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소수자위][논평]장애인의 의사표현은 믿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합헌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논평]
장애인의 의사표현은 믿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합헌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1.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0. 5. 27.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게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여 투표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이하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20. 5. 27. 선고 2017헌마867 결정).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선거권 제한이 비밀선거의 원칙에 예외에 해당하여 이 사건 청구인(이하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위원회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의 기본권 침해를 외면한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2. 청구인은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지난 2017. 5. 9.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활동보조인 1인과 투표를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 하지만 투표관리관은 청구인에게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2인의 활동보조인 필요하다며 면식이 없는 투표사무원 1인을 추가로 지명하여 동반하지 않는 이상 투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신뢰관계가 없는 낯선 투표사무원의 투표 입회를 용인할 수 없었던 청구인은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이에 우리 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지난 2017. 8. 청구인을 대리하여 심판대상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던 것이다.
3. 먼저, 헌법재판소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의 관계자들이나 투표보조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쉽다고 전제한 뒤, 중증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대리투표로 악용하는 선거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투표보조인 2인 강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장애인 스스로의 투표와 보조인 지정을 신뢰할 수 없는 결정 또는 의사표현으로 취급한 것이다.
4. 장애인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본권의 주체로, 자신의 장애 정도가 심하더라도 스스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신뢰하는 사람을 투표보조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장애인은 자신이 지정한 투표보조인이 자신의 의사와 달리 기표하는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그 책임도 스스로 부담할 수 있다. 이를 간과한 채 심판대상조항의 필요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무능력자라는 편견에 기초한 것으로 부당하다.
5. 한편 헌법재판소는 중증장애인들의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선거용 보조기구를 모두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았다. 헌법재판소는 새로운 보조기구를 도입하는 데에는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이를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투표보조인이 필요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투표보조인 2인 강제가 현실적인 방안이므로 심판대항조상이 기본권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2008년 시행된 「장애인권리구제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2009년 비준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장애인이 스스로 투표할 수 있도록 국가에게 보조기구를 개발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278조는 전산조직에 의한 투표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태블릿과 유사한 전자투표기도 개발되었다. 청구인은 입에 스틱을 물고 태블릿을 두드려 의사소통 하는 사람으로,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 개발되어 있는 전자투표기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투표보조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기표할 수 있었다. 즉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의무이기도 한 보조기구 개발의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심리없이 자의적으로 도입이 어렵다고 간주하고 심판대상조항을 합헌이라 판단한 것이다.
6. 이상과 같이 헌법재판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기초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장애인 선거권 침해상황을 외면했다. 재판관 3인의 반대의견이 설시하였듯이 심판대상조항은 장애인을 자기 책임 아래 정치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완결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장애인에게 차별적으로 비밀투표의 원칙을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강제하는 법률로서 장애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우리 위원회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 상황을 외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7. 나아가 우리 위원회는 국가가 장애의 유형과 정도를 고려한 선거용 보조기구 및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기표방법 도입이 즉시 이행해야 할 의무라는 점을 엄중히 인식하고, 신속히 장애인의 선거권 침해상황을 구제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위원회는 향후에도 장애인이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투표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2020년 6월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