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서]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노동법률단체 의견서

2014-12-29 1,553

박근혜정부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노 동 법 률 단 체 의 견 서

노동시장 교란! 노동권 하향평준화! 노동법 형해화!
– 비정규직화를 비정규직 해결이라 말하는 박근혜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반대한다 –

올 겨울은 유독 삼한사온 없는 매서운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올 겨울 노동자들의 현실도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기간제 사용제한 연장과 파견 확대를 언급하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면 정규직 과보호를 없애야 한다며 해고제한요건을 완화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를 과보호하여 비정규직이 확대된 것이고, 그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 상태를 개선하기 힘들다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내놓으면서, 정규직 과보호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지난 9월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시장 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2월 23일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을 위한 원칙과 방향으로 5대 의제 및 14개 세부과제를 담은 노사정 대표자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노사정위원회는 내년 3월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 등을 의미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비롯해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사회안전망 정비’ 의제 등 3가지 우선과제 논의를 내년 3월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명분으로 박근혜정부는 29일 정규직을 과보호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에 활력을 제고한다는 이유로 해고ㆍ임금ㆍ근로시간ㆍ취업규칙 변경관련 노동법의 기준을 악화시키고, 비정규직의 차별시정 및 고용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기간제 사용제한 연장, 외주화 남용방지를 위한 규제합리화하는 명분으로 파견확대 등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그동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의 방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장기화하지 않기 위해 기간사용제한을 둔 기간제법의 취지에 따라 2년이 경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견인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및 직접고용화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원인분석과 비정규직 규제목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월 경제정책 3개년 계획을 통해 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 밑그림이 드러났다. 공공부문 개혁으로 단체협약 및 근로조건 등 인사권 행사에 노동조합의 동의권을 배제하고 민영화를 확대하는 한편 사내하도급법안을 제출하고 파견규제합리화를 위해 파견업종과 기간을 완화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노사상생을 명분으로 연공급제를 지양하고 직무성과급제와 임금피크제를 확산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정책방향은 7월 고용ㆍ노동분야 주요정책방향에도 이어져, 고용노동부는 5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과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 일정소득 이상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는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이 가능하고 파견기간제한도 완화시킨다는 방안, 농림어업 종사자의 업무를 파견대상업무로 포함시키는 방안 등 파견을 확장하는 방안을 제출하였다. 특히 10월 8일 노동부장관은 “기간제한이 정규직화보다 하도급을 유도한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기간제법의 목적과 취지를 부정하기 시작하였고, 10월 28일 국정감사 종합국감에서 30대노동자들은 기간연장을 요구한다는 발언을 하며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지난 9월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를 구성한 이후 더욱 분명한 논조를 띠기 시작하였는데, 비정규직 보호 대책의 핵심은 정규직 임금체계 개편에 있고, 마치 정규직 임금을 삭감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늘어날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11월 24일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고, 다음날인 11월 25일 최경환 부총리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규직 처우를 낮추는 방안을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하였다. 그리고 12월 4일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구조개선토론회 축사에서 “이중구조와 소득 격차 등 우리 노동시장의 실태에 비추어 볼 때,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지금의 고용시스템은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언급하면서, ▲저성과자 해고 완화, ▲취업규칙변경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따른 불이익변경 인정, ▲정년60세 보장을 위해 임금피크제 및 직무성과급 임금체계개편, ▲근로시간총량 제한과 근로시간유연화, ▲고임금전문직 근로시간 적용제외,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확대 등 내년 비정규직 보호대책의 핵심적인 내용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보호를 앞세우고 있지만 해고 ․ 임금 ․ 근로시간을 유연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사실상 노동법의 근간을 무너뜨려 전체 노동부문을 비정규직화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1. 통상해고 규제완화는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확산시키는 것으로 비정규직 고용불안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저성과자 해고유연화는 업무성적 부진을 요건으로 교육이나 배치전환, 임금조정 등의 개선ㆍ교정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해고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해고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하는, 통상해고 완화방안이다.

