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간토 대학살 100주기를 맞이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한다.
일본 간토지방에서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의 비극이 일어난지 100주기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0만 명 이상이고, 200만 여명이 집을 잃는 큰 피해를 야기했다.
여기까지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였다. 그 다음부터 더 큰 피해이자 비극이 발생했다.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재난의 참사로 인한 피해자들이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던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빌미로 계엄령을 발동했다.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발동하면서 군대를 출동시켰다. 군대와 경찰, 그리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을 조직하고,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희생자 규모가 6,000명을 넘어간다는 기록도 있고, 2만 여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살이라는 중대 범죄이자 비극이 발생한 지 100년이 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희생자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의 태도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학살’의 국가책임을 줄곧 부인해왔다. 심지어 일본변호사연합회가 2003년경 이미 일본 정부에 대해 ‘국가책임 인정’,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배보상’, ‘재발방지를 위해 조치할 것’ 등을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철저히 외면해왔다. 일본 정부는 반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과거사를 은폐하는 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는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이하여, 이제라도 일본 정부가 이 비극적인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책무를 다하기를 촉구한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학살’ 당시 재일 조선인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학살을 당했는지, 희생자들의 유해는 어디에 있는지 등 학살피해자들과 관련된 모든 조사자료를 공개하고,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나아가 ‘간토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재일동포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 또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 정부 외교부 대변인은 8월 31일, 관련 입장을 요구받자 “정부는 일본 측에 진상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한 바 있다”면서 “앞으로도 정부 차원의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사실상 아무런 계획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이 비극적인 대학살에 대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 항의하거나 규탄한 적이 없다. 진상규명이나 희생자 지원에도 전혀 나서지 않고 방치해왔다.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정부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외면과 역사 왜곡을 규탄해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 차원에서라도 희생자 규모와 상황을 파악하고, 추모와 유족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모임은 ‘간토대학살’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국내외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활동할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위해 필요한 법률적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3. 9.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조 영 선
[민변][성명] 간토 대학살 100주기를 맞이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촉구한다_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