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한다. 정부·여당은 거부권 운운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 대책을 마련하라!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쟁의행위로 인한 개별 조합원들의 손해배상책임을 귀책사유 등에 따라 정하도록 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 되어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다.
노조법 개정안의 내용은 제2조 제2호에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라는 단서 조항을 신설하고, 제2조 제5호의 ‘근로조건의 결정’을 ‘근로조건’으로 바꾸었으며, 제3조 제2항에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 같은 조 제3항에 ‘「신원보증법」 6조에도 불구하고 신원보증인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신설한 것이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법안 공청회와 4차례 법안심사소위를 거치는 등 조정과 타협의 산물로,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노동쟁의 대상 확대 등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진짜 사장이 교섭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지난 20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이자 간절한 투쟁의 성과다.
법원의 판단 역시 노조법 개정안과 궤를 같이한다.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이 집배점 택배기사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의 사용자에 해당하고,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23. 1. 12. 선고 2021구합71748). 또 대법원은 최근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사건 상고심에서 쟁의행위 책임은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에 있으며, 개별 노동자들의 손해배상책임은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사건).
노조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역시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 지난 1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조법 2조 개정에 시민 다수가 찬성하고, 3조 개정도 찬성 의견이 과반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12월 ‘노동3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국회의장에 표명한 바 있다.
노조법 개정은 국제기준에 맞게 국내법을 개정해야 할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이미 한국정부에 하청노동자와 파견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보호를 강화해야 하고, ‘고용관계’에 근거하지 않고 누구라도 단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며, 노동자의 이해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였으며,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하고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고, 개별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한도를 둘 것을 권고한 바 있다. ILO 제87호 협약과 제98호 협약을 비준하고 발효한 지금, 위 권고들에 걸맞게 노조법을 개정할 책무가 정부에게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노조법 개정안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여당은 충분한 논의 끝에 노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향후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국회 논의과정, 사회적 공감대, 사법부의 판단, 국제기준 등을 모두 무시하고, 재벌·대기업의 대변자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처사에 불과하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계가 뭔가 부당한 것을 요구하고 사용자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화하는 것이고, 권한을 행사하여 이윤을 추구한 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에 모임은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막무가내로 저지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법안 처리 절차가 제대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속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한다. 또 정부와 여당은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번 법개정을 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최소한의 권리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에 책임을 다할 것을 함께 촉구한다.
2023. 6. 26.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조 영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