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TF][논평] 대법원과 정부의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을 촉구한다

2018-09-13 3

[논평] 대법원과 정부의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을 촉구한다

 

지금 사법농단 사태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지난 5월 대법원 특별조사단 3차보고서에 드러난 사찰과 재판거래 의혹 만으로도 충격적이었는데, 3개월 넘는 수사를 통해 재판거래의 실상은 물론 비자금 조성, 구체적 법원 재판에 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부당한 개입 등 새로운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사법농단 사태의 실체는 점점 더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이에 대한 법원의 반응과 대응은 실망스럽기 그지 않다. 주요한 증거들은 법원 관련자들의 적극적인 관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작년에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2만 5천개가 넘는 파일을 삭제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가 디가우징된 것은 증거인멸의 서막에 불과했다. 다수의 사법농단 관련자들은 수사기관에 나와 본인이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송곳으로 뚫거나 쓰레기봉투에 넣었다고 진술했고, 급기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는 사이에 수만 건의 증거를 황급히 파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데, 법원은 이해못할 사유를 들어서 압수수색 영장 기각을 남발하며 진실규명을 가로막고 있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오늘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구조의 개편, 전관예우 해소방안 마련, 상고심 제도 개선 등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에 대하여 국회와 행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이나 단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대법원장의 입장은, 무용하고 불가능한 사법부의 ‘셀프개혁’의 문제점을 인정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에 개입하여 이를 취소시키는 등 사법부 내부의 재판개입이 현실로 드러난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위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 편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독립과 재판의 신뢰를 강조하면서 사법농단 사태와 재판거래 의혹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개혁을 주문하였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대통령이 처음으로 사안의 심각성과 개혁의 절실함을 공식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법부 스스로의 역량만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이번에도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 낼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그친 것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는 지난 수개월 동안 법원의 행태에 대한 평가를 결여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법원은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영장기각, 증거인멸 등 수사 비협조로 일관했고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졸속적인 셀프개혁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 전부다. 조직보위의 논리에만 갇혀있는 사법부에 대하여 국민적 분노가 이미 임계점을 이르른 상황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권리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용인해온 사법부는 분명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이를 정상화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스스로도 언급하였듯이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며, 이는 현재 법원 내부 역량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사법부에 대한 무개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 시국은 사법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개입이 요청되는 시기다.

이에 우리는 법원과 청와대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우선적으로 촉구한다.

우선 대법원장은 현행법상 사법행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불법적 사법농단을 바로잡을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내부의 부정의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대법원장은 지난 6월에 이어 이번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것이 허언이 아니라면 말이 아닌 구체적 책임과 행동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법원은 반복된 영장기각과 증거인멸에 대해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할 것이며, 법원행정처는 수사에 필요한 문건과 자료를 즉각 임의제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장은 지금까지 법원행정처가  사법에 대한 신뢰회복은 이루지 못한 채, 사태를 더욱 심화시킨 책임에 상응하는 인사조치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법개혁의 제대로 된 추진이다. 지난 70년 간 법원은 스스로 개혁을 이루지 못했고, 개혁 대상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법원은 대법원장이 오늘 말한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하여는 국민적 요구와 눈높이를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사법부 내의 의사만 반영되지 않도록 국회와 행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이나 단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구체적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법원 중심의 개혁이 아니라 국민 중심의 개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존 법원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를 통한 방안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행정부 역시 법원의 역량을 믿겠다는 수사(修辭)를 넘어 법원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의 깊은 우려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법원개혁에 필요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법원개혁이 국민의 참여와 지지 속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원, 국회,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역할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2018. 9. 1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

단장 천 낙 붕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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