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위·여성위][공동성명] 반대신문권 보장이라는 미명하에 형사사법절차 내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19년 전으로 퇴행시킨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2021-12-24 113

[공동성명]

반대신문권 보장이라는 미명하에 형사사법절차 내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19년 전으로 퇴행시킨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1. 헌법재판소는 어제 2021년 12월 23일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녹화된 영상물에 관하여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인 등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된 경우에도 증거로 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30조 제6항(이하 ‘해당 특례조항’이라 함)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하였다. 해당 특례조항은 피해 아동청소년의 진술이 수록된 영상녹화물에 원진술자(피해 아동청소년)의 법정진술 없이도 증거능력이 부여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으로서, 헌법 제27조가 정한 재판청구권, 그중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반대신문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취지이다.

 

2. 그러나 해당 특례조항은 피고인의 피해아동에 대한 반대신문을 금지하고자 하는 조항이 아니다. 전문법칙을 분별없이 적용하여 일률적으로 원진술자인 피해아동을 법정에 출석시켜 진술하도록 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피고인의 형사절차상 권리의 보장과 성폭력범죄 피해아동의 보호 사이의 조화를 도모한 규정일 뿐이다. 해당 특례조항에 따라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석한 신뢰관계인이 성립인정에 관한 진술을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은 그 신뢰관계인을 통하여 영상녹화 당시의 피해아동의 진술 태도, 진술의 경위와 내용 등 영상녹화물에 수록된 진술의 증거능력 및 증명력 판단에 필요한 사정들을 1차적으로 탄핵할 수 있는 대체적인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해당 특례조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원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해아동의 보호를 포함한 제반 사정을 고려하고 관련된 이익을 비교하여 형사소송법 제294조, 제295조에 따라 피해아동을 피고인 및 변호인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증인으로 소환하여 신문할 수 있고, 이 경우 피고인 및 변호인은 참여권과 신문권 등이 보장된다. 또한 성폭력범죄 피해아동의 경우, 거칠고 날선 법정에서의 반대신문보다는 사건 초기의 생생한 기억 속에서 이루어진 진술을 영상녹화의 방법으로 왜곡 없이 온전하게 보전한 다음 이를 아동진술전문가나 심리학자 등으로 하여금 전문적·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게 하여 그 신빙성을 검증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즉 피고인에게는 진술 당시 동석한 신뢰관계인에 대한 신문이나 진술 과정을 그대로 녹화한 영상녹화물에 대한 전문적, 과학적 방법에 의한 탄핵을 통하여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대체수단이 존재하고, 법원의 개별적 판단에 따라 피해아동에 대한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특례조항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기본권 제한입법이 갖추어야 할 피해최소성 및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위배되거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3. 이번 결정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UN 아동권리협약제12조에서는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아동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UN 경제사회이사회의 ‘아동 범죄 피해자와 증인 관련 문제에 대한 사법 지침’에서는 제26, 29, 30조에서 아동 피해자와 증인은 사법절차 내에 사생활을 보호받고 사법절차에서 발생하는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인권법의 원칙은 아동 성폭력피해자가 자신의 의사를 온전하게 표현하고 그 견해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여 UN 아동권리협약 제3조에 규정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이러한 아동의 권리에 대한 심사와 숙고를 반드시 거쳤어야 했다.

 

4. 또한 이번 헌재 결정은 아동 ․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특성을 간과하고 고통을 외면한 결과이다. 우리 헌법은 공정하고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피고인의 반대신문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적법절차, 재판청구권 및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일 뿐 제한이 불가능한 절대적 기본권은 아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 보장만큼이나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이를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도 중요하다. 특히 헌법은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보장하고 피해자 보호도 헌법적 가치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범죄피해자는 그동안 소송의 객체로 피해자가 사법절차에서 겪는 고통은 외면되어 왔고, 특히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의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함에도 피해자의 안전한 진술이 형사소송절차 안에서 온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조차 포기하는 피해자가 많았다. 이러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피해자가 반복적인 조사와 증언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으로 2003. 12. 11. 처음으로 입법된 것이 바로 해당 특례조항이다. 미성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우리 사회의 결단이었고, 해당 특례조항이 있었기에 현행 형사사법체계 내 열악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는 주변의 진술환경과 지지적 분위기 등의 다양한 조력을 통하여 피해진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헌법재판소가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형사사법절차 내 인권상황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무려 19년 전으로 되돌리는 대단히 퇴행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5.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헌법재판소가 이번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공개변론이나 이해관계단체의 의견조회도 하지 않았으며, 변형결정을 통한 입법적 논의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바로 단순위헌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와 진술을 위축시키고 사법절차 안에서 추가적인 2차 피해를 야기할 우려가 대단히 크다. 앞으로 이뤄지는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성폭력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을 그대로는 증거로 쓰지 못하며,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선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이 수사기관뿐 아니라 1, 2심 법정에서 적어도 1차례 피해를 진술해야 할 수 있다. 법정에서 피고인측의 반대신문도 받아야 한다. 게다가 해당 특례조항은 성폭력 사건 뿐 아니라 아동학대 사건에도 준용되기에 이번 단순위헌 결정으로 인한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설령 다수의견의 입장대로 해당 특례조항에 헌법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 규정이 실무에서 기능하고 있는 부분을 고려해 변형결정 등을 통해 실무상 혼란을 줄이면서 입법을 통한 개선을 촉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아동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에게 끼칠 이와 같은 부정적인 파급력과 결정의 함의를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공개변론이나 이해관계단체의 의견조회도 없이 해당 특례조항의 즉각적인 실효를 가져오는 단순위헌 결정을 하였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6.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구현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헌법상 재판절차진술권의 주체인 형사피해자가 형사소송절차에서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공익 또한 매우 중대하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해당 특례조항이 전문법칙의 예외를 정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력화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조차 무너뜨리고 외면한 것이다. 이번 단순위헌 결정으로 우리 사회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은 당장 19년 전으로 돌아가서 법정에 나와 고통스러운 피해사실을 진술해야 하는 등 법적 보호의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국회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아동 인권 보호를 위한 후속 입법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또 입법 전이라도 법원과 검찰은 개별 사건들에서 반대신문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현행 제도를 정비하고 수사 및 재판 실무를 점검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20211224일 금요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여성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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