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논평]
수용자 전화통화의 권리화를 요구한 국가인권위 권고를 환영한다
4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정시설 경비처우 등급에 따른 전화기 사용제한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 법무부장관에게 △수용자의 재사회화에 필수적인 외부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해 접견, 서신 등 다른 외부교통 수단과 마찬가지로 수용자의 전화통화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여 입법 개선을 추진할 것과, 입법개선 전이라도 교정행정의 목적 및 교정시설의 질서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용자의 재사회화를 위해 중경비처우급(S4급)을 포함한 수용자의 전화사용을 최대한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 단체들은 이번 권고가 교정시설의 외부교통권 증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
2022년 6월 법무부는 ‘수용자 전화 사용 확대 개선 방안’을 시범 운영하면서, 전화통화 방식을 기존 전화실 동행 방식에서 운동장, 작업장 등에 설치된 전화기를 자율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바 있다. 이 방안은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신속한 사용이 가능해진 점, △전화카드 구입 대신 로그인 방식을 적용하여 수용자 편의를 확대한 점 △전화통화 허용 횟수가 늘어난 점 등의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교정시설 관리자의 입장에서도 전화실 동행 시 별도 계호 인력이 필요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법무부의 <2023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수용자 전화사용 건수는 1,294,100건, 1인당 연 평균 사용 건수는 25.3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인 2021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법무부가 ‘수용자 전화 사용 확대 개선 방안’을 2022년 6월부터 시범 운영했음을 감안하면, 이 방안으로 인해 수용자의 전화통화 편의가 증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9월 법무부는 전화통화를 악용한 증거인멸, 피해자에 대한 보복 및 부정사용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경비처우급별 전화통화 횟수를 줄였다. 이에 더해 중경비처우급 수형자의 경우 전화통화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면서 처우상 특히 필요한 경우 소장의 허가에 따라 월 2회 허용하여 전화통화를 사실상 제한했다. 이에 각각 A교도소와 B교도소에 수용된 중경비처우급(S4) 수형자 2명이 외부교통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202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전화통화는 과거와는 달리 △전화카드 대신 수용자 개인별로 전화기에서 로그인을 하면 보관금(영치금)과 연계하여 사용금액이 충전되는 방식이고, △개인정보 제3자 동의서를 제출한 접견지인 등에게만 전화를 걸 수 있으며, △통화 내용은 자동 녹음 후 저장·관리되는 등 전화통화를 통한 증거인멸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복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법무부의 전화통화 제한 조치는 전화통화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과거 방식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전화통화 횟수를 줄인 것으로, 이러한 조치가 증거인멸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복 방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법무부가 중경비처우급(S4) 수형자 전화통화 허가 요건으로 ‘처우상 특히 필요한 경우’라는 엄격한 요건을 제시함에 따라, 가족이 위독하거나 사망하는 극단적인 경우에만 전화통화가 허가될 우려가 있다. 한 피해자는 최근 폐암 수술을 받은 모친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어 대면 접견 대신 전화통화로 안부를 물어왔다. 그는 법무부가 전화통화 제한 조치를 시행한 직후 교도관에게 전화통화 신청을 했으나, “전화사용 허가 나려면 가족이 위독하거나 사망하는 사유 정도 되어야 허가를 해준다”면서 신청을 불허당했다.
법무부의 전화통화 제한 조치는 중경비처우급(S4) 수형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기도 하다. 법무부의 <2023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경비처우급 수형자의 비율은 2013년 6.9%에서 2022년 9.2%로 늘어나 전체 수형자의 10%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에게 전화통화를 허용하면 일률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보복 등 부작용이 커진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부족하다. 법무부의 조치는 개별 수형자에게 전화통화를 통한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중경비처우급(S4) 수형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는 차별적 조치이다.
수용자의 외부교통권은 접견, 편지수수, 전화통화 등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적절히 개방하고 유지함으로써 가족 등 타인과 교류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관계가 인신의 구속으로 완전히 단절되어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장되는 권리이다. 따라서 수형자가 전화통화 등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재사회화라는 형집행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즉, ‘처우상 특히 필요한 경우’에만 전화통화를 보장할 것이 아니라, 교정시설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화통화가 처우에 특히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편 오로지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전화통화가 허용된다면, 개별 수형자들로 하여금 전화를 통한 외부교통권 행사를 스스로 단념하게 하는 ‘위축 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대전고등법원 2022. 7. 7. 선고 2021누13634 판결).
그러나 형집행법 제44조 제1항은 “수용자는 소장의 허가를 받아 교정시설의 외부에 있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전화통화를 수용자의 권리가 아니라 소장의 허가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진정 원인과 같이 법무부가 전화통화의 횟수를 줄이고 중경비처우급 수형자의 전화통화를 원칙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법률의 미비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형집행법은 접견이나 편지수수와 같은 다른 외부교통권의 경우, “수용자는 교정시설의 외부에 있는 사람과 접견할 수 있다”(제41조 제1항), “수용자는 다른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제43조 제1항)라고 규정하여 수용자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접견·편지수수와는 달리 전화통화는 한정된 수의 전화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운동장, 작업장 등에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계호 인력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전화통화도 접견·편지수수와 같이 원칙적으로 수용자의 권리로 인정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전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장거리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고, 그 사용 빈도나 활용도에서 편지를 능가했다. 편지가 주로 종이에 고착화된 문자나 기호를 매개로 의사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택하고 있다면, 전화통화는 육성을 통하여 대화를 나눔으로써 당시의 감정과 기분까지 교환할 수 있으므로 보다 직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해당한다. 또한 편지는 수일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연락을 나누는 수단이지만, 전화는 즉각적으로 상호 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므로 교감형성에 보다 유리하다. 이처럼 전화가 의사소통에서 고유하고도 독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전화통화를 접견·편지수수와 같이 수용자의 권리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충분하다(대전고등법원 2022. 7. 7. 선고 2021누13634 판결). 이번 권고에서 국가인권위원회도 “전화통화도 교정시설의 장의 허가를 전제로 할 것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하고 수용자의 외부교통권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단체들은 법무부가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전화통화를 접견·편지수수와 같이 수용자의 권리로 보장하는 내용으로 형집행법의 개정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법무부는 법 개정 이전이라도 수용자에게 전화통화 횟수를 충분히 보장하고 특히 중경비처우급(S4급)에 대한 전화통화 제한 조치를 취소함으로써 수용자의 외부교통권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4년 4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