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이익 앞에선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던 에스코넥·아리셀의 탐욕과 국가의 총체적 부실이 낳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범죄자들을 즉각 구속하고 엄중하게 죗값을 물어라
오늘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결과 브리핑은 한편의 비리커넥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국방부에 지체된 납품 물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생산을 밀어붙인 결과가 이번 참사를 야기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지체보상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 생산량을 훨씬 웃도는 무리한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아무런 안전장치, 안전 교육도 없이 생산에 투입된 노동자의 죽음은 결국 돈밖에 모르는 탐욕의 자본에 의해 저질러진 ‘기업 살인’이었다.
이주,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상구로 향하는 출입문을 열 ID카드 한 장 받지 못하고 지문 등록도 해주지 않아, 어쩌면 모두를 살릴 수 있었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결국 차별을 등에 업은 ‘기업 살인’이었다.
여기에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부의 부실이 참사의 원인이다. 국방부 납품 과정에서 위해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적발되어 시정조치 중에도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생산을 감행한 아리셀에 대해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국방부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결국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기업과 정부의 합작으로 발생한 ‘기업 살인’이요 ‘국가 살인’이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의해 관련한 4명에 대해 영장이 청구됐다. 나름 꼼꼼히 들여다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경찰이 살인자 박순관에 대해 직접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채 ‘구체적으로 드러난 증거가 없어 영장을 청구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는 아리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면서 모회사인 에스코넥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관계는 일반적인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를 뛰어넘는다. 부자 관계인 박순관과 박중원, 에스코넥이 아리셀의 지분을 96% 소유한 실질적 지배관계, 에스코넥이 아리셀이 생산한 상품으로 영업을 진행한 점 등의 사실을 고려했다면 오늘의 브리핑은 진실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이후 보강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는지 잘 판단하라.
‘협의회’와 ‘대책위’는 참사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박순관 등의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대로 박순관이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정황을 여기저기서 포착하고 그의 구속수사를 촉구했지만,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이에 소홀했다.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희생자 가족들이 여기저기를 다니며 직접 호소해야 했다.
‘협의회’와 ‘대책위’는 오늘 브리핑을 통해 이번 참사의 원인이 너무 방대함에 놀라고 당황한다. 돈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익추구자들이 저렇게 국가까지 속여가며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목도 했다. 군에 있는 장병과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위험물질에 대한 관리, 감독이 이렇게 허술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철저하게 남은 과정은 정부의 몫이다. 검찰과 법원은 오늘 청구된 영장에 근거해 신속하게 범죄자들을 구속하라. 구속된 범죄자들에게 더욱 철저한 보강 수사를 통해 참사의 진상을 한 점 의혹 없이 드러내라. 이 과정에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에 국가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희생자 가족과 모든 시민에게 사죄하라.
참사가 빚어진 지 61일이 되는 오늘.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된다.
2024년 8월 23일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