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보수사기관의 위헌적인 통신자료수집에 대한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1.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기자, 야당 국회의원 등에 대하여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수사 건수에 비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고, 특정인을 반복적으로 조회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는데, 이는 비단 공수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 검찰, 국정원, 기무사 등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조회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법 개정의 목소리를 높여 온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 모임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반복적인 조회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는 양의 통신자료조회를 하고 있는 검찰 총장 출신의 제1야당 대통령 후보가 이를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번 공론화가 내용 없는 정쟁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2.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조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같은 법 제83조 제3항). 이러한 ‘통신자료제공요청’은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으로 하도록 되어 있고 서면으로 요청할 수 없는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서면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도 요청할 수 있다(같은 법 제83조 제4항). 즉 수사기관이 SKT, KT, LG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사항을 기재한 서류 한 장만 보내면 해당 이용자의 이름, 아이디 뿐만 아니라 주소와 고유식별정보인 주민등록번호까지도 어떠한 통제 장치 없이 그대로 수사기관으로 회신된다는 것이다.
3.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대다수 국민이 휴대폰, 인터넷 등 통신기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사기관이 요청만 하면 어떠한 사전적 제한이나, 사후적 감시 내지 통제없이 언제든지 매우 쉽게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는 강제처분을 할 때에는 반드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의 영장주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심각히 침해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이재정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통신자료제공에도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제공을 받은 이후에는 수사기관이 해당 대상자에게 이를 통지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두도록 하였다. 21대 국회에도 관련한 개정안들(박광온의원안, 강민국의원안, 류성걸의원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다.
4. 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통신자료수집제도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 보기 위하여 2016. 5. 18.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제기하였으나 5년이 넘도록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모두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히 침해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이나 제도개선에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인권법은 프라이버시권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의 보호 및 충족의무로서 국가에 의한 정보수집 등에 대한 안전장치를 구축할 것을 국가의 법적 의무로 보고 있다. 위헌성이 명백한 통신자료수집제도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과 무분별한 통신자료수집을 방치하고 있는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법적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5.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자료’는 통신비밀보호법상의 ‘통신사실확인자료’(상대방 전화번호, 통화시간, 인터넷 로그 기록, 기지국·접속지 추적자료 등)와 달리 단순한 정보들이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가입자의 구체적인 인적사항, 아이디, 가입해지일 등의 개인정보가 담긴 통신자료는 다른 통신의 내용이나 자료들과 결합될 경우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통신사실확인자료와 거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따라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아무런 사전적·사후적 제한없이 통신자료를 조회할 수 있게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관련 조항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개정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요청사유를 세부적으로 정하고, ‘재판, 수사, 형의 집행, 국가안전 위해 방지’라는 추상적 요건 대신 범죄의 유형과 경중에 따른 구체적인 정보수집의 한계와 범위를 정하며, 사전적으로는 법원의 통제를 받고 사후적으로는 대상자에게 통지를 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22년 1월 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