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의2 시행에 대한 논평
2019. 7. 16.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가 시행되었다.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해당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추행하는 경우에는 강화된 처벌을 적용하는 규정이다. 2019. 7. 15. 여성가족부는 “16세 미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간음⋅추행 시 합의와 무관하게 처벌”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16세 이상의 궁박한 상태가 인정되지 않는 아동⋅청소년과는 합의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인가.
우선,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는 성범죄에 이용당한 아동⋅청소년의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자로 구분하는 문제가 있다. 이 법안의 개정이유로는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은 성적 행위에 대한 분별력이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동⋅청소년기는 만 18세에 이르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연령과 개별적 특성에 따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정서적 발달이 달리 발현된다. 그렇기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최소한 만 18세’까지는 아동으로 확인하며,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를 인정하였다. 즉, 이는 아동 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의 연령은 13세로 정하고, 16세 미만인 경우에만 궁박한 상황을 근거로 피해자로 보는 우리 법제는 모든 아동의 온전한 발달을 지원할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였다. 개정이유에 따르면, 아동이 만 16세에 도달하는 순간 성적 행위에 대한 분별력이 완성되어 성범죄의 피해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해석될 수 있게 된다. 또한, 현재 미성년자 의제강간죄(형법 제305조) 적용 연령이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인데다 연령 상향 필요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가운데(2018. 9. 12. 제364회 국회 여성가족소위원회 회의록, 71쪽), 정부는 합리적 근거 없는 ‘16세’와 ‘궁박한 상태’라는 장벽을 두어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논의를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성범죄에 이용당하는 아동⋅청소년은 연령과 관계없이 사회적⋅경제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소수자이며, 그 자체로 피해자이다.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동⋅청소년 개인의 탓이 아닌, 가족관계의 해체, 사회안전망의 미흡 등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자원의 부재에 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문제는 성인이 나이, 육체적 힘, 지적 및 경제적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아동⋅청소년에 비해 우위에 있어 아동⋅청소년의 취약한 상황을 쉽게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2017. 6. 15.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 참조).
16세 이상인 경우 성범죄 행위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는 청소년성보호법의 입법취지 및 국제인권규범에 정면으로 반한다. 청소년성보호법을 제정한 이유를 살펴보면, 성폭력, 성매매 등 성범죄를 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성범죄행위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보호⋅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규율의 주안점은 ‘성범죄 가해자’이고, 보호⋅구제의 대상은 연령 구분 없는 모든 아동⋅청소년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9조와 제34조는 아동이 모든 형태의 폭력, 성적 학대를 포함한 가혹한 처우나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당사국의 조치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아동 또한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이다. 2008. 6.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매매⋅아동성매매 및 아동음란물에 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이하‘ 선택의정서’) 이행에 대한 제1차 최종견해에서, 성매매 피해아동이 어떠한 형태로도 범죄자로 취급되거나 처벌받지 않으며, 범죄 피해자로서 국가의 지원체계가 온전히 적용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요청하였다(CRC/C/OPSC/KOR/CO/1). 2019. 2.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선택의정서 이행을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채택하며, “성매매, 성착취, 성학대 상황에 있는 아동의 ‘동의’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 2. 대한민국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심의에 따른 쟁점목록을 통해, “선택의정서에 대한 권고들을 이행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할 것, 만 13세 동의 연령(의제강간) 상향, 아동 성범죄 가해자 처벌을 국제기준에 부합하여 조정할 것인지 등 관련 계획을 제시할 것”을 질의하였다. 어디에도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아동에 대해 ‘자발적인 성범죄 행위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궁박한 상태’에 대한 의미와 해석이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심각하다. 궁박 의미가 모호하다는 문제는 입법 과정에서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제기되었다(2018. 12. 26. 제365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 34쪽 이하 참조).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은 형법상 부당이득죄의 요건인 ‘궁박’이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2005. 4. 15. 선고 2004도1246 판결 등). 가출한 상황, 학대받는 상황, 심리⋅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곤궁해야 ‘궁박한 상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또한 ‘궁박한 상태’의 의미는 이 조항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찰, 검사, 판사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이들의 아동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우리는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청소년의 개별적 특성과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해야 하지만, 관련 종사자를 위한 아동 권리 교육⋅훈련이 부재한 상황에서 결국 피해는 오롯이 아동⋅청소년이 떠안게 된다.
또한 현행법제에서는 ‘궁박한 상태’의 증명책임이 사실상 아동⋅청소년에게 부과된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에도 수사기관은 아동⋅청소년의 진술 여부에 따라 성매매를 포함한 성적 행위의 ‘자발성’여부를 달리 판단한다. 즉, 성범죄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궁박한 상태’가 인정될 수도 있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에게 책임 소재를 묻는 과정 자체가 곧 2차, 3차 피해로 직결된다. 이러한 수사절차는 결코 아동친화적인 사법제도라 할 수 없다.
또한, 주관적 구성요건과 관련해 이 조항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성범죄가해자에게 ① 상대방이 16세 미만이라는 것, ② 궁박한 상태에 있다는 것, ③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간음, 추행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한 이 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어른인 줄 알았다, 그렇게 급박하게 곤궁한 상태인 줄 몰랐다, 그저 합의해서 성관계를 했을 뿐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서 간음할 의사는 없었다고 진술하면 그만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성범죄행위자들은 처벌받지 않을 기회를 공식적으로 얻게 된 것이다.
또한,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 시행으로 인해, 성매수범죄에 이용당한 아동⋅청소년이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대상아동⋅청소년 규정’(청소년성보호법 제2조 제7호)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시각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법무부가 제시한 대안 또한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경우 청소년성보호법이 아닌 성매매방지법상 피해자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여성가족부, 2019. 7. 16.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관련 간담회 계획 참조).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는 아동의 성을 이용하는 일련의 행위는 성착취범죄이며, 성매수범죄의 대상이 된 모든 아동은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대상아동⋅청소년 규정’ 삭제 입법운동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16세 이상의 아동, 궁박한 상태가 아닌 아동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성을 판 범죄자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가 입법됨으로써 대한민국의 아동⋅청소년 성보호는 도리어 후퇴했다.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아동⋅청소년에게 묻는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는 아동⋅청소년의 인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무에 반한다. 우리 모임은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를 조속히 개정할 것을 촉구하며,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 시행으로 인해 현장에서 고통 받는 아동⋅청소년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아동 최상의 이익 최우선의 원칙을 실천하는 길이다.
2019년 7월 3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위원장 소 라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