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공부모임, 한국전쟁을 읽다.
올해는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 셈법대로라면 ‘2세대’에 해당하는 긴 시간입니다. 민변공부모임에서는 한국전쟁 60년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6월 한 달 동안 한국전쟁과 관련한 책 3권을 함께 읽었습니다. 첫 번째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한 신문에는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 ”이라는 제목의 사설칼럼이 실렸습니다.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군 지휘관과 ‘지도층’ 인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이 칼럼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쓴 논설위원이나 민변공부모임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나 모두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어느 글에서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6·25’,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함께 읽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전쟁으로부터 배우고 미래의 ‘평화’를 준비하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함께 풀어야 할 화두입니다.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 :『전쟁과 기억』(한울아카데미)
어렸을 적 부모님들로부터, 아니면 마을 어른들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말이지…”, “4·3 때는 말이다…”, “인공 때는 말이여…”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쟁과 기억』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민간인 집단학살 및 좌우익에 대한 기억들을 담고 있습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집단학살사건, 전쟁 중 발생한 함평 양민학살 사건 등에 관한 진실 찾기 노력이 시작된 것은 사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입니다. 이 책은 ‘마을공동체의 생애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전쟁과 폭력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기억, 그 중에서도 전쟁과 학살을 체험한 여성들의 전쟁기억들을 담고 있습니다. 보도연맹원인 남편이 “아침 일찍 소집이 있으니 깨워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편이 혼자 깨어 이미 나가 있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남편을 보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구술은 지난 50여 년 동안 ‘공식적 기억’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피학살자 가족들의 ‘고립된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것처럼 ‘전쟁이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이고 그 수단이 다름 아닌 국가 폭력의 극대화라면, 그 피해자는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의 민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 피해자, 피학살자의 기억은 국가의 ‘공식기억’을 통하여서는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고 숨겨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말 속에는 전쟁의 주체인 ‘국가’와 ‘정치’의 얼굴만 보일 뿐, 전쟁의 직접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국민’이나 ‘대중’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바라본 한국전쟁:『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역사비평사)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내전인 동시에, 국제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냉전의 중심지였던 유럽에서 본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5년 만에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전쟁 소식을 듣고 식료품 사재기를 할 정도로 ‘공포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군수산업이나 전쟁 관련 산업의 부흥으로 일정한 경제적 이득을 얻은 것이 사실입니다. 전쟁의 피해자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으며, 전쟁이 발생한 인접국가나 세계의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한국과 독일 학자들이 함께 묶은 이 책에서는 한국전쟁이 우리나라 건국 헌법의 경제조항 개정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 『전쟁과 사회(개정판)』(돌베개)
6월 공부모임은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사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이 김동춘 교수의 시각입니다. ’피란-점령-학살‘의 3가지 관점을 통해 한국전쟁의 이면과, 전쟁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이 책은 ’과거‘ 속에 존재하는 전쟁에 대한 기억들을 ’현재‘로 불러내어 ’미래‘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과 당시 핵심 권력층이 보여준 ’피란 방식‘, 인민군 점령기의 체험이 ’대한민국의 원체험‘으로 이후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전투‘로서의 전쟁 뒤에 가려져 있는 ’또 다른 전쟁‘으로서의 민간인 학살 등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우리들의 ’과거사‘이기도 합니다.
6월 마지막 공부모임이 있었던 다음날인 6월 30일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공식 조사활동이 종료되는 날이었습니다.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해서는 우리 현대사에서 발생했던 사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엄연히 존재했던 ‘진실’을 애써 ‘없었던 사실’로 간주하려는 것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둔하고 퇴행적인 행위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글 / 좌세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