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
어떻게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3·1구국선언 변론 중, 황인철 변호사 –
– 고 황인철(세바스티아노) 변호사 30주기에 부쳐 –
황인철 변호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황변호사는 로마황제의 비리를 지적하다가 순교한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이름을 따 그의 세례명으로 삼으셨는데, 황변호사는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삶처럼 독재정권과 불의에 맞서 싸우시다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순교일인 1월 20일, 향년 53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황인철 변호사의 부고를 접한 김수환 추기경은 “황인철 변호사의 삶은 사랑과 정의를 증거 하는 여정이었으며, 황변호사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사회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그 바탕에 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라 추모하였습니다. 또, 당시 신문은 “권력에 맞선 ‘인권 변호‘ 버팀목”, “암울했던 시대의 ‘인권 등불‘”이라 황변호사님을 칭하며 너무 빠른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민청학련사건, 지학순주교구속사건, 김지하시인반공법위반사건, 3·1구국선언사건. 동아·조선투위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한승헌필화사건, 동일방직노동사건, YH사건,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원풍모방사건, 강원대학교성조기방화사건, 오송회조작간첩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서울미문화원사건, 건국대사건, 부천서성고문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임수경·문규현방북사건, 윤석양양심선언사건 등 군사독재정권 시절 황변호사께서 자청하여 변호를 맡으신 사건명만 보아도 시대를 알 수 있고 황변호사께서 살다 가신 삶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황인철 변호사는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등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1세대 인권변호사로 정권, 경찰, 검찰, 정보기관, 법원의 부당한 법집행과 판결에 억눌린 이들을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황변호사는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창립을 주도하였고 대한변협 인권위원,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간사를 맡아 민주화운동과 인권활동을 이끄는 것은 물론, 자폐아들을 위한 계명복지회를 설립하고 계간 문학과지성 창간·창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황인철 변호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황인철 변호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로 살릴 수 있었던 소중한 생명들이 참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전 70년을 맞이하는 2023년에도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겠다는 권력이 존재합니다. 국가공권력과 정보기관이 다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역사를 후퇴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무너질 위기의 시절이기에, 우리는 ‘황인철 변호사’, ‘세바스티아노 형제’가 더 그립습니다. 황인철(세바스티아노) 변호사 30주기에 부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황인철 변호사의 선한 의지와 꺾이지 않는 신념, 따뜻한 시선과 깊은 배려를 기억하며 따르겠다는 약속으로 추모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황인철 변호사님의 평안한 안식과 남아 계신 가족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2023년 1월 20일
황인철(세바스티아노) 변호사 30주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