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주민의 참정권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 김은혜 후보의 중국인 투표권 축소 주장을 규탄한다 –
국민의힘 소속 경기도지사 후보 김은혜 국회의원(이하 김은혜 후보)은 2022. 4. 14.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중국에서 우리 국민이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정하므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투표권을 제한하고 현행법에 규정된 지방선거 투표권 요건인 ‘영주권 취득 후 3년 경과’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모임은 지방선거의 외국인 참정권을 주민의 인권이 아닌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김은혜 후보의 발언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한국은 2005년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2006. 5. 31. 실시된 지방선거부터 영주권을 취득하고 3년 이상 거주한 19세 이상의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주민소환권, 2009년에는 주민투표권과 조례제정개폐청구권, 2012년에는 지방선거 선거운동의 자유, 2022년에는 「지방자치법」상 주민감사청구권과 주민소송권, 청원권을 외국인에게도 인정하였다.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재일동포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한국이 먼저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긴 했지만, 위와 같이 외국인 주민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계속 확대해온 역사는 단순히 상호주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헌법상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이념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 지방공동체에서 공존하는 외국인 주민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현재까지 일부 지역에 한해 외국인의 주민투표권만을 인정하고 있고,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게 재일동포에게 지방 참정권을 보장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하였으며, 일본 국내에서도 외국인 투표권에 대한 자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한국을 포함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인정하는 국가도 최소 38개국에 이른다. 이들 국가들은 단순한 상호주의 원리를 넘어, 주변 국가와의 역사적 관계, 지역공동체의 구성 형태, 외국인에 대한 포용 정책 수준 등을 고려하여 외국인 참정권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 인권법 또한 상호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차별금지 원칙, 내외국인 평등주의를 강조하면서, 국가가 다양한 영역에서 이주민에게 내국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를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외국인의 투표권 보장은 이와 같이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조치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혜 후보는 오로지 상호주의를 이유로 투표권을 갖는 외국인의 대부분이 중국 국적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이들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호주의에 따라 외국인의 투표권을 제한한다면 중국 외에도 한국 국적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 외국 국적자들의 투표권도 박탈해야 할 것인데, 왜 유독 중국 국적자만을 언급하는 것인지, 이러한 입법 조치가 과연 가능하다고 믿는지 묻고 싶다. 또한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에게 자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물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한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국가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 없는 자에 대한 징벌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조치를 두고 ‘경기도민의 이익을 지키는’ 행위라고 한 것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주민들과 다른 주민들을 편가르는 전형적인 혐오 선동 방식이다.
중국 국적자가 지방선거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을 두고 반중 정서에 기반한 혐오 선동을 일삼은 것은 김은혜 후보가 처음이 아니다. 2020년과 2021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중국인 영주권자 및 외국인의 투표권을 박탈하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정부가 이에 대해 답변한 사실이 있고, 국민의힘 소속 태영호, 정우택 국회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중국인 영주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문제 삼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들은 한국 내 영주권자 중 약 80%가 ‘외국 국적의 동포’ 또는 ‘한국 국민의 가족 구성원’ 으로서 이미 한국인들과 큰 이질감이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지방선거 유권자 중 외국인의 비율은 전체의 0.35%에 불과하며 이들의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외국인 유권자에 대한 선거 안내도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외국인 주민을 위한 지방선거 공약도 매우 부족한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양한 이주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배제의 논리가 아닌 포용과 공존의 논리를 모색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을 저버린 정치인들을 언제까지 계속 보아야 하는가.
이미 많은 연구자들은 지방선거 투표권의 요건인 ‘영주권 획득 후 3년 이상 거주’ 라는 요건을 완화하고, 투표권이 인정되는 외국인에게는 피선거권을 부여하며, 외국인의 정당활동을 허용하는 등 외국인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한 바 있다(별지 관련 논문 참조).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이와 같이 한국 사회의 각종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는 외국인들의 권리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모임은 이러한 문제 의식은 도외시한 채 최근 여성, 난민, 외국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으려는 김은혜 후보를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정치권은 위와 같은 혐오주의자들의 행위를 분명하게 규제하고, 이번 지방선거를 주민들의 삶의 질과 다양성 확보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2년 4월 25일
KIN(지구촌동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별지] 관련 논문
- 김광재 “다문화사회와 민주주의의 실현방안 – 외국인의 정치적 권리의 확대를 중심으로 -” 법조 68.4 pp.42-76 (2019) : 42.
- 임희선, 김경제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일 고찰 -지방자치선거와 이주민을 중심으로-” 원광법학 33.1 pp.129-151 (2017) : 129
- 정상기 “국내체류외국인의 참정권과 법적 보호” 과학기술법연구 24.1 pp.221-261 (2018) :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