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스포츠위] [논평]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피고인들의 책임을 축소한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규탄한다
1. 서울고등법원 형사6-1부(원종찬 박원철 이의영 부장판사)는 2024. 1. 24.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도하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2년,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에게 징역 1년 2월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0노230 판결). 그러나 이는 검찰의 구형(피고인 김기춘 : 징역 7년, 피고인 조윤선: 징역 6년)에도 현저히 미달할 뿐만 아니라, 위 피고인들에게 각 징역 4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던 환송 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보다 훨씬 후퇴한 것이다. 우리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는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 및 이념 등을 이유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 피고인들의 책임을 감경해 준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2. 지난 2020. 1. 30.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2018도2236)을 통해 14개의 직권남용 혐의 중 2가지 혐의에 대해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속 직원들이 한 행위 중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행위 부분에 관하여도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유죄 판단에는 법리오해와 심리 미진의 잘못이 있다”는 이유였다. 위 대법원 판결은 직권남용죄의 인정 범위를 부당히 축소하는 기준을 제시하였고, 사실상 이번 파기환송심의 결론은 어느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문화·예술인들과 건전한 상식을 갖춘 시민들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면밀한 심리를 통해 피고인들의 책임에 상응하는 결론을 내려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3.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진보적 성향을 가졌거나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이들에 대한 사찰·검열·지원배제 등을 자행한 국가의 인권침해 사건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18. 6. 27.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관리 명단 규모는 2만1362명에 달하고, 이중 지원배제 등 실질적 피해를 입은 개인 및 단체가 총 9,273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위원회가 발간한 백서를 기초로 법원은 이 사건 피고인들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였고, 다수의 민사사건에서도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된바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20. 12. 23. 전원재판부 결정(헌법재판소 2020. 12. 23. 선고 2017헌마416 전원재판부 결정)을 통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블랙리스트 작성행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지시로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비서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이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 보유, 이용하는 건 개인정보에 관한 자기 결정권에 중대한 제한에 해당하고, 지원 배제 지시는 문화·예술인들의 특정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인 제한에 해당하며, 특히 “특정 견해나 이념에 근거한 제한은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표현의 자유 제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4. 이처럼 피고인들의 범죄행위는 우리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 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히 반한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예술위 등 직원들의 이 부분 행위(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행위)는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볼 여지도 있으므로, 특별검사는 예술위 등 직원들이 종전에도 문체부에 업무협조나 의견 교환 등의 차원에서 명단을 송부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였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이 부분 공소사실에서 의무없는 일로 특정한 각 명단 송부 행위와 심의 진행 상황 보고 행위가 종전에 한 행위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의 증명을 통하여 이 부분 행위가 의무 없는 일에 해당된다는 점을 증명하였어야 함에도,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위와 같은 점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함으로써, 대법원이 파기환송의 취지가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 아니라 심리미진을 부각하여 판시하였음에도, 심리미진의 위법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반복함에 그쳤다.
예술위 직원 중 1인은 제2 원심 재판(환송 전 항소심에서 병합된 블랙리스트 각 1심 사건을 제 1원심, 제 2원심으로 칭하며 제2 원심 재판은 2017고합102 사건을 말함)에 출석하여 “공모사업 지원자 명단을 세부 장르별 지원신청 현황을 기재한 간단한 통계보고를 문체부에 보고하였는데, 문체부에서는 신청자 전원의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와 작품분석을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하였고, 1,000건 이상 되는 공모사업의 신청자들의 생년월일을 기록하고 작품의 내용까지 분석을 해서 기술한다는 것은 예년에 없었던 일이었다”, “거의 재난과 같았다”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는바, 이는 문체부와 단순히 업무협조나 의견 교환 등의 차원에서 종전과 같이 명단 송부 등의 업무가 진행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진술이다. 특검의 소극적인 공소유지 행태를 지적하기에 앞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기존에 확보된 진술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예술위 등 산하기관 직원의 이 부분 행위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 있었음에도, 특별검사의 증명 부족을 이유로 들어 피고인들의 일부 행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는바, 향후 문체부 등이 정당한 감독권 행사를 벗어나 정치적 성향 등을 이유로 특정 대상자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산하기관의 직원들로 하여금 위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5. 양형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파기환송심은 피고인들에 대한 유리한 정상으로 환송 전 당심의 유죄 부분 중 상당 부분이 무죄로 최종적으로 판단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피고인들에 대한 모든 혐의를 살펴봤을 때, 14개의 직권남용 혐의 중 2가지 혐의에 대한 무죄는 상당부분이 아니라 일부일 뿐이며, 이러한 사정이 헌법질서를 유린한 피고인들에 대한 기존 형량을 반이나 줄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피고인 김기춘은 판결 선고 후 “재상고해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은 블랙리스트 사태의 해결과 재발방지를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온전히 회복하고,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는 가해자들에게 그 책임에 상응하는 적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시민과 문화·예술인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문화국가의 원리 및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누리며 예술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는 향후 대법원의 재상고심 심리 과정을 주목하며, 사법부가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아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연대할 것이다 .
2024. 1. 3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