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부는 무너진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국제적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인사를 새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해야 한다.
[ 논 평 ]
정부는 무너진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국제적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인사를 새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해야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가 그야 말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인권위는 “다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적 지위 보장”이라는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국제적 기준」과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입법․행정․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설치되었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흔들기를 한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인수위 시절 독립기구가 아닌 대통령 직속 기구로 하려다 국내외의 강력한 반대로 실패한 바 있는 이명박 정부는 그 뒤 인권위와 국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안부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하여 인권위 조직을 무려 21%나 축소하였다. 촛불시위 진압과정에서의 경찰폭력을 지적하고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이나 국정원법 개정 등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인권위에 대해서 곱지 않는 시각을 보내며, 대통령에 대한 특별보고조차 받아주지 않는 듯 비협조를 떠나 아예 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짓밟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인권위 독립성 흔들기와 홀대는 국제사회에서도 망신거리가 되고 있다.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 의장이 우리 정부에 우려를 표현하는 서한을 보내오고, 유엔 인권 최고책임자인 인권최고대표 또한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내 왔다. 지난 3월에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한국의 인권위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년가까이 인권위를 지켜 오던 안경환 위원장이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사의를 표명하였는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사직의 배경은 현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와 냉대 때문이었으며, 안 전위원장은 단적으로 이를 ‘식물위원장’과 같은 신세라고 표현하였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인권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신의 임기를 성실히 마칠 것을 공언해 오던 안경환 전위원장의 사임을 보며 우리는 현 정부의 인권위 무시와 냉대, 독립성훼손이 극에 달하였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대통령에게 위원장을 임명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위원장을 임명하게 된다. 대통령에 의한 임명방식은 위원장으로서의 자질검증과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불가능하므로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인권위의 위상이 흔들리는 폐단을 막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나, 법개정 이전이라도 인권위원장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공정한 인사기준을 마련하여 후임 인권위원장 임명 때부터 시행함으로서 좋은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경환 전위원장을 이를 후임 인권위원장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친정부 인사가 아닌, 오랜 인권옹호 경력을 통해 인권감수성과 이론으로 무장하고, 인권위 독립성을 수호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 및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논의의 흐름을 읽고 이해하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언론을 통해 일각에서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은 이와 같은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인사들이 새 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결국 인권위는 정부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적극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 위원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임은 안경환 위원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진 정부의 일련의 인권위 독립성 침해 행위를 다시 한 번 규탄함과 아울러, 정권으로부터 자유롭고, 인권위 독립성 수호와 기본적 인권 옹호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새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할 것과 새 인권위원장 임명시부터 위원장 선임에 대한 공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나갈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
2009. 7. 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백승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