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격노가 1년 째 온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3년 7월 31일 오전, 해병대 故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와 함께 남긴 말은 이렇게 알려져 있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
대통령의 격노는 즉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지켜내기 위한 온갖 무리수로 이어졌다. 수사 외압, 이첩 기록 무단 회수, 박정훈 대령 항명죄 수사, 보직해임, 구속영장 청구, 혐의자에서 임성근을 제외한 국방부조사본부의 재이첩, 출국금지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호주대사 임명, 경북경찰청의 임성근 무혐의 처분, 임성근의 구명로비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세력 연루설 제기에 이르기까지 무리한 수중수색을 압박한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실로부터 국방부, 국방부검찰단, 국방부조사본부, 해군, 해병대사령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상북도경찰청, 대구광역시경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외교부,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기관이 쑥대밭이 되었거나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지휘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7월 31일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수사 결과 발표 중단, 이첩 방해, 그로부터 말미암아 8월 2일에 벌어진 국방부검찰단의 이첩 기록 무단 회수와 해병대사령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통한 박정훈 항명죄 입건의 원인이 대통령 격노라 밝힌 이래, 윤석열 정부는 ‘격노’의 실체를 두고 끝도 없는 거짓말 릴레이를 이어왔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이하 국방부, 해병대의 주요 간부들과 대통령실 참모,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언론 등에서 ‘격노는 사실무근’이라며 입을 모아 격노설을 부인해왔다. 그러다 2024년 5월, 공수처가 김계환 사령관 핸드폰에서 VIP 격노 관련 녹취를 확보하자 태도를 돌변하여 ‘대통령 격노가 뭐가 잘못이냐?’는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다시 ‘대통령 격노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드러난 사실들을 덮어놓고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고위공직자들의 거짓말 릴레이로 장식된 뉴스 첫 머리가 날마다 국민들의 하루를 한숨과 분노로 채운 지 오래다.
얼마 전,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들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여 “이 사건의 본질은 박정훈 대령의 항명”이라 규정하며 대통령 격노 사실은 본질이 아니라고 일축한 바 있다. 「군형법」 상 항명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을 때 성립한다. 따라서 항명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명령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서 출발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항명이 본질’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명령의 정당성을 따져보는 것이 본질’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대통령 격노’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이유를 대통령실 스스로 분명히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한 마음으로 진상 규명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압도다수의 국민이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채 상병 특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거부권 남발과 국민의힘의 ‘묻지마 부결’로 두 번이나 좌초되었다. 힘겹게 수사를 이어오던 공수처 역시 적은 수사 인력과 무더기 통신영장 기각,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과 연결된 내부인사 등으로 인해 수사팀이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수사 결과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방부검찰단의 무리한 박정훈 대령 항명 수사를 수사 중인 국방부조사본부의 담당 수사관도 최근 알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되었다. 그 사이 경찰은 임성근 사단장에게 무혐의를 처분했고,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이 전면에 드러나자 국민의힘이 정치 공세를 벌이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진실을 고사시키기 위한 권력집단의 노력이 치밀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제 진실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국회뿐이다. 외압으로부터 1년, 오늘을 기준으로 아직 확보하지 못한 외압 관계자들의 통화기록이 매일매일 소멸될 것이다. 날마다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 선 안된다. 국회는 즉시 국정조사에 착수하고 증거부터 확보해야한다. 특검법 역시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수사를 담보하고 충분한 수사 인력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나 대표성이 결여된 직역단체에 특검 추천권을 넘기자는 일각의 주장에 흔들려선 안 된다.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이들과의 타협으로는 진실을 지킬 수 없다.
지난 23일, 채 상병 유가족이 경북경찰청에 임성근 무혐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이런 일’이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격노로부터 1주년, 지나온 모든 시간이 힘겹지만 진실에 가닿는 시간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비뚤어진 격노가 망가뜨린 세상을 시민의 힘으로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다.
2024. 7. 3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군인권센터・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