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국인권보고서 발간
2009 한국인권보고서를 발간하며…
지난해 신정부 출범이후 경제위기와 민주주의 후퇴로 기인한 인권상황의 악화를 개탄하는 2008년 인권보고서 발간사를 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발간사를 쓰면서 적어도 다가올 2009년에는 촛불로 상징되는 국민의 힘이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의 악화를 막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나 2009년 새해는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불타는 망루에서 사망한, 용산참사라는 비극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용산참사와 그에 이어진 상황은 우리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1년 가까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던 상황, 진압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은 찾을 수 없고 철거민에게만 책임을 돌린 수사, 수사기록마저 공개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진행된 1심 재판과 아직도 감옥에 묶여있는 철거민들, 참사를 통해 드러난 제도상 문제점들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는 정치 현실은 우리가 이 사건을 아직 ‘끝났다’라고 말할 수 없게 합니다.
그토록 끔직했던 용산 참사는 2009년의 인권현실을 보여주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전직대통령의 자살까지 불러일으킨 무리하기 짝이 없는 검찰권 행사, 신영철 사건에서 보인 사법부 독립의 취약성, 조그마한 정치적 반대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어진 전교조 교사들과 공무원들에게 가해진 징계, 언론관계법 등의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그리고 이제는 일상사가 되어버린 국회에서의 직권상정과 불법적 의결절차, 노동 인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쌍용자동차 사건, 인권의 보루인 인권위원회마저 허울뿐인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일방적 조직 축소와 비인권전문가인 위원장임명 등 출간사의 이 좁은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인권상황의 지속적인 악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삶의 곳곳으로 전가되어 나타났습니다. 계속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실업자와 늘어나는 비정규직,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복지부분의 예산 축소는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삶의 질을 후퇴시켰으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정성을 잃어버린 권력행사로 인해 국민들의 공동체적 삶 또한 계속 파괴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2년간 보여준 인권상황의 악화는 2010년도에도 나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가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심각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그 실질을 찾아가는 역사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확신을 해봅니다. 지금의 상황은 민주화의 진전으로 얻은 인권의 증진, 확산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련 속에서 얻어지는 매우 소중한 것임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주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낙관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더 지금의 상황을 엄밀하게 기록하고 평가하여 전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한국인권현실을 아파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다가올 그날을 위한 냉정한 기록으로 이번 인권보고서를 펴냅니다.
이번 인권보고서는 노동, 민생, 언론, 교육 등 각 분야별 인권현황을 개관하는 한편, 집중적으로 용산참사와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주제로 하여 사법분야,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정보인권분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보고서를 내면서 뼈저린 것은 인권보고서에 기록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라고 적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날의 인권보고서에는 2009년에 극복하지 못하였던 한계들이 이러저러 극복되어 이렇게 인권이 개선되었다라고 보고하는 꿈을 꾸어봅니다. 희망을 꿈꾸는 한 결코 패배는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이 보고서를 작성하신 모든 필자와 사무처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2010. 1.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백승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