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소식] 경남지부 – 뒤따라 올라 본 함안보

2010-08-16 142




뒤따라 올라 본 함안보




 부끄럽게도 이 사건 전에는 4대강 공사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은 ‘함안보’가 제가 사는 곳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창원-그래도 지방 도시치고는 큰 편에 속하는 곳입니다-, ‘함안보’는 함안 어디쯤 아주 시골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난 7월 마지막 날 가본 함안보는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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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은 원래, 함안보에 올라가 있는 활동가 2분(이환문, 최수영)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있어, 의사선생님 2분이 인도적 차원의 진료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활동가 두 분의 변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의사선생님들과 함께 경찰의 인도(?)에 따라 함안보 공사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함안보 공사 현장은 마치 요새 같았습니다. 공사 현장은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높은 펜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반인들이 다니는 길가에서는 활동가 2분이 올라가 있는 크레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그 높은 철책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규모의 함안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공사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서있는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활동가 두 분은 사실상 감금상태였습니다. 크레인 주변으로는 언제든지 연행이나 작전이 가능할 정도의 경찰력이 대기상태로 있었습니다. 가물막이 공사가 끝난 위로 경찰 지휘 본부가 있었습니다. 차로 가물막이 위를 달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도 저는 제가 밟고 지나가는 그 넓은 곳이 가물막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얼핏 대학 때 가본 춘천댐 위를 지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사현장의 규모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경찰과 실랑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과 저의 안전을 위해 경찰이 함께 크레인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 경찰이 내건 진료 조건이었습니다. 크레인 위에 계신 분들은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경찰이 올라온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활동가분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크레인은 겨우 한명이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사다리로 40여 미터를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을 의사 선생님 2분과 저 그리고 경찰이 오르게 되면 그것이 더 위험한 것 아닌가, 경찰이 대동한다고 해서 더 확보되는 안전이 무엇이 있는가, 변호인과의 접견 교통권을 침해하는 것인가 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경찰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고 크레인 위의 활동가 2명이 저희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저와 의사 선생님들이 크레인에 오르는 것까지 경찰이 감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날은 너무 더운 날이었습니다. 그늘 하나 없는 공사장 한가운데에서 경찰과 1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의사선생님 2분이 진료를 하시는 동안은 경찰이 함께하는 것으로 하고, 제가 활동가분들을 만나는 동안은 경찰이 크레인 아래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절충이 되어, 먼저 의사 선생님들이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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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인 아래에 도착해서 위를 올려다보니 크레인은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이어진 것처럼 높아보였습니다. 저희는 사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꼭대기까지 오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활동가 두 분이 크레인 중간지점까지 내려오신 덕에 수월하게 진료와 접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진료가 끝나기까지 내리쬐는 여름 볕 아래서 기다리기를 40여분. 막상 제가 올라갈 때가 되자 저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활동가 두 분이 그날까지 10일 동안 어떻게 그곳에서 버티신 건지(그동안 심한 폭우와 비바람도 지나갔었습니다) 경이로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도 크레인에 올라 이환문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님을 만나 민사 가처분(건설회사 측에서 활동가 2분을 상대로 크레인에서 내려올 것을 청구하면서 1일 2,00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신청하였음)과 형사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위에서 보니 주위의 고즈넉한 풍광과 함안보 공사 현장이 너무도 대비를 이루어 절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결국 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것이 많았습니다. 그 곳을 몰랐던 것도 부끄러웠고, 말이 아닌 행색으로 10일 동안 공사장 밖에서 천막을 치고 크레인 위의 분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계시던 시민단체 분들을 보기도 부끄러웠고,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그 곳에 있는 동안 찾기도 어려운 시민단체의 천막 농성장을 직접 찾아와 격려를 해 주신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천막 아래로 그 분들을 모시면서 어떻게 오신 것이냐고 물으니 그냥 평범한 시민이고 와 봐야할 것 같아 왔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대목에서도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두 분의 활동가를 위해서 크레인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해 올라야만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뒤로 크레인 명도 단행 가처분 심문이 있었고, 두 분이 크레인에서 내려오신 후 체포되어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었습니다. 민변 경남지부 변호사님들과 부산의 강동규, 변영철 변호사님과 함께 열심히 변론을 하였습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구속영장은 기각되어 지난 8월 13일 두 분 모두 풀려나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유한한 권력은 언젠가 그 끝을 볼 것이며, 오늘의 이 현장도 모두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심판에서 조금은 떳떳하고자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 글 / 박미혜 변호사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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