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인터뷰]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유남영 변호사 인터뷰

2010-11-15 292


유남영 변호사 인터뷰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임기를 2달 앞두고 사퇴의 뜻을 밝히신
유남영 변호사님께서 민변 사무실을 찾으셨습니다.
스스로를 “돌아온 싱글“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변호사 유남영‘은 볼펜을 꾹꾹 눌러 민변 신입회원 가입서를 정성스레 적으셨습니다.



민변 뉴스레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적 운영을 맹렬히 비판하며 인권위를 떠나신 유남영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인권위 시절 맡으신 일, 기억에 남는 사건부터 인권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변호사님의 생각까지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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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은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곳
▶ 후배 변호사들이 송기호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처럼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이 많아졌으면…
▶ 인권위 상임위원 활동은 민변 활동의 연장이라고 생각
▶ 우리가 가입한 인권 규약들이 문서 속에만, 그리고 고상한 연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어야…



(민)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민변 부회장을 역임 하셨잖아요?
(유)
네, 맞아요. 2008년 5월까지 민변 부회장 임기였어요. 저는 민변 창립멤버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서울에서 1년 활동하다가 광주에서 7년 활동했었는데, 공안사건, 재야단체 자문, 광주민주화항쟁 진상규명 활동, 법안 만드는 활동을 했습니다. 활동을 하다가 유학을 다녀온 뒤 비즈니스 로펌에 들어갔어요. 빚 갚고 돈 벌려고요. 빚은 아직도 있는데… (웃음)
 2005년까지 로펌에서 일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그 일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민변에 돈만 내지 말고, 30대 때 했던 것처럼 민변활동을 다시 해보자’ 하면서 민변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와보니까, 민변 안에서 나는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민변 창립 때는 제가 민변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었는데…(웃음)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백승헌 변호사가 회장 당선이 된 이후에 저에게 부회장직을 제의했어요. 그래서 “나는 민변 안에서도 보수적인 사람이다, 나는 민변논평과 생각이 다를 때도 많다. 그러니까 나는 회원으로써만 참여하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간부를 맡는 게 귀찮다고 했지요(웃음). 그때 백승헌 회장이 민변은 다양성이 있는 조직이라고, 그냥 같이 하자고 졸라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뭐 특별히 능력 있어서 민변 부회장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하하.


(민) 부회장직을 역임하시면서 민변 노래모임에도 나오시고 열심히 활동 하셨는데요, 민변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말씀해주세요.
(유)
부회장 시절, 한미 FTA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생각납니다. 민변 회원 중 송기호 변호사님이 계신데, 그 분은 원래부터 농민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시장개방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농업분야가 이슈화되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공부한 그야말로 농업문제 전문가였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소위 ‘준비된 카드’로서 FTA로 국가가 휘청거릴 때 민변에서 큰 역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젊은 후배들에게 송기호변호사를 닮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부터 끊임없이 특정 사안을 공부하고, 그리고 때를 만났을 때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민변이 해야 할 일입니다.
 송기호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처럼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 시장이 어려워져서 나도 이제 개업하고 어떻게 밥벌어 먹어야하나 걱정되는데(웃음), 그러니까 자기 분야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민) 민변활동을 하시다가 2008년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으셨습니다. 어떻게 상임위원직을 수락하게 되셨는지요?
(유)
2007년 10월 말쯤 상임위원을 맡으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때는 변호사 일이 재미없을 때에요(웃음). 당시 로펌에서 9년 정도 일했을 때 인데, 바람이 들 때였지요. 그래서 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락했습니다.
사실 그 때는 특별한 포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내가 뭘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민변활동 계속 했으니까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88년에 민변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이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상을 계속 붙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 상임위원을 시작하시면서 품으신 포부가 있으셨을 텐데요?
(유)
음, 상임위원 되고 지난 7년간의 인권위 자료를  보니까, ‘이제 우리나라가 자유권은 해결이 됐구나.’싶었습니다. 그래서 ‘아, 지금부터는 사회권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그런 생각을 가졌냐면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전통처럼 내려오던 고문사건이 없었고요, 국가기관의 정치사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없어졌어요. 또 인터넷 공간에 있어서 검열이 없어졌고 시민들이 집회를 할 때 경찰의 과잉공권력 행사 문제가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유권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견해에 따라서 다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철거민 문제나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과거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과거와 비교해보면, 공권력 행사에 있어서 일정정도 통제는 가능했습니다.



