 명의 여성들을 폭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앞에 있던 무장된 경찰들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 사회에 대한 요구사항>
이 사태와 관련하여 앰네스티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국제사회 및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먼저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각료 및 대통령, 의원 등은 6월 폭력 사태에 대한 정보를 규합하여 공식적인 사망자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목록의 목적은 사망자 수에 대한 싸움과 억측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6월 소요사태로 인한 수감자를 고문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해서는 안된다. 형사적 조사, 기소, 재판 등이 인종적 편견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 이루어져야만 하며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새로 만들어진 진상규명위원회를 지원하고 조사와 관련된 모든 자가 보복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