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0일,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
특별법의 조속한 공포를 염원하는 유가족의 참혹한 몸부림과 절규에도 윤석열 정부는 기어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결정은 참사로 인해 강제 종료된 수많은 삶과 국민의 애도에 대한 명백한 무시이자, 국가의 책임 방기이며, 삼권분립과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를 부정한 행위이다.
459일 전 참사의 현장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한 유가족들이 편히 내어 쉴 수 없는 호흡을 가르며 거리로 나서고, 법안을 양보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삭발을 하고, 15,900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간절함이 별이 된 아이들에게 닿고, 국민들에게 닿고, 국회에 닿고, 마침내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도 닿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단지 진실이 밝혀지기를, 잃어버린 159명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이 모든 간절한 바람을 무색하게 만들고 말았다. 우리는 이 야만의 시대를 어떻게 유가족에게 설명해야 하며,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권리 보호에 주목하고 있는 국제인권사회를 향해 어떻게 대한민국의 인권과 국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특별법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점, 조사위원회의 구성 및 업무에 있어서 공정성 및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점, 조사위원회 업무 범위와 권한이 광범위하여 행정·사법부의 역할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점, 불필요한 조사로 인해 국가 예산 낭비 및 재난관리시스템 운영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점 등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만적이고, 반헌법적이다.
첫째, 특조위 조사시 동행명령권이나, 압수수색영장 청구 의뢰권은 세월호특조위나 사참위에도 모두 있는 권한이다. 과거 세월호특조위나 사참위 출범시에도 이와 비슷한 위헌 주장이 있었으나, 특조위가 활동하는 동안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동행명령을 발령하는 권한은 조사 대상자나 참고인 조사를 위해 불가결한 권한이고, 불응시 과태료만 부과하는 정도로는 영장주의 원칙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자료제출 거부 시 압수, 수색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검사이고, 특조위는 검사에서 영장청구를 의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뿐이다. 만약 검사가 보기에 범죄혐의가 없어서 영장대상이 아니라면 그 이유를 특조위에 밝히고 영장청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검사가 영장청구를 했다고 해도, 법원에서 영장을 발령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압수, 수색영장을 검사에게 청구 의뢰할 수 있는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둘째, 이번에 통과된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원 11인은 여당과 야당이 각 4인을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하여 3인을 추천하도록 하였다.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입법부의 수장이다. 국회의장이 특조위원 추천을 위해 협의할 ‘관련 단체’를 특정하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의견을 전달을 통해 추천하도록 하면 된다. 특조위는 정부의 과오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그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특조위 구성이 정부와 여당에게 유리하지 않아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대통령 재의요구권의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아울러 이태원 특조위는 유가족들에게 직접 추천권이 없다. 세월호 특조위는 총 17인 중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원 3인(상임 1인)의 추천권이 있었고,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총 8인 중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원 3인(상임 1인)의 추천권이 있었다. 반면, 이태원 특별법 원안에 포함되었던 유가족 추천권은 국민의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별법 최종안에서 국회의장이 행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유가족이 추천권을 갖는 것이 편향적이라는 여당의 비판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 ‘유가족 추천’ 몫은 이번 특별법에 없다.
셋째, 경찰 특수본 수사에서는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등 일부 경찰, 지방자치단체 관련자만을 기소했을 뿐이고,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기소도 1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이뤄졌다. 또한 국회 국정조사는 단 28일 동안 제한된 자료와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일부 진술만이 확보됐을 뿐, 출석 자체를 회피한 인사들이나, 거짓 진술, 자료 미제출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왜 이번 참사 전에 예방활동을 하지 못했는지, 당시 인파 밀집을 예견하고서도 인파 안전관리 인력배치에 소홀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왜 구조활동이 지지부진하여 다수 사망으로 이어졌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런 사태의 보다 근본적 원인이 밝혀져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바탕해서만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도 나온다. 현재까지의 대책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보다 철저한 내용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넷째, 정부는 피해지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별도의 범정부 기구를 구성하여 대응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1년 3개월동안 일방적이고 독단적이고 협소한 지원으로 일관해왔다. 유가족과 협의 없는 국가애도기간 지정, 영정과 위패없는 합동분향소 설치 등으로 유가족을 모욕하였다. 정부는 매우 협소한 지원만을 했을 뿐,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고려한 지원은 없었다. 정부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의료비 지원,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지원, 일반 실업자 일자리지원 등의 조치 를 최선의 조치로 둔갑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제 와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할 수 있는가. 유가족이 그토록 호소할 때 정부는 어디있었는가.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 계획은 단지 재의요구권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일 뿐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명확한 법률적 근거도 없이 만들어지는 피해자지원위원회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정부가 피해자지원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한 의지라도 있었다면, 유가족, 생존자, 구조자, 지역주민과 상인 등 피해자들을 모두 포괄하는 지원의 내용이 담긴 특별법을 공포했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자지원을 구분하며 유가족을 모욕하고 있다. 진상규명할 의무도 정부가 이행해야 할 피해자지원의 일환이다. 정부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요구를 무시하고 피해자지원만을 얘기하며 진상규명할 유가족의 권리를 폄훼하고 있다. 정부의 부실하고 미흡한 피해자지원대응도 진상규명의 대상이다. 진상규명없이는 정부가 말하는 실질적인 피해자지원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보상이나 지원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한 치유와 회복이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보상과 지원으로도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유가족과 국민을 모욕하는 몰염치한 행태를 당장 중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경고한다.
오늘 우리는 무너져 내린 민주주의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사라진 대한민국의 참혹한 현실 앞에 목놓아 통곡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모든 것을 바치고 겨울나무로 서 있는 유가족들과 함께 진실의 봄을 마주하는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할 것이다. 무너져 내린 민주주의와 정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국민이므로.
2024. 1. 30.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조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