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갑 변호사의 [이러쿵저러쿵]

2009-11-30 166


시위, 그리고 서울과 광주의 차이

                                                                                                       _ 이상갑 변호사 (광주전남지부)


   지난 8월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천정배 의원을 찾아갔다. 평소 친분이 있던 분인데, 미디어법 날치기에 항의하여 의원직까지 사퇴하고 매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서명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방문차 찾아갔던 것이다. 그날은 최상재 위원장, 최문순, 추미애 의원 등과 프레스센터 앞에서 모였다가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여 1인 시위를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 일행이 프레스 센터 앞마당을 떠나 광화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전경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왜 막느냐’는 항의에 대하여 어떠한 이유 설명도 없이 길을 막고만 있었다. 항의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다가 급기야 몸싸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이후 전경과 몸싸움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결국 에둘러 빠져나와 광화문 광장으로 갔지만, 심야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올 때까지 분이 식지 않았다.


   11월 초에는 서울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 위령미사에 광주지역 신부님들과 다녀왔다. 금년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다. 미사는 예정된 6시를 두시간 넘겨 8시경에야 시작되었다. 미사를 시작하기까지 전경들에 막혀 서울광장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날도 ‘왜 통행을 막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미사는 전경들에 둘러쌓인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는 광주시청 앞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에서 연일 계속되고 있는 1인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미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시위이다. 그 동안 7, 8회 나간 듯하다. 말이 1인 시위이지 사실상 작은 집회다. 그러나,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위의 이슈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미디어악법 날치기 규탄을 위한 금남로 집회 때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광주에서는 집회를 봉쇄하는 사건을 보기 어렵다. 이를 두고 어떤 분들은 ‘역시 광주’라고 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원인은, 광주가 운동의 최전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징으로서의 광주의 역할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광주의 운동역량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는 현실도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민변 광주전남지부의 책임과 역할을 다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