첫째, 이는 통상해고 역시 정리해고와 같은 해고유연화를 통해 해고를 더 쉽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해고의 실질적인 사유’로서 저성과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면, 교육이나 배치전환, 임금조정 등 ‘해고회피노력이라는 절차적 요건’을 다하였음에도 개선이 없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구조로,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내부노동시장의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하고 고용 및 근로조건 조정의 소모적 갈등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근로계약 해지 및 근로조건 변경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으로 해고규제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저성과를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경우 그 정당성을 다툴지언정 통상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성과를 해고시킬 수 있는 요건으로 구체화하여 한다는 것 자체가 그간의 해고제한법리의 엄격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순간 경영상 긴박성에 대한 실질적 판단은 점차 희석되고 사용자의 경영상 편의까지도 폭넓게 허용하면서 해고살인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법원 역시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해석에 그치고 오직 법문에 정한 형식적인 절차만을 따르면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저성과, 업무실적 부진의 실질적 판단을 사용자의 경영상 편의에 맞추어 해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정리해고의 해고회피노력과 같이 개선ㆍ교정기회를 부여했다는 형식적인 절차만으로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할 소지가 다분하다.

둘째, 평가기준과 평가결과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다투는 것이 실무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기준법 제23조의 해고제한 조항은 물론, 정리해고 제한조항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근본적으로 해고제한 조항의 폐지에 준하는 효과를 몰고 오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적 등에 의해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업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단순분업화 시스템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지거나 협업에 의해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에 대한 업무평가체계가 부합되기 어렵거나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기업에서 시행되는 업무평가의 대부분도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평가가 문제되고 있다. 결국 사용자의 주관적 평가가 광범위하게 용인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러한 제도의 도입은 정리해고나 징계해고를 회피하여 보다 쉽게 해고하기 위해 실적부진자 퇴출프로그램, 후선발령 제도를 악용한 사직종용과 사실상의 구조조정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규제입법의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저성과자 해고사유 도입은 노동인권에 반하는 학대(虐待)해고를 허용하는 것이고 나아가 사용자에 의한 반인권적이고 불평등한 사업장 질서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저성과자 해고사유 도입은 해고 전 조치로서 재교육, 직무나 배치전환, 성과에 따른 임금 하향 조정과 같은 노동자에게 압박적인 근로조건의 변경을 해고 전 개선·교정 기회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기업은 상시적 구조조정의 형태로 정리해고를 회피하는 사직종용을 위해 노동자에게 불편을 야기하는 배치전환(원격지 전직, 근로계약에 없는 전혀 다른 직무로의 배치), 업무실적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으로의 변화(업무강도를 강화하거나 작업시스템 변경), 기업에 필요없는 사람임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나 단순히 괴롭히기 위한 작업지시(저성과자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이직을 권유하거나 교육훈련의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독후감쓰기와 군대식 체력평가, 무의미한 작업을 제한된 기한 내에 처리할 것을 요구, 청소나 허드렛일 시키기) 등 이른바 부당한 인사권 행사를 통한 “직장내 괴롭힘 행위(Power Harassment)”를 광범위하게 행하여왔다.
이러한 인권침해와 괴롭힘에 대해서는 적절한 법적 규제를 마련하고 있지 않아 제 때 이를 중단시키거나 제지하기 어렵다.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된다면 사전개선절차만으로 사용자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것이고, 결국 개별노동자가 모든 불법행위 사실을 입증해야만 할 것이나, 직장 내에서 고립된 노동자가 혼자 증거를 취합하기에는 심각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넷째, 저성과자 해고사유 도입은 근로기준법상 해고제도를 형해화할 뿐만 아니라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제도 역시 무력화시키면서 노동기본권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노동자에 대해 인사고과를 낮게 주거나 정당한 쟁의행위임에도 고과평가시 쟁의행위 참가자에 대한 부정적인 고과를 반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문제되어 왔다. 특히 적대적인 노사관계가 드러나는 복수노조 상황에서 노동조합 간 차별을 위해 사용자는 성과평가에 따른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여 대립관계에 있는 특정 노동조합의 소속조합원들에 대해 저평가ㆍ임금삭감을 통해 불이익을 주고, 노동조합을 탈퇴하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2. 해고규제가 무너진 상태에서 임금 및 근로조건 유연화는 전반적인 노동수준 저하를 초래하는 의도적인 개악이다.