(민) 그런데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자유권이 해결된 근거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네요. 촛불 시위 때 생각해보면…
(유) 2008년 5월에 촛불집회가 생겼는데 이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별일 있겠나 싶었어요. 지난 10년 동안 공고해진 자유권과 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들이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범하면서부터 말이 많은 정부였지만 10년 동안 쌓아놓은 기본이 있으니까 백주대낮에 경찰이 시민 잡아가는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촛불집회가 장기화 되다보니 원칙이 깨지기 시작했지요. 연행자도 많아졌고 부상자도 많아졌고…, 7월 이후부터는 원천봉쇄로 가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그래도 경찰이 자제를 많이 했지요. 이것은 지난 10년간 쌓아놓은 경험을 토대로 경찰이 기본수준이라는 것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위도 권고를 했고 경찰도 내부시스템, 매뉴얼을 만들어서 시위에 대응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위 중에 있었던 경찰과 국민의 대치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우리 사회가 인권문제로 보지 않고 정권에 대한 도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의 진입이 과격해졌지요.



(민) 상임위원을 맡으신 비교적 초기에 촛불집회라는 큰 사건을 겪으셨네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유) …그렇지요. 처음 말하는 것인데…, 촛불집회에 대해 후회스러운 2가지 점이 있어요. 하나는, 인권위원회 사무처가 보고서를 올리는데, 그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에 정치적 파장이 적도록 잘 다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사무처에서 보고서를 만든 그대로 공개해서 필요 없는 비판을 받은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결정문 쓸 때처럼 ‘논점을 집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가 집회와 공권력 행사의 문제를 놓고 두 진영으로 쫙 갈리는,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극렬하게 갈려서 싸우고 서로 오해하게 된 것이지요. POLITICAL RISK MANAGEMENT를 잘 못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 자체가 UN사회권 규약을 위반한 건강권 침해였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UN사회권 규약에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스스로 광우병에 대한 기존의 기준을 무너뜨리며 협상을 했습니다. 이것은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이 아니지요. 여기에는 사회권 규약에 관한 일반논평을 보면, 기존의 기준을 저하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국제인권규약이 무엇인지 전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으면 우리가 가입한 국제인권규약들이 문서 속에만, 고상한 연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생활에 직결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주위 분들도 그 당시에는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지 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인권규약에 대한 PUBLIC AWARENESS를 높이는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민) 상임위원 재임 기간에 하신 인권구제 활동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유) 아주 많은데…, 몇 개만 이야기하자면 제일 첫 번째는 역시 촛불집회지요. 이 때 굉장히 정치적으로 예민했습니다. YMCA 눕자 행동단, 여대생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었고, 이 사건에 대해서 인권위에 진정서가 제출됐어요. 이 두 사건은 법원 판결까지 나왔고 손해배상 판결도 받아냈습니다. 이 때 법원이 사용했던 기준이 인권위가 사용했던 기준과 똑같았습니다. 인권위가 틀린 일을 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인권위의 활동을 비판하던 분들은 인권위가 초법적이라고 했었는데, 법원이 인권위의 기준을 사용한 것을 보면서 틀린 일 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또…부시가 입국할 때 입국을 환영한다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는 허용하면서 ‘평통사’라는 반미 단체의 집회는 불허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긴급구제조치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불온서적 지정 사건에 반대 의견 표명을 한 것(이게 노태우 장군님이 대통령을 할 때도 없던 일입니다!), 에이즈 말기 환자들이 먹는 약을 제약 회사와 보건 복지부가 몇 년 동안 싸우느라 그 값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특허청에 강제로 특허를 실시하라고 권고 조치를 냈던 것 등이 있습니다.



(민) 북한 인권 주심위원이셨는데, 북한 인권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유)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 시민단체, 탈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북한 인권상황이 아주 나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인권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남한정부가 어떠한 일을 하여야 하는지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남한정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에는 차이가 거의 없는 점이 이를 방증하지요. 그 동안 국내 및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인권에 관한 논의가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UN에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생겼고 북한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인권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기존의 공개적인 언급 내지 비난을 통한 성과 이상의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남한정부가 무엇을 해야햐는지에 있습니다. 현재 이에 관하여는 논의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민) 그럼 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사건은 없으세요?
(유) 인권위 역할은 인권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괜찮은데 인권사안 가운데 아예 다루지 않았던 사건들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천안함 사건입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 정부조사결과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고소, 고발에 의해 수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상 표현이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에 의해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 조사 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공론장을 국가가 통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임위원회에 안건을 냈더니 인권위원장이 다루기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상임위원은 상임위원회에 안건제출을 할 권한이 없다는 전원위원회의 결정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민) 상임위원이 안건을 낼 권한이 없다고요?
(유) 네, 안건을 제출할 권한은 위원장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전원위로 회부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상임위원은 안건 상정을 할 권한이 없다고 결정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쉬운 사건이 또 하나가 더 있는데,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 문제입니다. 이를 조사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 문제도 내가 전원위원회에다 안건을 내고, 임시상임위원회 소집 요청을 했는데, 임시상임위가 소집 되어서 조사하기로 했었는데 결국 속시원하게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민)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 출범 후, 대통령 직속기구 편제 논의가 진행되고 결론적으로는 인권위의 조직이 축소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인권위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유) 이 문제 대해서는 보수, 진보 막론하고 대통령 직속 기구 되면 안 된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입니다. 야당에서 당론으로 채택이 돼서 이명박 정부의 계획은 무산이 되었지요. 헌법상 3권 분립이기 때문에 세 개의 권력 기관 중 하나에 속해야 된다는 논리로 인권위원회를 하나의 권력기구에 편재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인권위가 무슨 권력이 있는가? 인권위원회는 권고를 할 뿐인 사회적 대화 기구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인권위원회는 “초헌법적 기구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수위원회가 출범하고 2개월 동안 고생했어요. 우리끼리 농담 삼아서 2,3년 일한 것 같은데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다고 했지요(웃음).



