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단체][성명]
정부는 기본권 침해하는 업무개시명령 발동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화물연대와의 대화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라.
2022년 6월 총파업 합의 이행 및 안전운임제 개악 반대, 일몰제 폐지, 적용 차종 및 품목 확대 등을 주장하며 11월 24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업무개시명령’을 언급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지난 6월 합의의 불성실한 이행에 대한 책임은 모른 체하고, 국민에게 업무를 ‘강제’하겠다는 입장부터 밝히고 나서는 정부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업무개시명령은 태초부터 화물연대를 겨냥하고서 2004년 도입된, 비견할 만한 대상을 찾기 어려운 독소적인 제도다.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정부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화물운수종사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관련 법·제도 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업무개시명령제도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도입하여 화물연대의 힘을 꺾고자 하였다. 도입 당시 사회 각계에서는 그 위헌성을 지적하는 다수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러한 첨예한 논란과 발동의 실무상 비용 등 여러 난점으로 인해, 정부는 도입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이를 실제로는 발동하지 않으면서 화물연대가 파업을 할 때마다 ‘업무개시명령을 검토 중’이라며 위협을 가하는 용도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 왔다.
전시근로동원법이 폐지된 이후 모든 국민에게 근로를 일반적으로 강제하는 법률은 우리나라에 부존재한다. 정반대로, 우리 법체계의 명확한 정신은 강제노역과(헌법 제12조 제1항)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것이다(근로기준법 제7조, ILO 제29호 협약). 그러므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무기로 삼아 화물운수종사자에게 정부의 명령에 따른 업무수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전사회적으로 극복하고 지양해 온, 국민경제와 국민의 노동에 관한 권위주의적인 시각에 사로잡힌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며 위헌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 형사처벌이 예정돼 있음에도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은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점철되어 있다.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국가경제”, “심각한 위기”, “상당한 이유”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령을 내리는 자의 의사에 의해 순간마다 임의적으로 판단될 우려가 농후한 반면, 명령을 받는 당사자는 그 명령이 과연 법의 요건을 충족한 것인지, 어떠한 사정이 명령에 불응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인지를 도무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 내몰리게 되고 만다.
둘째, 화물운수종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 다른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화물운수종사자는 직업의 자유를 누리며, 여기에는 직업을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자유 및 영업의 자유가 포함된다. 화물연대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로 지금까지 정부는 화물노동자에 대해 요지부동으로 ‘개인사업자’, ‘자영업자’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는바, 개인사업자, 자영업자에게 업무 수행을 강제하겠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의 주장과도 모순이다. 또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직업수행의 자유, 일반적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의사에 반하는 업무의 수행을 공권력이 강제한다는 것은 기본권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행위이다. 백 번을 양보하더라도 이러한 제도를 검토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이 덜한 다른 방편들을 충분히 시도해본 이후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서자마자 업무개시명령의 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헌법적 의무를 짐에도(헌법 제10조 후문), 지금의 정부는 그 의무를 손쉽게 저버리고, 불만을 제기하면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로 잠재우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셋째, ILO(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에 반한다. 우리나라가 비준하여 현행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제98호)에 대해 ILO는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자영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worker)에게 협약상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밝혀온 바 있다.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단체를 결성하여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위 기본협약들이 보장하려는 권리의 요체인바, 업무개시명령은 이를 정면으로 억압한다. 또한 강제노동 협약(제29호)은 금지되는 강제노동을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형사적, 행정적 제재를 모두 수반하는 업무개시명령의 위하에 의한 비자발적인 업무 수행은 위 협약이 금지하는 강제노동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한 강제노동 폐지 협약(제105호)은 명시적으로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동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수단”, “노동규율의 수단”,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로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통한 강제노동의 구현은 위 두 협약은 물론이거니와 민주주의 사회의 정신 자체가 용인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업무개시명령이 대화와 교섭에 앞서는 것은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어불성설이다. 전국의 화물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송달하겠다는 것부터가 심각한 비용과 시간의 낭비다. 화물연대와의 대화와 교섭이라는 타당한 해결방안이 있음에도 제한된 행정력과 재원을 업무개시명령에 쏟아붓고야 만다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주체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정부 그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업무개시명령 도입 논의에 부쳐 노동법률가들은 “지입차주들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사고이고,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도 명백히 배치되는 언동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오로지 ‘경제’라는 목표에 종속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라고 19년 전에 이미 소리 높여 외쳤던 바 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명, 2003. 8. 30.). 그러니 19년이 지난 오늘 국민의 목소리를 강제노동으로 다스리려 하는 정부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인지를 재차 물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본권 침해하는 업무개시명령 발동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화물연대와의 대화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라.
2022. 11. 28.(월)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서비스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