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논평]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대한민국 국격 추락시켰다
-해산결정 1년에 부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한 지 1년이 되었다. 최근 우리모임은 인권보고대회를 통해 지난 1년 간의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헌재 2013헌다1)을 선정한 바 있다. 우리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민주주의의 요체인 사상․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정당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1년 전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목적과 활동에 내포된 위헌적 성격의 중대성과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 등에 비추어 위헌적 문제성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 수단이 없다”, “정당해산결정으로 초래되는 불이익보다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월등히 커서 해산결정이 불가피하다”는 명목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결정하였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밝힌 대로라면 정당해산 결정 후 1년 동안 우리사회의 공론의 장은 더 활성화되었어야 하고, 국민의 기본권은 더욱 보장되었어야 한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시민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었어야 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는 한층 확립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헌재가 공언한 바와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해산결정 후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이른바 ‘종북’이라는 미명 하에 운동장의 반쪽이 강제적으로 폐쇄되어버렸다. 평화통일과 평화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는 평화적 통일운동에 대해 무차별적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정치세력들을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종북 좌파’ 낙인찍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로 인하여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공론의 장은 이성적 토론이 없는 이념공세의 장이 되어 버렸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은 실종되어 버렸다.
해산결정 후 정부는 국민의 핵심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 현 정부, 검찰, 경찰, 보수언론은 시민과 노동자들의 세월호 진상규명, 노동법개악 저지,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 살인적 시위진압 규탄 등의 표현과 집회 및 시위를 ‘통합진보당 해산을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이라는 색깔공세로 불온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는 그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해산결정 후 우리사회의 소수자를 대변하고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정당이 없어짐에 따라 민주적 기본질서는 확립되기는커녕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검찰은 해산결정 후 통합진보당의 정치자금 사건을 수사한다는 핑계로 1년 동안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수십차례 소환하는 등 ‘괴롭히기 수사’를 하였고, 정치자금과는 무관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남발해 왔다. 이는 단순히 정치자금 사건에 대한 적법한 수사라기 보다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해산결정되기 전의 활동에 대한 수사자료확보를 위한 것이자 당원들의 향후 정치적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 때 통합진보당 당원이었거나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시민들은 정당해산과는 무관하게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정당해산을 핑계로 이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은 정당해산 재판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면 국격이 추락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해산결정 후 그 경고는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의 정당해산 결정에 대해 국제인권기구조차 정당해산 결정에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10. 22.~23. 양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UN인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는 ‘대한민국에 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4차 보고서 심의결과에 대한 최종견해’를 통해 통합진보당 해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당해산은 최대한 억제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고 비례의 원칙을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의 민주화를 달성하고 국제인권규범에 걸맞는 사회를 이룩해왔다고 자부해온 대한민국의 국격이 헌재의 잘못된 해산결정으로 ‘비판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한 것이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당해산 결정은 소수파를 전혀 용납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역행이 분명하다.
돌이켜 보건데, 헌재는 대법원에서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의 선고가 내려지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서둘러 해산결정을 했다. 헌재의 해산결정의 핵심적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었다. 헌재는 대법원의 ‘내란음모는 없었고, RO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 위험성이 없었다’는 판단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인정한 후 해산결정을 하였다. 헌재의 해산결정은 그 후에 이뤄진 대법원 판결에 의해 그 정당성의 근거를 상실했다. 헌재는 지금이라도 결자해지의 자세로 헌재에 계속 중인 정당해산결정에 대한 재심에 대해 조속히 심리하여 잘못된 해산결정을 바로 잡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부는 해산결정을 핑계로 비이성적이고 반헌법적인 종북몰이 이념공세를 즉각 중단하기를 바란다.
2015. 12. 1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택근