(민) 네, 그렇게 출범한 정부가 공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해 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된 사건이 많았잖습니까? 그런데 인권위에서는 PD수첩, 미네르바 사건, 국무총리실의 민간사찰 등의 시국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내부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방관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
저는 가장 특수한 경험을 한 상임위원 중에 한사람입니다. 2008년 5월~7월까지는 촛불 문제로 정신이 없었고, 그게 끝나자마자 2009년 4월에는 인권위 기구 축소 문제로 시끄러웠지요. 말하자면 인권위 소속변경, 촛불집회, 조직축소는 체인처럼 연결 되는 사건들입니다.
기구 축소 중에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던 전임 위원장을 겪었고, 그 뒤에 1년 4개월은 새로운 위원장과 새로운 사무총장을 겪었습니다. 위원장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아니, 보수라는 말이 아까운데…나 같은 사람이 보수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인권에 대해 덜 적극적인 사람들과 일 했습니다. 앞의 기간은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했던 기간이었고 뒤의 기간은 위상이 저하된 기간이었습니다. 앞의 기간에는 내가 Majority였고, 뒤의 기간에는 Minority였습니다. 아주 복잡한 경험을 했지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에요. 인권위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인권위가 성장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흐름을 보았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고달팠지만 훌륭한 농부는 풍년보다 흉년에서 많이 배운다지 않습니까. 제 임기 동안 풍년까진 아니더라도 평년작과 흉년을 모두 경험해봐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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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를 조금 남기고 사퇴하니까, 황혼 이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더라. 다 이유가 있었던 것
▶ 인권위는 권력 집행기구가 아니라 소통하는 기관
▶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위에 대하여 “그 호통이 때로는 날카롭고 자못 난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싫지 않았다.”라고 말했다는 군요. 인권에 대해 이정도 마인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떠나온 마음은 시원하지도 않고, 섭섭하지도 않습니다.
▶ 민변 안의 최소 공배수는 ‘인권’




(민) 임기를 조금 남기고 중도 사퇴하셨는데요.(유)
여기 오면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봤더니, 한 보수적인 매체에서 분석을 해놨더라고. “임기 2개월 남겨놓고 퇴직하는 것을 보면 쇼다! 적당히 비판하고 자기 체면세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많이 아파요. 지난 1년 4개월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가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무 무참합니다. 남녀가 결혼하고 쭉 잘 참고 살다가 왜 황혼 이혼을 하는지 알겠더라고요(웃음). 다 이유가 있는 것 입니다. 현재의 위원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문제가 많았어요. 별의 별일이 다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간담회에서 굉장히 많이 싸웠고, 많이 불편했지요. 상임위원과 위원장이 정파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추천한 민주당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저는 2002년 대통령선거당시에 민변의 구성원들이 노무현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을 구성할 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서명도 안했으니까요. 단순히 뭐, 정파가 달라서 갈등이 있었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 위원장이 이런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어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상임위원회가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사사건건 다 부딪혔습니다. 사직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여러번 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년 3개월을 보내다가 민주당 추천의 신임 상임위원이 2010년 10월 초에 새로이 부임하고 제 임기가 3개월 정도 남았지요. 연말이니까 특별한 안건도 없고 임기까지 조용히 마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운영규칙개정안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살펴보니까, 상임위원의 결의 없이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안건을 회부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상임위원들은 안건을 올릴 수 없는데, 위원장이 안건을 올려도 시기를 조정해서 올려서 김이 빠지거나 그것도 억지로 올리는 것이지요.  인권위에는 여러 가지 위원회가 존재합니다. 전원위가 있고 소위원회도 있지요. 그 중 유독 상임위만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위원장 입맛에 맞지 않는 결정들을 막으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개정안은 숨은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단순히 테크니컬한 개정안 아닌가.”싶었습니다. 이것은 위원장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자세를 취했던 상임위원을 무시한 것이지요.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이 왜 임기 2개월 남긴 우리들이 있을 때 그 법안을 내놓았을까 싶어요. 새로운 상임위원이 오면 훨씬 쉽게 해결됐을 텐데…. 우리의 황혼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지요.


