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이하 “자유권위원회”)는 11월 3일 대한민국의 제5차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규약”) 이행 심의에 따른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자유권위원회는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하여 ‘한국 정부가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기구를 설립하여 진상규명에 임할 것과 상급자를 포함한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와 국회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 내용을 충실하게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2. 지난 10월 19일 및 20일 양일에 걸쳐 진행된 본심의 과정에서,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다중인파운집 참사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사실에 우려를 표했으며,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시점까지 참사의 원인 규명을 위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피해자에게 효과적인 구제가 제공되었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추모 행사에 참여한 유가족 및 시민사회에 대해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3. 이에 대해 정부는 심의 내내 “참사 직후부터 경찰 수사, 검찰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루어졌고, 피해자 지원단을 출범하여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는 명목상 답변으로 일관하며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자유권위원회의 최종견해가 발표된 직후에도 동일한 답변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그 즉시 수용불가의 뜻을 밝혔다.
4. 그러나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정부의 답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참사 1주기가 지난 지금까지 다중인파운집 사고 예방대책의 부재 원인, 개별 희생자들이 받았던 응급조치 내역, 희생자들의 사망 시각 및 이송 경위, 정부 각 기관의 대응 활동 내용 등 참사의 진상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국회에서 채택된 국정조사결과보고서에서도 확인되는데, 해당 보고서는 “정부 기관의 자료제출 미흡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비협조, 짧은 조사기간으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구조적이고 포괄적인 원인과 책임규명도 하지 못했다”라고 한계를 시인하며,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경찰(특수본) 및 검찰에 의한 수사는, 형사책임에 국한된 수사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내재적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윗선에 해당하는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주요 간부들(서울경찰청장, 용산소방서장 등)에 대한 기소 역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또한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연내에 판결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근거 없이 수사와 조사가 충분했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10.29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과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더 나아가,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피해자 지원 대책은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짐에 따라 피해자 회복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을 비롯한 생존자, 상인 등 국내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정부 지원의 부재와 미흡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26명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외국인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정보나 지원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족을 제대로 지원하고 있다는 정부의 답변은 그 자체로 허위이다.
5. 자유권위원회는 최종견해에서 2018년 발표한 ‘생명권(right to life)’에 대한 일반 논평 제36호를 근거로 “① 진실을 규명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기구를 설립하고 ② 고위직을 포함한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보장하며 ③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적절한 제재를 가하고 ④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적절한 배상과 추모를 제공하고 ⑤ 재발 방지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권고하였다. 이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자유권 규약의 핵심 권리인 생명권 침해와 직결되는 사안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사회적 재난 참사에서 국가의 생명권 보호 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6. 지난 1년간 정부는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대한 요구를 정치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왔다. 이로 인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 및 피해자 지원 의무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자유권위원회의 최종견해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책임자 처벌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로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는 일이 결코 아니다.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추모와 회복은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른 자유권위원회의 권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유가족의 정당한 요구를 정치적 프레임에 가두려는 일체의 시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7. 민변은 국회와 정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강력하게 촉구한다. 국회는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10ㆍ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 역시 이에 협조하여, 독립적 조사기구의 설립과 그 원활한 활동 보장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노력하라.
2023. 11. 6.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조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