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활동]두근두근, 민변 5기인턴 첫 월례회

2010-10-13 165




5기 인턴, 첫 월례회


여러분, ‘울렁증’이 뭔지 아세요? 사전적 의미라라면 저도 대답이 약간 망설여지지만 적어도 증상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별다른 이유 없이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오고 손끝이 떨리기 시작하면 99프로 울렁증이 확실합니다. 높은 데 올라갔을 때, 대략 200명쯤 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기 직전의 기분, 이런 걸 생각하시면 맞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구요?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저한테 울렁증님이 찾아오셨거든요. 때는 부쩍 시원했던 10월 1일 월요일 여섯시 반쯤, 장소는 민변 대회의실. 네, 저는 막 활동보고를 하려던 참이었고 열네 쌍 눈길이 모조리 저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목소리가 사라지고 입술이 딱 붙어버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에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지요. 아 오셨구나. 그분의 존재를요.



 사실 울렁증은 활동보고를 하기 전부터 조금씩 그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4시 30분부터 인턴 교육을 받는 동안 약간의 낯섦, 생경함, 뭐 이런 것들을 느꼈거든요. 사실 저 그날 출근하는 날이라, 여섯시까지는 일을 안 해도 되겠거니 하고 신나서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이건 웬일? 쉬는 시간도 없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긴 강의를 듣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 반짝반짝 하는 눈빛들, 국제인권기구들의 그 수많은 약자들에도 굴하지 않고 알파벳이 춤추는 프린트를 연신 뒤적대던 우리 5기 인턴님들. 한창 피곤하고 배고플 시간에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인권회의에 집중하는 모습들이 왜 이렇게 딴사람 같은지. 특히 앞으로 있을 G20 회의와 예상되는 인권 침해 상황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오갔던 시간은 오티 때 그리고 근무 중의 분위기와 사뭇 달라서 왠지 덜컹 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어요. 내가 아까 살짝 존 걸 누가 봤으면 어떡하나,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각도 질문도 없는 걸까, 누가 물어보면 어떡하지? 하는 궁상맞은 걱정들로 가슴이 울렁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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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괴리(?)가 절정에 이른 건 월례회 때에요. 지금 제 앞에서 한 달간의 활동을 보고하는 사람들이 출근하면서 점심밥 얘기하고 식곤증에 몸부림치며 업무시간에는 서로의 미니홈피를 탐험하고 농담 따먹기에 유독 비상한 관심을 보이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맞는 건가요? 차례가 돌고 돌아 마침내 저에 이르렀을 때 진심으로 책상을 탕 치며 말하고 싶었습니다. 뭡니까 이게, 우리 하던 대로 해요!! 라구요. 하지만 그 진지한 눈빛들을 마주하는 순간, 제 입은 놀랍게도 ‘저희 소수자 인권위원회 준비 모임은…’ 따위를 주섬주섬 말하고 있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더 잘한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도 없었어요.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도 안 나지만, 두서없었을 것만큼은 분명한 제 말을 모두들 경청해 주셨습니다. 질문이 나올까 쪼끔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공황상태에 한 발을 걸쳐 놓은 것 같은 제 기분에도 아랑곳없이 아람 오빠와 지수 언니는 차근차근 월례회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월례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지에 대해 우리는 역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긴 이야기를 했고, 결국 정해진 형식 없이 각 달마다 바뀌는 진행 팀에 전적으로 기획을 맡기기로 했어요. 월례회 진행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고 엠네스티에 탄원서를 쓰자! 는 의견이 나왔을 때 저는 또 다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 저는 민변 대회의실에 둥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앉은 채, 얼굴도 모르는 사람, 평생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사람, 하지만 어딘가에 갇혀 불안에 떨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 편지를 쓰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요. 월례회는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걸 거에요.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째서 한 달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걸까요? 웃고 떠들고 놀리고 유쾌한 말이 오가는 와중에도 진지한 시선, 고민하고 생각하는 눈빛들이 스치는 순간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헤드셋을 쓴 상담팀의 근사한 모습, 근무 시간 여덟 시간동안 허리를 곧게 편 채 일에 집중하는 모습, 심지어 수화기 저편에서 영어가 들려도 전화를 척척 돌려주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요번에 스리랑카 너무 끔찍하지 않아요?’ 라고 질문 아닌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왜 ‘음, 진짜 그렇네요.’ 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한 걸까요. 9월 한 달 동안 정신없이 즐겁게만 지내느라 지원서를 쓸 때의 마음가짐은 까맣게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듭니다. 아,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막내니까 더 잘해야 되는 거잖아요. 적어도 다음 월례회 때 나는 뭘 했나 하는 후회만은 하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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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월례회 때의 울렁증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에 이틀을 함께 해 왔던 사람들의 진지함과 따뜻한 마음들을 새삼 느끼게 되어서일지도 모르고, 자신의 부족함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찾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울렁거림을 설렘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만들어 나갈 세 번의 월례회, 5기만의 불꽃이 팡팡 터질 이 소중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고 얻어갈 수 있을까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거라는 데서는 걱정,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데서는 흥분. 얼핏 모순되는 감정들이 울렁울렁 밀려옵니다.


울렁증으로 시작된 9월 월례회는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뒤의 울렁거림은 뭐냐구요? 에이, 뒷풀이가 언제 끝났는지 잘 아시잖아요^^* 정 안되면 술기운이라도 빌려서, 우리는 정말 잘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5기 인턴 파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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