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서울특별시의회는 재석의원 60명 중 60명 찬성으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이하 ‘폐지조례안’)을 가결시켰다. 2024년 4월 24일 충청남도의회가 「충청남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시킨지 이틀 만에 같은 행보를 보인 것이다.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는 서울특별시의회의 이번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2022년 8월, 청소년과 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하려는 일부 세력이 ‘폐지조례안’을 주민발안청구 하였는데, 서울시의회 의장 김현기는 2023년 3월 13일 충분한 심사 없이 이를 수리, 발의하여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9명의 서울시민들이 2023년 4월 4일 서울시의회의 위 주민발안청구를 수리, 발의한 행위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60773 사건), 함께 신청한 ‘폐지조례안’의 수리 및 발의 행위에 관한 집행정지신청이 2023년 12월 18일에 인용되었다. 이러한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서울시의회 의장 김현기를 비롯한 국민의힘 시의원들의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이하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는 계속되었다. 2024년 4월 26일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로만 구성된 서울특별시의회의 인권-권익향상 특별위원회 (이하 ‘인권특위’)가 동일한 내용의 ‘폐지조례안’ (의원발의)을 본회의에 회부하여 기어코 일방적으로 통과시켜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안의 경과를 고려할 때 서울특별시의회의 ‘폐지조례안’ 가결이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폐지조례안’의 위법성이 의심되고 학생들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고,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도 ‘서울학생인권조례’의 개정안을 발의하며 의회에 신중한 검토를 요청했으나 서울특별시의회는 이러한 우려를 무시한 채 ‘폐지조례안’ 처리를 강행했다.
그 동안 ‘폐지조례안’을 강행하려 한 이들의 ‘서울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과 교사의 권익이 보호되지 못한다’는 주장은 학생인권조례의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오히려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학교에서 교사의 권익이 보장될 수 있는가?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건설적 논의와 사회적 소통은 거부한 채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로 조례 폐지를 밀어붙여 학생의 인권을 거듭 배제하였다. 소수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목소리에만 편승하여 인권 보호의 가치를 저버린 서울특별시의회 인권특위가 과연 ‘인권 권익 향상’이라는 위원회의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 말고는 내놓을 대안도 없었던 서울특별시의회에게 교육부는 2023년 11월 29일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이라는 자료를 제공했다. 우리 위원회는 위 예시안에 대하여 ‘서울학생인권조례’ 등 전국의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구체적인 인권 항목을 모두 삭제하고,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배포의 중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의회는 위 ‘폐지조례안’을 통과시킨 후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도 이어 가결시켰다. 이 조례안은 교육부가 배포한 예시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교육부 역시 이번 사태의 중요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이번 과정에서 서울특별시의회의 야당 시의원들의 행보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부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계속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고, 며칠 전부터 인권특위가 ‘폐지조례안’을 발의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야당 시의원들이 ‘폐지조례안’ 통과가 기정사실이라도 되는 듯 적극적인 대응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관해서 이들의 무책임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야당 시의원들 또한 이번 사태의 방조자들이고, 이들의 행보를 전략적이라며 옹호해서도 안 된다.
2012년 1월 26일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민 9만7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만들어진, 학생인권운동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 조례였다. 「헌법」과 「교육기본법」 및 「초중등교육법」, 「UN아동권리협약」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을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로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학교 현장의 인권 현실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왔다.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 제고로 체벌과 과도한 두발·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 등이 크게 개선되는 성과가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시켜 나가야 할 제도였지, 결코 폐기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 위원회는 그 소중한 성과와 가능성을 저버린 서울특별시의회의 결정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우리 위원회는’서울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설사 ‘폐지조례안’이 재의결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학생인권조례의 부활과 ‘학생인권법’ 제정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울특별시의회는 오늘 ‘폐지조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시민의 인권 보호라는 의회 본연의 책무를 저버렸다. 총선에서 시민들이 내린 준엄한 심판에도 성찰은 커녕 반인권적 행보를 이어가는 서울특별시의회의 모습은 실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위원회는 인권후퇴를 밀어붙이는 서울특별시의회를 강력히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