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시행의 계속 여부, 그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는 사법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적법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판례와 경험의 축적으로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적절성 여부를 심사하는 데는 구조적․경험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설령 사업시행의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및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대안을 찾는 것이 사법의 영역에서 일도양단(一刀兩斷)식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의 시행여부가 정치와 행적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재판부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4대강 사업의 시행여부를 사법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라는 고백은 처절한 진실이며 이 또한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원론적인 수사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 일이 맡겨졌는데도 우리일이 아니라고 발뼘하는 책임회피에 다름 아니다. 어떤 문제가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된 이상 사법부가 이를 다시 정치의 장으로 되돌려 놓을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존재이유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런 일을 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버거운 일도 하기 위한 것 아니던가.
사법부는 적법성 심사에는 적합하나 적절성 심사를 하는 데는 ‘구조적’, ‘경험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인가.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처분의 적법성을 심사하는 절차이다. 이 때 적법성이란 절차적 및 실체적 적법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재량의 일탈남용여부는 실체적 적법성에 대한 심사이다. 행정소송법은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는 처분이라도 재량권의 한계를 넘거나 그 남용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행정소송법 제27조(재량처분의 취소)). 실체적 적법성이란 사업(행정처분)의 적절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업의 적절성에 대한 심사는 사법부의 권한이자 동시에 의무가 된다.
대한민국이 법치주의국가임은 헌법이 표방하고 있는 바이고, 지난 세월 우리사회는 법치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다. 2010. 지금 대한민국이 진정 법치주의가 구현된 나라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형식적(절차적) 법치주의 실현에서는일정한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절차 위반 명백한 행정소송을 맡아보기를 희망하곤 하지만 거의 희망이기만 했던 필자의 경험이 그러하거니와 형식적인 절차 위반을 이유로 행정처분이 취소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라면 행정소송에서 다투는 적법성은 실체적 적법성, 즉 사업(행정처분)의 적절성일 수밖에 없다.
사업의 적절성 심사가 사법부의 권한이자 의무인 이상 법원이 4대강 사업의 적절성을 판단하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재판부의 지적은 그러므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
구조적 한계로 설명할 수 없다면 남은 이유는 ‘경험적 한계’가 될 것이다.
그간 우리 사법부는 사업의 적절성을 심사한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하여 적절성을 심사해 본 경험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강 사업이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의 이유가 사법부의 ‘경험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옳다.
솔직한 고백 앞에서, 깊은 절망감을 어쩌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경험적 한계는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만 문제는 경험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도 없이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다해도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점에 있다. 걷기를 시도하지 않은 아이가 걸을 수 없듯이. 그런점에서 경험적 한계는 분명 심리적 장애의 결과물인 셈이다.
4대강 재판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사법부가 그간의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는 장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법부는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골격과 근육의 구조를 다 알아야만 걸을 수 있다고 한 셈인데, 이는 사실상 걷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승소하면 판사덕분이고 패소하면 변호사 탓이라고 한다. 소송대리인으로서도 사법부의 준비에 충분한 조력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는지 살펴볼 일이나, 걸음을 ‘떼는’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사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