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의 국민장이 거행되는 날이다. 지금 경복궁 장례식장에서는 국민들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기 위하여 국민장이 거행되고 있다.
생각하여보면, 그는 자기자신만을 살아온 치열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죽음을 보니 더욱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사람을 쟁취하여 왔던 인물이다. 주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만을 기다리지 아니하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5월 23일 새벽, 그가 일찍 집을 나섰을 때 그는 짧은 유서를 작성하고 난 이후였다. 아내에게 따로 말을 하였던 것 같지 않다. 경호원과 함께 묵묵히 집을 나서 정토원을 돌아 본 후 부엉이바위 위에 섰다. 집에서 가까운 바위로는 매우 우람하고 4-50미터되는 벼랑을 지녔다. 일찍 떠오르는 햇살은 이미 봉화산을 비치기 시작하였다.
그가 태어난 마을, 그가 어렸을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깊은 골짜기였던 곳이었다. 지금은 봉화마을이 보이는 지점까지 창원공단의 협력업체들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아직 봉하마을까지 공장이 서 있지는 아니하다. 그의 생가는 봉화산을 등진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이곳을 생태마을로 가꾸는데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자그마한 생태마을을 만들기에는 그런대로 덜 침해된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는 함께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하며, 수확을 하였다. 대통령직을 마친 이후 그는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 나라의 진정한 정치발전을 위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제2의 노무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던지게 만드는 역풍이 불기 시작하였고, 그는 무명(無明)의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가 지향하고 선포하였던 정의와 청렴의 가치가 자신과 가족과 동지들에 의하여 무너져 내린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외의 다른 누구를 먼저 원망하거나 질책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표방하는 가치 앞에 자신도 똑같이 냉정하게 비판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실정법은 그를 구속하여야할지 말지를, 나아가 그가 유죄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말하고 있듯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며,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여생이었을 줄 모른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와 같은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계속 살아가면서 활로를 개척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연대의식도 그를 지탱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으면 가슴이 환하게 열리면서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장렬하게 산화하기도 한다. 끝없는 예술혼을 추구하다가 벽에 부딪쳐 죽음의 나락에 떨어져 가기도 한다. 그에게도 사느냐 죽느냐 하는 자문이 처절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는 깊은 자괴감을 느꼈고, 자신이 구심점이 되어 이룩할 수 있는 사람다운 세상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하여 좌절하기 시작하였다.
죽음을 결심하고 나선 새벽길에 그는 혼자일 수 있었다. 그의 꿈과 고통과 소망이 배어 있던 부엉이바위 위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혼자 산책길을 떠나버린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을 사저가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죽음의 결심을 유보하고 산을 내려가면 그의 삶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신의 섭리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고통과 불안을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는 거의 첫 번째 시도에서 자진(自盡)을 성공시켰다. 그가 치열한 삶을 살아왔듯이 마지막 순간도 치열하게 정리하고 만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결정으로 이 세상에서 훌쩍 떠나버렸다. 살아 있는 자에게 가장 궁금한 죽음 이후의 미지의 그곳으로 가 버렸다. 불안은 오직 살아 있는 자만의 그림자요, 실정법은 살아 있는 자들을 기속할 뿐이다. 그는 비상(飛翔)하는 마음으로 부엉이바위를 뛰어 내렸을 것이다. 육신은 비록 추락하여 참혹하게 부숴졌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새롭게 비상하였을 것이다. 입관시 그의 얼굴이 평온하였다 전해 옴은 그가 뛰어 내렸을 때 육신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진심으로 기원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과격한 투신(投身)이 슬픔과 아픔으로 우리를 전율하게 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한 조각이요 신의 뜻에 따르는 한 모습으로 신의 면전에 바쳐지기를 기원한다.
(부)우연 새벽 어슴푸레 열리고/ (엉)겅퀴 자주빛 꽃망울 맺히고 있네/ (이)솝의 우화 한편 끄집어 내어/(바)보들의 행진에 기쁨을 터뜨리고/ (위)태로운 절벽도 비껴가게 하네.
그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밝게 빛나는 영혼으로 제2의 노무현으로서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지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