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가습기살균제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준 대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 개별 기업이 “안전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2심의 판단을 대법원이 “공동정범의 법리”로 뒤집은 것은 법기술에 불과
대법원은 2024. 12. 26. 화학제품 제조·판매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이 초래할 수 있는 국민의 건강권 침해 문제가 드러난 CMIT/MIT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하였다. 원심처럼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대법원은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회사의 임직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 전부를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 사유는 CMIT/MIT를 주원료로 한 제품과 PHMG를 주원료로 한 제품의 복합사용자에 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다른 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동일·유사하거나 일부 개량한 제품’ 등을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그 제품의 개발·출시에 관여한 사람들 사이에 명시적인 의사의 연락이 없었더라도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에 관한 공동의 인식이나 묵시적인 의사의 연락이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용도나 용법이 동일할 뿐 주원료가 다르거나, 어느 제품이 다른 제품을 개량한 제품이 아니라면 이들 제품 모두에 결함이나 하자가 존재하고 그러한 제품의 결함이나 하자가 누적·결합되어 이들 제품을 모두 사용한 복합사용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정을 제품의 제조·판매를 담당한 임직원이 공동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고 판단하였다.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단은 현대산업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형태에서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무한한 확장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기업은 특정 제품이 유행할 경우 동일 용도의 유사제품들을 제조·판매하여 해당 제품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확대된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피고인들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검토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개량형 제품인지 독자적 제품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특정 제품에 관한 시장확대, 시장내에서 시장점유율 확보전략을 간과한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된 형사사건 등에서 대법원이 확립한 판례법리에 따르면, 과실범의 공동정범은 특정 사안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이 가져올 결과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인정된다면 과실범 상호간 의사연락이 없더라도 인정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과실은 제품 출시 전 수행하도록 요구되는 안전성 검사와 제품 출시 후 관찰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특정 제품이 판매되면서 시장이 형성될 경우 기업들은 유사제품들을 생산판매하여 해당 시장에 참여하게 되어, 시장이 확대되고 소비자들은 확대된 시장에서 제품들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며 기업들은 자사제품의 시장점유율 확대 조치를 통해 시장을 더 확대해간다.
따라서, 자사 제품의 안정성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동일 용법 제품이 판매되는 시장에서 해당 제품의 누적 사용에 따른 인체 위해성은 충분히 예견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며, 공동으로 시장을 형성한 기업 임직원들에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어야만 한다.
대법원의 판단과 같이 오로지 개량형 제품들의 제조판매사 임직원들에게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화학제품의 장기 누적적 인체피해에 대한 과학의 한계를 외면하여 기업의 면책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2024년 11월 30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등록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지원 신청·접수자는 7,977명에 이르고, 이 중 1,883명은 사망하였다. 기업들이 이윤극대화에 매몰되어 안전문제를 등한시한 결과는 국민들이 기업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케미포비아 현상을 가져왔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화학물질은 인간생활과 유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는 하나, 인간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제품의 기획/생산/판매단계에서는 위해성의 요소를 최대한 제어할 수 있는 조치들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며, 이러한 조치들을 강제하는 법제도와 제도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기업의 안전확보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 해태와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이 맞물려 우리 사회에 재앙을 가져왔다. 오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항소심 판결에서는 “피고인들이 제품 출시 전 수행하도록 요구되는 안전성 검사와 제품 출시 후 관찰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인정하였었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와 기업들의 이윤추구에만 매몰된 행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엄정하고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제품 출시 전 안정성 검사를 충분히 실시하고, 제품 출시 후 관찰의무를 이행한 기업 임직원의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불이행한 기업 임직원의 공동책임을 묻는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진행될 서울고등법원의 재판에서는 기업의 시장참여와 시장확대에 따른 책임을 더 명확히 하여 동일 용법의 제품들을 제조·판매한 기업 임직원의 안전성 검사 책임과 사후 관리책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이 기업의 형사책임에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우리는 끝까지 가습기살균제 기업의 임직원에게 합당한 형사책임이 부과될 수 있도록 피해자단체와 연대하여 항소심 재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2024.12.26.
민변 환경보건위원회·환경보건시민센터·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법률센터
M241226[공동성명] 가습기살균제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준 대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