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조각난 전화통화, 찢겨진 언론자유’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보도 유죄 대법원 판결 유감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가 12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최 기자는 지난 2012년 최필립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과의 전화 인터뷰 때 상대방인 최 이사장이 실수로 통화 종료를 하지 않은 채 <문화방송(MBC)> 관계자들과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지분 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 내용을, 끊어지지 않은 전화로 계속 청취·녹음한 뒤 보도했다가 기소된 바 있다.
대법원은 최대 쟁점인 ‘최 기자의 비밀회동 청취·녹음 행위가 작위인지 부작위인지 여부’(작위와 달리, 부작위로 볼 경우는 최 기자에게 녹음을 중단할 작위의무까지 인정돼야 유죄 판결이 가능해진다)에 대해 대법원 2002도995 판결(행위자가 자신의 신체적 활동이나 물리적·화학적 작용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타인의 법익 상황을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그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기에 이르렀다면, 이는 작위에 의한 범죄로 봄이 원칙이다)을 거론하며 작위라고 본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위 판례 법리 적용을 위해서는 우선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행위(‘최 이사장 인터뷰 청취·녹음 행위’와는 별개로 구분되는 ‘비밀회동 청취·녹음 행위’)의 존재가 인정돼야 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유지한 원심은 “청취·녹음 행위는 청취·녹음과 관련된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청취·녹음의 대상이 되는 ‘대화’를 기준으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라며 ‘대화’를 인터뷰 청취·녹음 행위와 비밀회동 청취·녹음 행위 간의 구분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화’에 따라 일련의 청취·녹음 행위가 쪼개어진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막연하고 자의적인 행위 구분기준이다. 도대체 대화가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오고가야 일련의 통화 행위가 절단돼 구분된다는 것인가? 이런 구분기준은 형법상 “1개의 행위란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행위가 사물자연의 상태로서 1개로 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대법원 판례(2005도10233 판결 등)와도 어긋난다. ‘물리적 행위’를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함은 사물자연의 상태로서의 평가와 충돌하며, ‘대화’를 기준으로 통화 행위를 구분하려면 (‘통화 중 어떠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면 통화가 끝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식의) 규범적 내지 법적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상 유추해석금지 원칙의 정신에도 반하는 이런 행위 구분기준 도입으로 일련의 통화 행위 중 비밀회동 청취·녹음 행위 부분을 억지로 떼어내어 무리한 유죄 판결을 내릴 것이 아니라, 최 기자의 비밀회동 ‘녹음’ 행위에 대해 이를 부작위로 보고 최 기자에게 녹음하지 말아야 할 작위의무 없음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한 1심의 논리를 비밀회동 ‘청취’ 행위에 대해서까지 일관되게 적용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어야 마땅하다.
대법원은 또한 “대화당사자가 이른바 공적 인물로서 통상인에 비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불법 녹음되고 공개될 것이라는 염려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그들의 권리까지 쉽게 제한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 ‘청취’·‘녹음’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 불법 녹음된 대화내용을 실명과 함께 그대로 공개하여야 할 만큼 위 대화내용이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대화내용의 ‘공개’ 행위 역시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용했다. 아울러 원심과 마찬가지로 최 기자에게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 사회의 중요한 공공재인 공영방송 MBC를 특정 집단이 임의로 처분해 선거에서 정략적인 당파적 이익을 취함으로써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인 선거의 공정성과 방송의 공공성이 침해될 위험이 현저했다는 점 △ 최 기자가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으로 대화 내용을 취득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 △ 청취된 대화 내용 중 특정 방송인에 대한 평가 등 공익과 직접 관련 없는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 부분은 보도에서 배제하는 등 비밀침해를 최소화해 보도가 이루어졌다는 점 △ 보도로 얻어진 이익과 가치가 통신비밀 보호로 달성되는 그것보다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 또 최 기자로서는 언론 윤리, 사명감 등에 비춰 비밀회동 취재·보도의 가치가 최 이사장 등 대화의 비밀 보호 가치보다 높다고 판단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거나 그 취재·보도가 언론인으로서의 불가피한 의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금지의 착오 또는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로서 책임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나는 무리한 법 적용으로 막중한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질서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 방송의 공공성 등 보장의 요구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 앞서 안기부 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 이상호 기자 처벌 사건과 관련해서도 제기됐듯이, 국가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통신비밀보호법이 오히려 권력기관을 감시·견제하려는 국민을 억누르는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을 고려해 동법 위반죄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거나 위법성 조각사유를 명문화하는 등 입법적 개선을 서두를 것을 다시 주장한다.
2016년 5월 1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위원장 이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