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조속한 법 제정을 촉구한다!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 발의를 뜨겁고 절박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아동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내겠다는 국회의 획기적 결단이 본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에 담겨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법의 제정에 따른 진상조사가 추호의 차질 없이 수행되길 바라마지 않으며, 방대하고 정치한 대책이 도출되기를 바란다. 온 나라가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13일, 서울 양천구에서 생후 16개월 아동이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사망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으나 구조되지 못하고 지속적인 학대에 노출된 결과였다. 전 국민적인 공분이 일자 총 20건이 넘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아동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긴급 대책과 법안을 발표해 응답했다. 하지만 한 사건에 대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또 다른 참혹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덮쳐오는 일이 거듭되고 있다.
양천 사건 발생 한 달 전, 인천에서는 돌봄 공백이 초래한 방임 중 일어난 화재로 형제 중 한 아동이 사망했다. 2020년 6월 천안에서는 9살 아동이 여행용 트렁크 가방 안에 약 13시간 이상 감금되고 구타당한 끝에 사망했다. 2019년 9월 인천에서는 5살 아동이 목검으로 100여 차례 구타당하고 손발을 뒤로 묶여 방치된 결과 사망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잔혹한 아동학대 소식 앞에서 시민들은 슬펐다가 분노했다가 절망했다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번번이 정부가 긴급 대책을 내놓았고 국회는 아동학대 관련 법을 수차례 손보았는데도 왜 아동학대사망사건은 그치질 않는 것인가.
매번 정부와 국회는 앞 다투어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어디를 고쳐야하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졸속 대책은 정작 해당 사건에 대한 해법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인이 사건’의 재발을 막자며 지난 1월 6일 국회를 통과시킨 법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앞으로 신고의무자가 아동학대 신고를 하면 수사기관 등은 ‘즉시’ 수사에 착수하여야한다. 하지만 ‘정인이’를 구조하지 못한 것은 신고 즉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3차례의 아동학대 신고 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즉시 출동은 했다.
아동학대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벌금형을 강화한 개정법은 어떠한가. 천안 사건과 양천 사건에서 학대 혐의를 받았던 보호자들은 집 문을 열어주고 조사에는 응했다. 피해아동을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조치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천안 사건과 양천 사건에서 피해아동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아동을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분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지에 대하여 경찰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그 누구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매번 제시된 아동학대 대응책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신고의무자 확대, 미신고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아동학대 업무 관여자들의 권한 강화, 가해자의 조사 불응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가 주된 내용으로 담겼다. 법조문 한 두 개의 개정만으로 가능한 해법들이다. 예산과 인력의 추가 확보는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았다. 기존에 제안된 대책들 중 손쉽게 실행할 수 있는 대책으로 시민들의 공분을 진정시켰고, 그 이후 또 다른 아동학대사망사건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양천사건 진상조사 특별법 발의는 필요하고 반드시 통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라도 최근 발생한 중대한 아동학대 사망사건들이 어떻게 수사·조사 처리되었는지, 아동학대 업무에 관여하는 기관 간 협력과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동의 의견은 어떻게 청취·반영되었고 어떻게 보호되었는지, 원가정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분리된 이후 아동과 가정에 대한 지원과 개입은 어떠했는지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누수지점을 찾아 구멍을 메우고, 끊어진 연결고리를 잇고, 사람과 예산이 필요한 곳에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고,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곳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진단과 대책은 아동학대대응책에 국한될 수 없다. 입양제도를 포함한 아동보호정책과 한부모 등 위기가정에 대한 지원 및 돌봄 정책이 망라되어야 또 다른 학대사건으로부터 아동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천사건 진상조사를 통해 아동보호의 중요한 국내·국제법적인 원칙인 원가정보호의 원칙과 아동이익최우선 원칙의 의미와 구체적인 실현방법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아동보호원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원가정보호원칙의 폐기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같이 무분별한 대책과 대안이 난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주일 만에 내놓는 안일한 미봉책이 아니다. 구조신호를 보냈으나 우리가 살리지 못했던 학대사망사건의 아동들에 대한 책임감을 담아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진단과 대책을 내놓아야한다.
국회와 정부는 조속히 양천사건 진상조사 특별법을 제정하여 대통령 산하에 아동인권 전문성과 감수성을 가진 위원들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한다. 충분한 예산과 인력, 활동기간을 보장하여 철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동학대근절대책을 포함한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과 개선책이 나올 수 있도록 결단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21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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