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와 국회의 보호수용제도 도입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1. 정부와 국회는 이른바 ‘보호수용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2020. 11. 26. 국회에서 열린 ‘친 인권적 보안처분제도 및 의무이행소송 도입 당정 협의’(이하 ‘당정 협의’)를 통해 “실형을 마친 범죄자에게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 다시금 사회에서 격리하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2건의 보호수용법안을 발의했고, 위 법안들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우리 모임은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보호수용제도가 형벌을 연장하여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초래하는 위헌적인 제도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에게 그 도입 논의를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2. 당정 협의를 통해 예고한 법률과 야당이 발의한 보호수용법안들이 예정하는 각 제도의 내용은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입법의 목적과 수단은 대동소이하다. 입법의 목적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겠다는 것이고, 수단은 형의 집행이 완료된 범죄자를 격리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보호수용제도상 보호수용이 형벌과 구분되는 자유박탈형 보안처분이므로 그 도입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호수용은 격리되는 사람에 대한 처우만을 일부 개선할 뿐 시설에 구금하여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징역형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 즉 보호수용제도는 특정 수형자에게 형벌을 새롭게 부과 또는 연장하는 것으로 헌법 제12조 제1항에 따른 적법절차의 원칙 및 헌법 제13조 제1항에 따른 거듭처벌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3. 나아가 보호수용제도상 보호수용은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범죄를 대상으로 한 법적 제재라는 점에서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리에도 위반된다. 특히 야당이 발의한 보호수용법안에 따르면 보호수용은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불명확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자의적인 법 집행이 우려된다. 참고로 유엔 및 유럽인권재판소 등은 일찍이 보호수용제도와 유사한 사후적인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에 대하여 수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4. 보호수용제도는 지속적인 인권침해 논란으로 지난 2005년 폐지된 구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도입되었던 보호감호제도는 삼청교육대에 강제수용된 사람들을 형 집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는 형벌로 기능했다. 정부와 국회는 구 사회보호법 폐지 이후에도 수 차례 유사한 보호수용법 제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위 제정 시도는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비판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무산된 바가 있다. 우리 모임은 경험적으로 인권침해가 명백하게 예상되는 보호수용제도를 면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 없이 갑작스레 도입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행보에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5. 한편 보호수용제도의 도입을 통해 성폭력 범죄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보호수용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가해자는 일정기간 이후 사회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즉 보호수용제도는 가해자의 사회 복귀를 일시적으로 늦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뿐만아니라 보호수용제도는 구금을 부정기적으로 연장함으로써 수형자의 재사회화를 방해함으로써 오히려 재범의 위험성을 높이는 등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정작 가해자와 함께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해자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보호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헌법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미봉책에 불과한 보호수용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접근금지 강화,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심리적, 경제적 지원 등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성폭력 범죄와 관련하여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수사관행, 법리해석 및 양형판단이 정의 관념에 부합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입법 및 행정이 성폭력의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해 적합한 수준인지를 점검하고, 개선을 위한 입법적, 행정적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6. 우리 모임은 다시 한번 보호수용제도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이자 기존에 폐지된 보호감호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보호수용제도는 이미 2005년 보호감호제도 폐지 과정에서 그 헌법적 정당성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제도이다. 법적 하자와 광범위한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결국 상황에 따라 폐지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미봉책이자 법적하자가 명백한 보호수용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근원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범죄의 예방과 재범의 방지를 위해서는 수형자에 대한 교정프로그램의 질적개선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교정프로그램은 징역형의 집행 단계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효과적일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보호수용제도 도입을 추진하기에 앞서 수형자의 재사회화와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프로그램의 개선 등 범죄의 예방과 재범의 방지를 위한 입법적, 행정적 노력을 다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0년 12월 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 도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