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법원과 정부는 법원 전산운영직 노동자들의 간접고용 폐해를 적극 시정하라
사법부 역사상 최초의 하청 노동자 파업 돌입이 예고되었다. 법원ㆍ등기소에서 전산장비 유지 보수 및 법원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법전산운영자지부(지부장 최근배)와 전국법원 등기전산지회(지회장 김창우, 이하 각 노동조합)는 정규직 전환과 인건비 삭감 반대 및 부당한 업무 외 지시 중단을 요구하며 2022. 7. 1.과 7. 4. 각 파업 투쟁을 예고하였다.
법원의 전산운영 외주화는 1997년에 시작되어 협력업체만 변경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업무용 컴퓨터ㆍ프린터ㆍ스캐너ㆍ무인민원발급기ㆍ법정 내 실물화상기ㆍ프로젝터까지 법원에서 접할 수 있는 전산장비를 유지ㆍ보수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현장에서 ‘전산운영자’라고 불리는 전산유지보수직 노동자들과 등기전산직 노동자는 전국 각급 법원에 총 160명에 달한다. 법원에는 이들을 포함하여 판결서 비실명화, 전자소송 스캔, 가족관계등록 정비, 전화상담 등 외주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가 800명 넘게 근무하고 있다.
법원은 지금까지 실질적 사용자성에 관해 많은 선례를 제시하여 왔다. 대법원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고(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원고용주의 실체가 없는 반면 피고용인이 제3자에게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제공을 하고 임금을 실질적으로 지급받으면 제3자와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였으며(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제3자의 상당한 지휘ㆍ명령과 사업 편입 여부 등 근로관계의 실질을 살펴 위장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그러나 법원에서 근무하는 전산노동자들의 현실은 법원이 내린 판결의 금문자와는 거리가 멀다. 전산노동자들은 법원공무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혼재 근무하고, 재판사무시스템 사용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용역업체 소속이면서도 신속하고 원활한 재판사무유지를 위해 법원공무원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왔고, 일일 근무현황을 보고하고 확인받았다. 본연의 용역업무가 아님에도 시장 단가보다 저렴한 단가로 컴퓨터ㆍ프린터 설치업무를 지시받았다고 주장한다. 법원 행사 및 국정감사 시에 전산장비 유지를 위해 대기하도록 지시받았고, 심지어 사적인 컴퓨터 설치 요구까지 받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지휘ㆍ통제의 수단으로 ‘고객 만족도 조사’와 ‘친절 교육 수료’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전산노동자들은 법원행정처가 최초 용역대가로 산정한 사업비 예산액에 ‘할인율’을 적용하여 용역 입찰단가를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삭감 집행하였고, 언론보도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2022년부터는 33명분의 사업비를 17명분이라고 수정하였으며, 2022년 사업예산이 인상 편성되었음에도 임금인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18년째 근무 중인 등기전산직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2020년 187만원, 2021년 201만원 수준이고, 25년차 법원전산직 노동자의 임금도 평균 25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개선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 법원 역시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를 구성하여 미화ㆍ시설 등 부문에서 정규직 전환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전산운영직 노동자들은 협의기구 위원으로 참여하지 못했고, ‘민간의 고도의 전문성, 시설ㆍ장비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끝내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동시에 법원은 2019년 정규직 전환계획에서 ‘향후 기능조정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용역업체가 변경되고 고졸 신입사원을 뽑아 충원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고도의 전문성’이 구체적으로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의 정보화와 전산화는 모든 국민이 바라는 바이며, 법치주의의 신속한 집행에 기여한다. 이러한 법원의 등기행정과 재판사무에 필수적인 전산장비를 유지ㆍ보수하는 노동자들은 법원공무원의 직접적인 지휘ㆍ명령과 근태관리 하에서 근로함에도 불구하고,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열악한 임금 수준과 고용승계시 초기화되는 연차휴가를 감내하고 있다. 전세계가 배우러 온다는 대한민국 법원의 선진 IT 법정과 등기소 뒤에는 전산운영직 노동자들의 눈물과 그림자가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들어 노동실태조사 및 근로감독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권력 간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하고, 사법권 행사가 아닌 이 사건 근로관계에 관해서는 권력 분립의 원칙이 적용되기 어려움을 확인하여야 한다.
법원은 대한민국헌법이 부여한 사법권을 행사하여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고, 그 어느 곳보다도 공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에 관한 기대를 요구받고 있다. 전산운영직 노동자들도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으며, 법원이 판결에서 확인하여 온 간접고용의 폐해에서 벗어나고 권익과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의 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전산운영직 노동자들의 파업 예고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자 권리 제고를 위한 것임을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법원은 전산운영직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정보공개를 회신하고 노동조합법상 쟁의권을 보장ㆍ존중하여야 한다.
- 법원은 전산운영직 노동자에 관하여 노동조건의 실질적인 향상 대책을 협의하고, 정규직 전환의 기준과 조건에 관하여 노ㆍ사 교섭에 적극적으로 임하여야 한다.
-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삼권분립과 무관함을 확인하고, 법률상ㆍ정책상 직무를 다하라.
2022. 7. 1.(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이 용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