해고규제원칙의 훼손은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야기하므로 전반적인 근로조건 결정 및 인사조치에 있어서 노사간 불평등과 부당한 근로조건 악화를 초래하는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저성과를 이유로 통상해고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은 업무평가 자체가 근로관계의 존속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업무평가의 주체인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준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어서 근로관계의 존속이 사실상 사용자 일방의 주관적 평가나 자의적 호불호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점은 불보듯 뻔한 이치이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조건과 인사상 변경에 있어, 근로자 과반의 동의절차를 완화하여 노사협의회 동의나 개별근로자 동의만으로도 쉽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첫째, 취업규칙 변경절차의 완화는 고용이 불안정해진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도 제거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직무 등이 현행보다 하향 조정될 경우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이른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두고 있다. 올해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기업들은 통상임금에 미달하여 지급해왔던 체불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하면서 제대로 변경 내용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거나 개별 노동자에게 무조건 취업규칙 변경동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였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는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과보호를 고착화시키는 제도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대다수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 중소영세업체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둘째, 연공성을 약화시키고 직무ㆍ성과급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것은 연공급체계를 통해 근속년수가 짧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형성한 후 직무성과급 체계를 더해 근속년수가 긴 노동자들을 저임금화하려는 새로운 저임금구조화이다.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시장은 임금체계랄 것이 없고 사실상 최저임금이 유일한 임금결정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한 사업장 내에 최저임금에 밀집해있는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같은 사업장의 다른 남성 정규직 임금도 점차 저임금화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체 사업장의 60% 이상이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저임금 문제를 해소하려면 노동자들의 적정한 생활임금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절실하다. 그러나 정부는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과나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노사의 자율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은 연공성 임금체계를 무너뜨려 비정규직 저임금 수준으로 임금을 하락시키게 될 것이다.

셋째, 근로시간 유연화를 촉진하는 것은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보전적 효과를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화로 인한 노동시장의 노동력 공급인플레를 초래하여 전체 노동시장 임금결정기준 자체를 저하시킨다.
정부는 노동시간 총량 제한 후 총량범위 내에서 탄력근로, 재택근로, 재량근로 등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즉 정규직 임금이 높다는 분석을 전제로 성과급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상 안전고리를 푸는 정책을 제시한 것인데, 이는 노동시간 총량제한을 핑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를 확장하면 결국 초래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취업규칙 변경의 절차적 제한을 제거하여 성과급 임금체계와 탄력근로 및 재량근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는 명시적으로 현재의 임금수준을 끌어내리는데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을 2주에서 1개월로, 3개월에서 1년으로 단위기간을 늘리는 것은 근로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시간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근무시간의 불안정성을 높이게 된다. 또한 낮은 임금수준이 더욱 고착화되고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보전의 기회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임금보전을 위해 투잡에 뛰어들거나 가사소득의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주부인 여성들이 새롭게 비정규직 저임금 직종에 뛰어들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저임금이 노동시장 전체의 임금수준을 악화시키게 된다.

넷째, 취업규칙 변경절차 완화의 시도는 근로자의 집단적 근로조건의 형성과정에서 근로자의 집단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배제하거나 약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노사관계의 지형을 왜곡하는 문제를 드러낸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데 있어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적으로 단결된 집단의사결정구조를 존중하고, 과반의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수렴체계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마련되는 노동자들의 자주성과 민주성이 건전한 사업장 문화를 형성하는 기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적 근로조건의 결정에 있어 이러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구조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의 파편화하는 것은 집단적 노사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기업이 자의적으로 개별 노동자를 통해 근로조건을 변경하는 것이 수월해질수록 기업은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조건을 형성하기보다는 개별 근로자들을 통해 취업규칙 변경을 종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과의 정상적인 노사관계는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점차 노동조합의 입지를 좁혀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3.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확대는 해고유연화와 저임금구조화로 증가된 외부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새로운 비정규직 수요처를 공급한다.

첫째,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는 기간제 고용불안을 더욱 장기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간제 사용제한이 정규직화가 아닌 외주화를 초래했다며 기간제법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기간제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기간제법의 목적을 더 강하게 실현하는 방안이 정답이 아닐까? 하지만 정부는 2년마다 고용단절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규직화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도모하기 보다는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기간제 사용을 연장하는 방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2009년 100만해고대란설을 유포하며 경총이 요구하는 기간제한 4년 확대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실제 100만 해고대란은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동부가 말한 해고대란은 민간을 선도해야 할 공공기관에서의 연쇄해고들로 나타났다. 마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던 정부가 앞장서서 민간에게 기간제 해고를 유도한 형국이다. 기간제 사용기간의 장기화는 노동자의 생애주기를 볼 때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단절이 2-3차례 반복되면 더 이상 정규직으로 진입할 기회는 없어지게 된다. 이대로라면 결국 영구적인 비정규직화를 고용의 표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둘째, 파견업종과 대상의 확대는 주변업무로의 불법파견을 유인한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 노동분야 주요 정책방향」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과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 일정소득 이상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는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파견이 가능하고 파견기간제한도 완화시킨다는 방안, 농림어업 종사자의 업무를 파견대상업무로 포함시키는 방안 등 파견을 확장하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다.
그간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대에 대한 강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고용노동부가 파견확대를 주장할 때, 항상 따라붙였던 논거는 파견과 외주화는 다르고,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파견으로 유인하는 것이 더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단순히 파견업종의 증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견업종 주변업무로 불법파견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로 나타났다.

