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국제노동기준 전문가 Tim De Meyer 씨와의 간담회 후기

2010-07-15 104




2010년 6월 30일.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현재 혹은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수식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노동자”라는 단어가 들어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으로 글을 여느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민변 노동위원회 인턴 ‘진상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ILO의 노동법 전문가이신 Tim de Meyer씨와의 간담회 후기를 적은 것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정말 놀랄 때가 있습니다. 글머리의 질문은 인턴을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처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스스로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에게 고용될 것을 목표로 하면서, 한 번도 노동자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으니 말이죠. 지금 일을 하고 계시든 그렇지 않든, 여러분께서는 얼마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또 얼마나 나의 가족, 이웃, 친구가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간담회 후기를 쓰는 자리에 간담회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않고 자꾸 질문만 해대서 적잖이 당황스러우시죠? 제가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자꾸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를, 나의 가족을, 내 친구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노동 문제의 뿌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있거나 고용될 것입니다. 고용된다는 것은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이 타인에게 종속됨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의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우리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나요?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이유 없이 쫓겨나고, 또 그것이 억울하여 농성을 벌이는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고, 나의 가족, 친구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용자와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사용자가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이 상태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상식을 외면하고 노동자가 뭉치면 ‘역적’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할 정부조차 사용자의 편에서 노동권의 정당한 행사를 불법으로 보고 노동자 단체를 없애려고 합니다. 일터에서 사용자에게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감정 섞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상 결사의 자유 중에서도 특별히 보호되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를, 정부는 설립신고를 반려하며 침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단체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국민들이 “귀족 노조”라며 노조활동에 눈을 흘기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나 자신 혹은 나의 가족, 친구에게 눈을 흘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우리가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일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용자는 우선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문제에 공감한다면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야하지 않을까요?

 
나의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의 모습이, 혹은 나의 가족과 친구의 모습이 바로 노동자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수많은 “오해”를 풀 수 있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진짜 문제”가 의미를 가지게 되어야만, 우리는 현실을 돌아보게 되고 그 의미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 문제의 의미에 관하여 제 스스로 납득할 만한 말씀을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의 간담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장황하고 거칠고 부족한 저의 생각은 이쯤에서 서둘러 갈무리하고 간담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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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부터 내린 비는 한동안 뜨거워졌던 초여름 공기를 식혔습니다.
한결 시원해진 6월의 마지막 날에 민변 대회의실에서 ‘한국노동기본권 상황’에 대한 간담회에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ILO 동아시아(SRO-Bangkor)지역 태국 방콕사무소에서 근무하시는 국제노동기준 노동법 수석 전문가이신 Tim de Meyer씨를 모시고 한국사회의 노동기본권 상황과 현안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어떤 단체인지 소개를 하고, 노동위 위원장이신 권영국 변호사님께서 최근의 현안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질의와 답변을 주고받았습니다.

 ILO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이야기를 이어 보겠습니다. 우선 국제노동기구(ILO)의 이사회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회는 28명의 정부대표, 14명의 기업대표, 그리고 14개 노동자 대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ILO가 노동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을 공평하게 반영하여 중립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ILO에서 지적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중립적인 기관에서 보기에도 우리의 노동 환경이 국제 기준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ILO의 구성은 ILO의 발언력과 영향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와는 ILO에 제소하는 문제로 주로 접촉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ILO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점,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는 점, 그리고 노동조합과 사용자간 체결한 단체 협약의 혜택을 받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이번 ‘팀 드 메이어’씨와의 간담회를 통하여, 법률가의 입장에서 현재 심각한 ‘한국노동기본권 상황’을 ILO에 알리고 ILO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국에서 문제되는 노동 문제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를 하였는데,  이 부분도 저에게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략하게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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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평화적인 집단적 노무거부행위에 대하여 우리 사법체계가 형벌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우리 법원은 노동자가 평화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고용되면 형법이 일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혹시 이것이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정이 생기면 그 일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어겼다고 여러분이 처벌을 받는다면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납득할 수 있으신가요? 형벌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개입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형벌은 (사기와 같이 처음부터 범죄를 위해 의도된 경우가 아니면) 어떤 계약 위반도 처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설득하기 위해 일터에 다 같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그런 행위를 처벌하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이 그런 행동을 범죄로 생각하여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해 주기로 계약을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계약을 지켜야 하나요? 노예도 아닌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처벌을 받아야 하나요? 이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는 가령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대공익인권법센터,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 주체한 2010년 학술 세미나「쟁의행위와 업무방해」(2010년 5월 28일) 자료집의 조국, 임지봉, 도재형 교수님의 발제문 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ILO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곧 시행될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및 타임오프제의 문제점도 심각합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문제는 서로 합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면 됩니다. 서로 협의를 통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사용자는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해서 임금을 지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을 사용자와 노동자의 자율에 맡기지 않고 법률로 굳이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임오프제를 실시하면 사용자는 노동조합 임원의 활동을 전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일정한 활동에 대해서만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노동부 관계자는 타임오프제가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리한 것인지, 어떻게 노동조합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지 사용자들에게 알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에 군장병들이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ILO에서도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밖에 사업장 복수노조 유예 및 교섭창구 강제단일화의 문제점, 공무원 노조 ․ 전교조에 대한 탄압, 철도노조에 대한 정부의 탄압,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 부정과 노동부의 사후 노조심사를 통한 설립취소, 노조설립 신고제도를 악용하여 노조설립 제한과 사후 노조 설립 취소, 정부 주도 하에 ‘노동조합 탄압’ 의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단체협약 해지 등의 문제를 권 변호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법이 전부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기본 원칙을 정한 헌법에 왜 노동에 관한 권리가 들어 있는지 생각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배경과 역사의 중후한 무게를 느끼면서 저의 부족한 글을 닫습니다.






– 글 / 노동위원회 진상원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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