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위원회 월례회 “김태용 감독(가족의 탄생)과의 만남”

2010-09-15 87


민변 여성위 월례회 “김태용 감독(가족의 탄생)과의 대화”



2010.9.2. 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의 저녁, 서초동의 작은 카페에서 여성위원회 위원들과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앵무새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김태용 감독님은 놀랍도록 빛나는 눈빛과 청량한 웃음을 가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소년 같은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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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의 화려한 수상 경력을 면밀히 조사한 윤지영 변호사의 소개를 시작으로 우리는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감독님의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몇몇 자기고백과 함께 남성 감독으로서 여성들 사이의 내밀한 심리를 어떻게 그처럼 공감이 가도록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감독님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10대 여자 아이들의 아름답고 불안한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냈고, “가족의 탄생”에서는 공효진 모녀가 겪는 진한 애증의 관계를 생생한 현실감으로 보여주기도 했지요.


대답은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는 깊고도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다른 아들들에 비해 어머니와 많이 대화하고 시간을 함께 하면서 어쩌면 딸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죠. 그러자 아들의 역할 딸의 역할을 한정하지 말자는 반론이 제기되었고, 이른바 딸의 역할로 주로 설명되는 관계였다는 것이지 역할을 나누자는 것은 아니라는 정색과 웃음이 함께 담긴 감독님의 재반론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성의 문제는 사실 인간의 문제니까요.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의 탄생”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가족상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감독님은 다만 자신의 영화가 관객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의 영화는 “여고생”(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대안가족”(가족의 탄생), “필리핀 이주여성”(달려라 차은)에 대한 어떤 답을 알려주는 영화라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가족의 탄생”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이야기였죠.


이야기는 국내 영화산업 실태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감독 중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들만 영화를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나, 투자 문제나 수익분배 문제가 불투명하고 불안하게 진행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에는 분위기가 다소 심각해졌습니다. 산업과 예술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숙명이기도 하겠지만, 좀더 세심하면서도 공정한 시스템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조차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독님 특유의 긍정적인 표정으로 전해 들으니 마치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무성영화인 “청춘의 십자로”의, 말 그대로 영화 같은 필름 발견 사건과 감독님이 기획한 변사 공연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우리 모두 신났습니다. 변사가 없는 서양 무성영화 시스템에서는 영화가 철저하게 화면 구성 위주의 시각 예술로 발전되었다면, 우리나라의 변사 시스템은 복잡다기한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기막힌 운명의 장난을 풀어내는 변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은 울고 웃었겠지요. 그 엄혹한 시대에도 사람들을 꿈꾸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인가 봅니다.


이야기는 영화 현장의 공동작업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감독의 외로움, 배우 공효진의 성장, 저녁형 인간의 성공전략, 탁구 취미로 이어졌습니다. 감독님의 나직하면서도 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여름밤이 한참 깊어졌네요. 우리는 여름밤의 소중한 기억 하나를 나누어 갖고,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감독님의 새 영화 “만추”가 보여줄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합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성: 최정인 변호사, 여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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