셋째,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원청이 하청근로자의 산업안전·복지·훈련 제공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파견·도급 판단기준 명확화’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이 제출한 사내하도급법안을 파견도급 판단기준 지침에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기 위한 꼼수 정책이다. 원청이 산업안전, 복지, 훈련제공(직무교육) 등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이는 파견이거나, 직접고용형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들은 불법파견소송에서 모두 불법파견의 징표로 판단되는 것들이다. 결국 불법파견일수밖에 없는 사내하도급을 합법화시켜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차별시정제도 적용을 담고 있지만 개별화된 차별시정으로는 전체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이끌지 못한다는 점은 이미 수년전 검증되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은 원청회사와 하청회사가 체결하는, 그러나 사실상 원청이 원하는 내용으로 체결되는 ‘사내하도급계약’사항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다. 이는 파견법 제20조 근로자파견계약에 명시할 사항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불법파견을 사실상 사내하도급으로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법파견을 한 사용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여 노동자의 노동법적 권리를 회복할 기회 자체를 차단할 뿐 아니라 파견법이 규제하는 파견대상업무의 제한, 사용기간의 제한이 사리지는 효과, 불법파견에 대한 사용자의 형사처벌 및 과태료 처벌을 면제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결국 파견법상 불법파견의 규율을 무력화시키게 될 것이다. 기간제 사용을 장기화함으로써 기간제 남용을 촉진하고 파견을 확대하고 불법파견을 합법화해주는 것, 이것을 과연 비정규직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

4. 비정규직 고용불안은 전체 노동자 해고규제완화를 통한 비정규직화로, 비정규직 차별은 전체 노동자 임금삭감을 통한 저임금화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노동인권의 하향평준화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규직 임금을 삭감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증가될까. 정부의 입장 어디에도 정규직 임금삭감의 재원이 비정규직 임금상승으로 끌어들일 분명한 유인은 없다. 오히려 정부방안은 정규직 임금을 낮추면서 비정규직 임금차별을 희석할 뿐이다. 반차별원리의 핵심적인 원칙은 하향평준화 금지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문제삼아 전체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은 노동법원리의 근간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분석과 대책은 한마디로 “하향평준화”에 꽂혀 있다.

정부가 정규직만이 특혜를 누리는 것처럼 명명하고 있지만 정작 정규직 과보호를 없애겠다고 손대는 노동법제는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법리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제한이다. 이는 노동자 전체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보장의 핵심이다. 정부가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훼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동일한 노동법적 보호장치가 없어진다. 기간제 노동자나 간접고용 노동자는 기간만료와 업체폐업 등으로 고용불안을 겪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법리의 보호도 잃게 된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간만료만이 아니라 저성과라는 이유로 근로계약기간 중에도 더 쉽게 해고될 수 있다. 고용불안 상태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제한도 없이 성과평가에 따른 임금체계의 도입과 근로조건의 저하에 대항할 방법도 없이 더 가혹한 저임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를 할 때에도 기업은 기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장 일순위에 놓았던 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법 개악 날치기 국회통과가 있었던 1996년 겨울, 노동자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정 재논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기회삼아 정부가 정리해고제도를 통해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법리를 완화하고 파견법을 제정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해고제한법리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정리해고의 칼날은 노동시장에 대량으로 실직자들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휴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간접고용으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비정규직은 가파르게 증가되었다.
무엇보다도 기업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수용하게 하려고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로 구분하면서, 해고대상을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는 전술, 즉‘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을 통해 정리해고를 달성했다. 하지만 곧이어 정규직에게도 정리해고의 칼날이 돌아왔다. 2015년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또 다시‘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립’을 통해 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는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 그 뒤에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정규직 임금삭감과 자의적 해고는 결국 전체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와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불안 및 저임금 악화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현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 과보호 규제는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과는 무관하다. 본질은 자의적 해고와 저임금 순환 고리를 만드는 “노동권 일반에 대한 후퇴”이다. 노동법상 노동인권 보호의 핵심제도들을 무력화시키는 해고-임금-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을, 비정규직 노동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시장 교란책을 비정규직 보호대책인 것처럼 내놓는 기만행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2014년 12월 29일
노동법률단체 일동 (이하 연명)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노총 법률원(총연맹, 금속, 공공운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첨부파일

20141229_노동법률단체_박근혜정부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노동법률단체 의견서.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