 



(민) 단 한명의 위원장이 조직 전체를 흔들고 있는데, 위원장이 인권위를 일하지 않는 기관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인권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유) 중요한 얘기인데, 우리나라에는 헌법 재판소도 있고 헌법도 있고 1994년도에 국제인권조약에 모두 가입한 우리나라가 왜 인권 문제가 신장이 안 되는 것일까요? 그게 인권위 탄생의 배경입니다. 국가기관이 인권의 보장자이면서도 침해자라는 말이 있지요. 국가 기관 내부에도 인권의 감시자가 필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것인 사회적 대화기구인데 그 수행 방식이 관료적인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법원이나 헌재나 행정심판위원회처럼 결정권한을 가지고 집행을 하는 곳 아니에요. 권력적 집행 기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권고적인 기능을 하면서 현재의 법, 관행, 정책에 대해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요. 즉 비권력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요.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법질서를 그대로 지키라는 것 아니라, 현행 법제도의 모순을 고치라고 말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현행 법질서와 거리가 있기도 하지요. 그 대가로 권고 기능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
 일각에서는 인권위에게 강제적인 권한을 주자는 주장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인권위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현행법질서에 구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민주주의 원리에서 법률은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국회의 입법 기능을 초월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 단 하나로 제한해 두었는데, 인권위라는 기관이 이 법질서를 무시하면 이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입법권과 같이 설 수 는 없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좌파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Agenda를 인권위를 통해 실현하려 한다는 비판을 많이 합니다. 좌파로 편향된 기구라고 손가락질 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최근의 상황을 정상적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권위가 일정정도 편향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간단한 문제에요. 종합적 정책기관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포인트만 놓고 보는 것이지요. 종합적인 정책결정기관은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입법부에서 하는 것이고 인권위는 그게 아닙니다. 국가 안보에 무슨 영향을 끼치든 다수 여론에 무슨 영향을 미치든 거기에 구속될 수 는 없다는 거예요. 인권위가 좌파 행동대장이라는 비판은 인권위에대한 오해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권을 말한다고 하면 모두 좌파라고 하는 그릇된 자태가 문제입니다.



(민) 앞으로 인권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요?
(유) 우선 근본적으로 인권위 구성이 11명인데 이 중 9명이 집권 세력이 추천한 사람들입니다. 위원을 선출할 때, 그 사람의 정치노선이 어떻든 간에 기본적으로 인권적인 마인드가 있는 사람을 추천했으면 좋겠습니다.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인권 마인드만 있다면요. 보수 집권 세력이 있으면 보수 집권세력과 소통하면서도 인권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와야 합니다. 보수정부 내에서 다룰 수 있는 인권문제를 열심히 다루면 되는 것이니까요. 진보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인권 이슈 잘 다룰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로 나뉠 것 없이 전반적인 인권의 코드를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있는가입니다.
 제가 오면서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이 낸 성명을 봤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위에 대해 “그 호통이 때로는 날카롭고 자못 난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싫지 않았다.”라고 말했다는 군요. 몰랐는데…. 대통령이라면 인권에 대해 이 정도의 인식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보수적이라도 이 정도는 되어야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보수가 말하는 인권도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프라이버시권이나, 북한인권 등등…



(민) 인권위를 떠나오신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유) 남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시원섭섭하지 않냐며….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시원하지도 않고 섭섭하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놔두고 오자니 짠하고 계속 있자니 불편했습니다. 임기를 다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2개월 앞두고 사임할 수밖에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민) 변호사님 말씀을 들으며 법률가이기 때문에 갖는 인권의식이 있다면 민변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최소공약수가 같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변호사님이 민변에 꼭 필요할 것 같네요.
(유) 칭찬 감사합니다(웃음). 민변이 가진 생각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지요. 인권의 문제가 그렇고, 법치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하면 좋을 듯합니다. 민변의 적을 두고 변호사 네트워크 안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지요, 뭐. 서로가 네트워크를 갖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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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유) 백수로 지낼 겁니다!(웃음) 2개월 동안 쉬다가 변호사 복직해야지요. 집에서 그냥 2개월 쯤 쉴 겁니다.



(민) 민변 가입서를 바로 적어주셨어요. 민변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 어떠세요?
(유) 하하하…, 좀 더 지켜보고 말하겠습니다.








인터뷰/ 출판홍보팀 이재정 변호사
정리/ 5기 인턴 염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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